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진실과 진실을 말하는 것.

명랑쾌활 2009. 1. 9. 15:50

작은 어촌에서 평생 어부로 사는 노인이 있습니다.

열 마리를 잡으면 세 마리를, 스무 마리를 잡으면 여섯 마리를 촌장에게 바치며,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워 장가도 보냈습니다.

어느 날 노인이 볕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데, 외지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그 사람은 노인에게 어촌에서의 생활과 작황 등을 묻고 배우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외지 사람이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 어르신.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다른 마을은 열 마리를 잡으면 두 마리를 걷습니다. 적게 잡히면 더 덜 걷기도 해요.

 그 마을의 촌장은 여기 촌장보다 덜 부유해 보였지만, 그 마을의 주민들은 어르신보다 형편이 나아 보였어요.

 이건 뭔가 옳지 않은 것 아닙니까?"

" 글쎄, 뭐가 옳고 그른지 모르겠지만 서도, 난 지금 만족한다네. 촌장이 그러는 것에는 뭔가 사정이 있겠지."

" 그래도 이건 착취라고요. 옳지 않다구요."

" 옳고 그른지 알고 싶지도 않고, 착취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난 지금 만족한다네."

" 지금의 상황에 만족한다고 사실을 외면하실 건가요? 진실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세요?"

노인은 한숨을 쉬며 외지 사람을 올려다 보았다.

" 난 자네가 고기잡는 법이라던가 얼마나 잡히는 지를 얘기한다면 얼마든지 들을 수도 알려 줄 수도 있다네.

 하지만 자네가 지금 하는 그런 얘기는 도무지 관심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네.

 자네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려면, 평생을 다른 마을 사람들보다 고기를 더 바친 내 무지를 인정하라는 건데,

 난 그걸 감달할 만한 힘도 없고 필요도 없다네.

 설사 자네 얘기가 옳다 하더라도 마음만 불편할 뿐, 내가 더 행복해질 것 같지는 않군.

 그런 얘기를 할 거라면 저기 마을 광장에 가서 하게나.

 거긴 그런 얘기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군.

 그리고 난 뭐가 진실은 잘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안다네.

 여기는 내가 그물 손질을 하는 곳이고, 자네가 볕을 가리고 있어서 그물 손질을 할 수 없다는 거지."

" ......"

벌개진 얼굴로 말 없이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외지 사람의 등 뒤로, 노인의 말이 들렸다.

" 자네는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했어. 이제 나는 어쩌란 말인가?
  진실이 곧 옳을 수도 있겠지만, 진실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건 아니라는걸 명심하게.
  그리고 잊지말게. 난 자네가 밉네! 촌장보다도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