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베트남 0809

달랏. 소소한, 느긋한, 하지만 소중한 기억 속의 하루 하루들

명랑쾌활 2008. 12. 20. 15:16
아침 식사로는 반미가 최고!!
베트남 바케트는 프랑스만큼 맛있다. +_+b
어느 날 아침, 차려준 조식.
그냥 빵에, 계란말이, 찍어 먹기 좋게 썬 오이, 그리고 미역국...
이 조합은 뭥미...? ㅠ_ㅠ
이모에게 아침으로 샌드위치나 반미가 좋다고 했는데, 아마도 일하는 친구들이 잘못 이해해서 차려준듯... -_-;;
케찹이나 토마토 소스 없냐고 했더니 없단다.
그러면서 간장에 고추 썰어 넣은 것을 가지고 오더군... -_-;;;
황당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방에서 사진기 가져와 한 컷.
오이만 먹고 롹이라도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빵은 포기하고 계란말이 먹고 미역국 마시고, 디저트로 오이 먹었다.
로비의 디비디장에서 찾아낸 레어템.
박상면 씨는 언제 이런 영화를 찍었다냐.
달랏에 있는 열 몇일 내내 거의 비가 왔었다.
일 없어 한가한 날이면, 대부분 1층 입구 쪽의 테이블에 앉아 하릴없이 바깥만 쳐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할 수 없이 그런게 아니라 그러고 싶어서 그랬다.
묵었던 호텔 옥상에서 내려다 본 앞의 거리.
이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던 거다.
비가 그친 틈을 이용해서 노점 좌판이 하나 들어섰다.
휴대용 가스버너에 녹슬어서 불안해 보이는 부탄가스를 끼우고, (분명히 불법 충전일 것이다. 여기서는 다들 그렇게 쓴다.) 솥을 얹고 기름을 붓는다.
나무와 담벼락에 치는둥 마는둥 천막을 얹고 무언가를 튀기기 시작한다.
만드는 폼이 만두같은 종류가 아닐까?
궁금해서 사와 봤다.
여기 일하는 사람들 몫까지.
예상대로 만두 종류는 맞았는데... 공갈만두였다.
아주 허술한 속과 다량의 빈 공간으로 이루어졌다.
색깔만 그럴듯 했지 정체성 없는 소스도 공허함을 더한다.
짜다고 하기도, 맵거나 달다고 하기도 애매한 맛이다.
그런데 의외로 바삭바삭한 식감과 담백함이 좋았다.
쌀반죽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서, 일하는 친구 중 하나인 향기(베트남 이름은 어려워서 까먹었고, 이모가 지어준 한국 이름이다.)가 아침으로 사다 준 찰밥같은 도시락과 두유.
에에 맛을 굳이 표현하자면 짭짤한 불량식품 삘?
맛도 있고 양에 비해 의외로 든든했다.
베트남 두유야 뭐 유명하니 패스~

그 밖에 두리안(베트남에서는 사우링)이나 피자, 또 이런 저런 길거리 음식들을 사다 나눠 먹었다.
그러저러 작년과 다른, 하지만 작년과 같은 착한 마음의 친구들과 가까워졌다.
전기 기술자가 꿈인 친구 Tin.
호주에서 전기 기술자로 일하고 싶어서, 한국말보다는 영어에 관심이 많단다.
실제로 대학 학력 이상이 아닌 베트남 사람치고는, 영어로 의사 소통이 제법 되었다.
부모님은 다낭에, 누나는 호치민에, 여동생은 동나이에 살고 있는데, 어디가 제일 그립냐고 물으니 동나이가 친구들도 많고 좋다고 한다.
세탁기나 수도꼭지 등 못고치는게 없는 재주꾼이라고 이모가 그러신다.
선량하지만 약간 게으른 것이 흠이라면 흠.
그가 묵는 방.
기타와 컴퓨터가 눈길을 끈다.
베트남 젊은이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아니지 싶다.
계량기가 따로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전기 요금은 쓴 만큼 부담하나 보다.
한가하면 가끔 두 아가씨를 앉혀놓고 한국말을 가르치곤 했다. :)
뜻한 바 있어 한국어 강사 과정을 들었는데, 좋은 실전 연습이었다. (라기 보다는 참 어렵구나... 하고 절감했다.)

왼쪽의 아가씨는 향기.
한국말을 제법하는 머리 좋은 아가씨.

오른쪽 시골스러운 헤어스타일의 참한 아가씨는 Thu.
동방신기와 장동건을 좋아하고, 한국에 관심이 많단다.
한국어 공부 잘 하라고, 한-베, 베-한 사전을 선물로 주었다.(사진 우측 하단)
아직은 내 가슴이 뛸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주었다. *^^*
가슴 두근 거리는 느낌이 7년만이라 당황스러웠다.
17년이라는 나이 차이 때문에 더 당황스러웠다.
변명하자면, 내색하진 않았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라면 할 말 없다. 
누가 누구에게 좋아하는 마음 드는게 뜻대로 되는게 아니니 뭐...
보는 사람마다 갖고 싶어 했던 반야심경 부채를 Thu에게 주었다. (정작 Thu는 갖고 싶다고 표현한 적 없다. ㅋㅋ)
가슴 두근거리게 해줘서 고맙다고.
그런 감정 오랜만에 느끼게 해줘서 고맙다고. :)
종교가 불교라는 그녀의 말을 핑계로 선뜻 주었다.

내가 좀더 피가 더웠다면 어떻게든 마음을 표현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마음은 통제 못해도 행동은 통제가 될 만큼, 아니 마음도 어느 정도는 브레이크가 걸릴 정도는 되었다.
그런 내가 성장한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 손익에 대한 계산에 밝아진 것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것, 그것 참 기분 좋은 상태다. :)
누굴 좋아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인데, 보통 왜 그게 그리 쉽지 않을까?
아마도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일 거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럼 왜 화는 그리 자주 낼까?
사진 맨 좌측은 작년에도 보았던 Yao.
아이가 벌써 초등학교 2학년인 너무너무 성실한 아줌마다.
알뜰하게 절약해서 돈을 모아, 작지만 집도 샀다고 한다.
착하기로 따지면 내가 만난 베트남 사람 중 최고.
하지만 오빠라고 부르는건 좀 그만했으면 한다.
전 두 살이나 어리단 말입니다. ^^;;

사진 맨 우측은 호텔식당의 주인인 이모님.
아직도 소녀같은 감성을 가지고 계시는 좋은 분이다.
가끔 친이모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하게 대해 주셔서 늘 감사하다.


평온하고 잔잔한 하루 하루.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지금도 가끔 떠올리면 마음이 따듯해 진다.
당신들에게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어려움과 행복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