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인니어 공부(Pelajaran)

[언어로 인한 생각의 전환] 01. Boleh

명랑쾌활 2018. 10. 5. 11:08

언어학자 에드워드 사피어와 밴저민 리 워프는 '언어는 사고 체계를 결정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을 세웠다.

최고의 단편SF작가로 꼽히는 테드 창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순차적으로 표현하는 인류의 언어 체계와 달리, 통시적으로 표현하는 외계 언어를 습득한 언어학자가 현재를 보면 동시에 과거와 미래를 통찰하게 되는 사고체계의 변화를 겪는다는 것이 이야기의 토대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외국어를 깊게 이해한다는 건, 그 사고 방식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외국어에 대한 배움이 점점 깊어지면서 사고방식이 바뀌게 되는 건 실제로 내가 겪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어와는 다른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서, 내 사고와 관점의 영역을 넓혀준 단어에 대해 끄적여 보려 한다.



boleh 의 한인사전에서 '~ 할 수 있는', '허용되는', '가능한' 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dapat 이나 bisa 와는 달리 허락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대로 이해한 인니어로 일을 하던 신참 시절, boleh 라는 표현 때문에 현지인 하급자와 대판 붙은적이 있다.

"Bisa Anda masuk kerja pada hari minggu ini?" (당신은 이번주 일요일에 출근할 있습니까?) 라는 내 말에 현지인 하급자가 "Boleh." 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boleh=허락'이라고 철썩 같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는 하급자의 그런 대답이 하극상이라고 느꼈고, 너 지금 나한테 대드는 거냐고 야단치다가 오히려 더 큰 반발을 받았다.

당시 회사와 사회 생활 전반에 걸쳐 내게 많은 조언을 해줬던 이웃 회사 선배에게 그 이야기를 했고 (일러 바쳤고), 선배는 오히려 나를 혼냈다.

"그건 그냥 관용적으로 하는 말이야. 너 깔보고 뭐고 그런 뜻 전혀 없어. 넌 왜 자꾸 책에서 배운 말을 곧이 곧대로 쓰려고만 하냐?"

인니에서 했던 멍청한 짓 중 심한 축에 속하는 사건이라, 그 후로도 당시의 일은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그 후로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에서 배운 내 고급스럽고 격식있던 인니어는 세속적으로 너덜너덜 둥글둥글 해졌고, 어떤 뉘앙스인지도 어렴풋이 구분이 가게 됐다.

그 당시 현지인 하급자가 했던 boleh가 내 생각대로 허락의 의미가 포함된 게 맞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하지만, 선배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 역시 이해한다.

현지인 하급자는 나를 깔볼 의도는 쥐톨만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화를 냈을까?


한국말로 "일요일에 출근할 수 있어?"는 부드러운 청유형 표현에 속한다. ("너 일요일에 출근해."라고 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배려심 넘치는 상사다)

하지만, 실제 의미를 뒤집어 까보면,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의지를 묻는 것이기 때문에, 거절하기 곤란하게 만드는 강요가 내포되어 있다. (내가 묻기는 하지만, 사실 너의 대답은 정해져 있잖아? 중요한 선약이 있든 계획이 있든 취소하면 되니까 어쨌든 '할 수는' 있잖아?)

거기다 대고 "네, 그래도 됩니다.(Iya, boleh.)" 라고 대답한다면 대번에 건방진 놈으로 찍힐 거다.

상사와 부하직원, 선배와 후배가 존재하는 한국의 수직적인 집단에서 적절한 대답이란, "네, 할 수 있습니다.(Iya, bisa.)"다.


난 그 현지인 하급자가 "Iya, bisa."라고 대답하길 원했었던 거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저변에는 '아랫사람은 무조건 윗사람을 따라야 한다'는 권위주의 꼰대 의식이 깔려 있었을 게다.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 역시 한국식 군대문화로 잘 조련된 꼰대였다.

그런 꼰대라서, 일요일에 출근하는 걸 인심 써서 해주겠다는 하급자의 대답에 배알이 뒤틀렸던 거다.


그 현지인 하급자가 옳았고, 내가 틀렸다.
근무 시간에나 하급자일 뿐이지, 사적인 시간까지 희생해라 마라 할 권리가 없다.

일요일에 출근을 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당사자의 권리다.

입에 발린 청유가 아니라 정말로 부탁을 해야 할 일이고, 그 부탁을 받아 들여 허락을 하는 건 당연한 태도다.

Boleh가 적확한 표현이다.

Boeh라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은 걸 보면, 인니는 아랫사람이라는 관계의 상황 범위가 명확하게 구분하는 문화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반면, 한국은 그만큼 아랫사람이라는 관계가 사적 영역, 또는 인격적 영역까지 포괄적이고 범위가 불분명하다는 뜻이 되겠다.


퇴근길, 회사 앞 도로가 직원들의 오토바이로 가득한 상황에, 사장 차량이 나섰다고 직원들이 좍 비켜서서 길이 만들어지는게 정상일까, 같이 밀려 가는 게 정상일까?

일요일에 출근하라는 회사가 너무한 걸까, 출근 안한 직원이 너무한 걸까?

퇴직한 직장상사에게 인사하려 고개 숙이는 정도가 예전처럼 깊숙하지 않은 옛부하직원이 변한 걸까, 그걸 서운하게 생각하는 전 직장상사가 이상한 걸까?

정말 한국은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는 문화의 나라일까?

진정 한국인은 상사나 부하직원이 인간적으로는 동등하다고 인식할까?


부하직원이 "Iya, boleh."라고 하는데, "Ok, makasih.(오케이, 고마워.)"라고 이제는 스스럼없이 대답하게 된 나는, 한국인이 보기에 '외국물 먹고 생각이 요상해진 사람'이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