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II

인니에 와서 지나치게 존귀해지신 한국인들

명랑쾌활 2018. 10. 17. 14:22


인니에 살다 보면 소위 '신분 상승'을 경험하게 됩니다.

운전기사나 가정부 같은 하인 문화가 그렇고, 회사 조직에서도 한국인은 신입사원도 고급 간부급으로 쳐줍니다.

셀프 문화에 익숙한 한국과 달리, 인니에서는 몰에서 쇼핑카트를 아무데나 놔둬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습니다.

따로 수거하는 직원들이 있으니까요.

게다가, 인니는 암묵적으로 외국인 프리미엄이라는 게 있어서, 외국인이면 일단 대우해주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만큼 바가지도 쓰지만요.)

반바지와 쓰레빠 차림으로 5성급 호텔에 들어가도 외국인은 눈총을 받지 않습니다. 외국인이니까요.

반면 차림이 허름한 현지인은 경비원의 제지를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진짜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종종 눈에 뜨입니다.

인니인들의 그런 대우에 익숙해지다 보니, 같은 한국인에게도 그러는 거지요.

자신이 지금 뭘 어쩌고 있는지 인식조차 못해서 그렇겠지만, 우습긴 합니다.

몇 가지 겪었던 일을 적어봅니다. 



1. 어느 한식당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식당에 들어가려고 문을 당겨 열었는데, 마침 안에서 나오려던 50대 정도로 보이는 한국인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제가 문을 열었고, 상대방은 문에서 아직 두어발짝 정도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먼저 들어가도 상관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먼저 나가도록 뒤로 물러섰습니다.

애매한 상황에서는 양보하는 게 매너지요.

그런데, 그 아저씨는 어깨를 턱 펴고 턱을 치켜든채 문을 나서더군요.

당겨 연 문을 잡은채로 뒤로 물러섰기 때문에 열린 문도 제가 잡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의상 자기도 열려진 문에 손 한 번 갖다 대어 미는 척이라도 하면서 '자기 스스로 문을 열고 나가는 척'이라도 할 만 한데, 그 아저씨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그냥 나갔습니다.

제게 고개짓은 커녕 눈길 한 번 안주고요.

그 거만함이 너무 인상 깊어서,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 상황이 사진처럼 기억납니다.

2. 무궁화마트에서 종종 겪는 일입니다.

계산대에서 장 본 물건들 계산을 마치고는, 살 물건들 싣고 온 카트는 계산대 앞에 둔채로 횅하니 가버리는 사람들이 가끔 있더군요.

카트 치워줄 만 한 직원이 근처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바로 뒤에 줄 서 있는 사람이 뻔히 있는데도요.

그러는 사람들 대부분이 교양있어 보이는 행색의 여사님들입니다.

차라리 가정부로 보이는 현지인 아주머니는 최소한 계산대 옆의 상품 진열대 쪽으로 밀어 놓고라도 갑니다.

아마도, 원래 인니 몰에서도 카트를 아무렇게나 놔둬도 되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그러시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3. 한인 업소가 밀집한 좁은 골목에서 앞차를 따라가다 보면, 차가 멈추고 사람들이 내릴 때가 있습니다.

그럼 뒤따라가던 차는 앞차가 진행할 때까지 기다려야지요.

그런데, 가끔 한국인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서 거만한 걸음걸이로 느릿느릿 뒷차 앞을 지나 업소로 가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뭐 불만있냐?' 하는 기색으로 뒷차를 흘끔 보기도 합니다.



대부분 '한국에서처럼' 행동하면 자기 위신이 깎인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상대에게 목례를 하거나 감사를 표하는 행동, 카트를 자기 손으로 옮겨서 옆으로 치우는 행동이 자신의 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개중에는 자기 자신도 의식 못하고 그러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글쎄요... 저도 한국인입니다.

한국에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개쌍욕을 먹을 일이라는 거 서로 뻔히 아는데요.

한국에서 보던 사람들의 태도와 다른 모습을 맞닥뜨릴 때면, 헛웃음이 나오면서 "허, 지가 뭔데?"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존귀한 타인의 호의에 예의 좀 표했다고, 타인이 불편하지 않도록 '몸소' 배려 좀 했다고, 위신 깍이는 일 없습니다.

인니에도 신분이 높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인 상대방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면 교양있다고 칭송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이미 '외국인 프리미엄'에 익숙해져서 인니 현지인들에게 예의로 대하는 건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같은 한국인'한테는 그러지 말아야 할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