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베트남 0809

달랏. 달랏대 한국어과, 전 잡상인이 아니라구요... -_-;;

명랑쾌활 2013. 5. 13. 14:47
잠깐 그쳤다가도 끊임없이 약하게 굵게 비가 오는 날씨가 계속 된다.
좀 맑은 날에 갈까 하다가 더이상 미룰 수 없었던 차에, 식당으로 찾아온 달랏대 한국어과 학생을 기회 삼아 한국어과의 구교수님을 찾아 뵈러 나섰다.
작년에 두어 번 뵙고 인사를 드렸었는데, 몇 가지 여쭐 일도 있고 해서 찾아 뵐 계획이었다. 

달랏 대학교 정문.
달랏 대학교는 베트남의 중남부 지역 수재들이 모이는 명문 중의 하나라고 한다.
우리나라와는 카이스트와 협력하여 원자력 연구소를 지었다나, 짓고 있다나 그렇단다.
그보다 달랏을 여행하는 한국 여행자들에게 더 유명한 것은, 무려 한국어 과가 있다는 사실이다.

달랏대 정문을 등지고 왼 쪽.
저 길로 주욱 내려가면 춘향호수가 나온다.

여긴 반대편.
이 길로 주욱 내려가면...

요런 로터리 오거리가 나온다.

교문 통과하자 마자 정면에 보이는 갈림길.
오른쪽 길로 간다.
교문에서 수위 아저씨가 제지를 하거나 하지 않는다. 아니 별 신경도 안쓴다.
(혹시 한국어 과사무실을 찾아 가실 거라면 참고하시길~)

주욱 내려가다 보면 오른편에 보이는 방치된 숲(?)
우리나라 같으면 보도블럭 깔고 벤치 놓고 했겠지.
아니면 벌써 밀어버리고 건물 하나 올렸거나.
뭐 그건 그거대로 나름 좋은 점이 있겠지만, 그냥 저대로도 좋지 않을까?
각자 취향이 있겠지만 난 저게 더 좋다.

여기서 다시 오른 쪽으로.
저 아스팔트 길에 불쑥 서 있는 나무, 우리나라면 저 것도 당연히 밀어버렸겠지.

저어기 저 갈림길에서 다시 오른 쪽으로.

그럼 이런 길이다.
저 끝에서 좌로 굽은 길이다.

길을 다 내려가서 좌로 꺾기 전에 정면을 보면 저런 풍경이 보인다.
오른 편에 말이 보인다.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달랏에는 말이 개처럼 흔하다. ㅋㅋ
왼 편에 보이는 주택들 중에 달랏 대학생 자취방촌이다.

좌로 꺾으면 이런 길이다.
길 왼 편의 건물은 뭔가 공사 중인듯 한데, 참 소박하게 한다.
끝까지 와서 좌측으로 가면...

요런 길이 나온다.
여기서도 오른 쪽 길로 간다.

짜잔~
저 건물이 한국어 과사무실이 있는 건물이다.
바로 보이는 모퉁이 사무실이다. (저 빨간 줄무늬 상의의여성이 서있는 곳)

사무실에 들어가니 구교수님은 안계셨고, 어떤 남자분이 계셨다.
여기까지 안내해 주었던 한국어과 학생이 인사하며 교수님이라고 한다.
일단 인사 드렸다.
그런데 인사를 받으시는 표정이... 뭔가 얼떨떨하고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는지......"
일단 자기소개를 하고 구교수님 찾아뵈러 왔다고 했다.
지금 좀 전에 나가셨다고 하신다.
어디 가셨냐 여쭤보니... 무슨 일 때문에 그러냐 물으신다.
... 다시 자기소개를 하며 자초지종을 말씀 드렸다. -_-;;
작년에 구교수님 뵜던 사람인데 작년에 뵙고 외국에서 한국어 교육하는 데에 관심이 생겨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일 때문에 여기 온 차에 인사도 드리고, 한국어 교육 분야에 대해서 말씀도 좀 듣고 하려고 찾아 뵈었다...
그 분 내 얘기를 자르듯 대뜸,
" 글쎄요. 여긴 이런 식으로 찾아 온다고 해서 자리가 나고 그러는 곳이 아니에요. 학교에서 배정된 TO가 있고 조교도 코이카에서... 이렇다 저렇다..."
뜨악했지만 어른 말씀하시는데 뚝 자를 수도 없고 해서 일단 얘기를 들었다. (3분 정도...)
그러다 타이밍을 봐서 다시 말씀 드렸다.
" 저어... 교수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듯 한데요. 전 자리 봐달라고 온게 아닌데요. 아무리 물정을 몰라도 그렇지, 능력도, 인간성도 검증도 안된 사람이 무작정 찾아 와서 자리 부탁한다고, 자리 생기고 그러는거 아니라는 건 저도 당연히 알죠. 전 그냥 구교수님 뵙고 인사드리고 조언 좀 들을까 해서 온거 거든요. 작년에 구교수님 뵈어서 저 알고 계시고요..."
" 아, 그러세요?"
" 네... 여기 그런 분들이 자주 찾아 오나 보네요?"
" 가끔 오시는 편이죠... 어쨌든 여기서는 자체적으로 학생들 모아서 스터디하는 것도 과 차원에서는 쉽게 허가가 나지 않아요. 가르치는 사람이 검증이 안된 상태인데...(중략)"
하아... 화가 치민다.
난 같은 한국인이라는 별거 아닌 공통점을 빌미로 뭔가를 부탁한 것도 아니고, 분명히 자기 소개와 방문 목적을 밝혔는데... -_-;
차라리 알려 줄 수 없다고 했다면 납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잡상인 취급은 예의가 아니지 않나.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하여 인격도 고매해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렇다고 확 되받아 칠 것도 아니니 참고 원만히 넘어 가야 겠다.
비록 나를 나쁘게 봤을지는 몰라도, 나쁜 마음으로 해주는 얘기는 아니니... 쩝...
" 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습니다만, 나중에 많이 참고될 거 같네요. 그나저나 그럼 구교수님 뵈러 나중에 다시 찾아 뵙는 편이 나을까요?"
" 아, 아뇨. 아마 멀티미디어실에 가셨을 겁니다."
...으윽... 첨부터 그 대답만 해주셨으면 될 일 아닙니까... -_-;;

복잡한 마음을 추스리며 한국어 과사무실 앞마당에서 내려다 본 풍경.
계단식으로 알뜰하게 개간된 밭과 널직하게 펼쳐진 운동장이 대조적이다.

여기까지 안내해 주었던 한국어과 학생이 다시 멀티미디어실까지 안내해 주었다.
그 바람에 수업시간에 좀 빠듯했는지 건물까지 안내해주고는 인사하며 급히 자리를 떴다.
고마워요~ 하지만 4학년 치고는 한국말 실력이 좀 우려스럽더군요.
수업 열심히 듣고 좋은 회사 취직하길 바랄게요.

대학 전체 멀티미디어실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한국어과 멀티미디어실이 따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국어의 위상인가?
코이카와 모기업이 지원해 준 컴퓨터들이라고 한다.

멀티미디어실에 들어서니 조교로 보이는 한국분이 계셨다.
다시 자기소개를 하며 구교수님 계신지 물었다.
바로 옆 학생식당 겸 까페에 계신다고 한다.
달랏 대학교의 조교는 코이카를 통해서만 온다고 알고 있어서, 여쭤 봤더니 맞단다.
코이카를 통해서 이 곳에 오는게 어려운지, 필요한 자격은 뭐가 있을지 여쭤봤다.
돌아오는 대답은,
" 글쎄요. 그건 저도 잘... 그냥 코이카에 문의하셔야 할듯 한데요."
" 아, 네..." -_-;;
이 분도 상당히 어색하고 경계하는 기색이 느껴진다.
아놔~ 여기 한국 사람들이 사기치러 많이 오는 건가, 왜 이리 다들 경계하는지...
다른 분 여행기보니 한국어 발표회에 초대되기도 하고, 다들 잘해 주시더라 그러던데...
뭐야? 내가 남자라서 그런 거야? 아니면 인상이 더러워?
같은 한국인이라고 무조건적인 친절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경계를 받자니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그럼 수고하시라는 건조한 인사를 건네고, 그 어색한 공간을 빠져 나왔다.

달랏 대학교 식당 건물은 학교 부지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는지, 경치가 탁 트였다.
더구나 야외에 설치한 자리에 앉아서도 그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점이 좋았다.
달랏에 온다면 한 번쯤 이 곳에서 커피 한 잔 하는 것도 좋을듯.

우여곡절 끝에 구교수님을 뵐 수 있었다.
다행히 나를 기억하고 반겨 주셨다.
혹시 몰라 절대 자리 봐달라고 온게 아니라고 제삼 강조를 하고서(ㅠ_ㅠ), 여러 말씀을 여쭈었다.
여러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인사 드리고 돌아오는 길, 왠지 지친다.
그냥 부담없이 인사하고 안부 전하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_-;;

아 참, 항간에 달랏 대학교 한국어과가, 신설된 일본어과에 밀려 더이상 신입생을 받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말씀을 구교수님께 드렸더니 상당히 불쾌해 하시며 올해는 작년보다 더 뽑는다고 하셨다.
우움... 누가 그런 악의적인 뜬소문을 퍼뜨렸는지... -_-;

이 자리를 빌어 확실히 말씀드린다.
달랏 대학교 한국어과는 2008년도에도 분명 신입생을 계속 뽑을 예정이며, 오히려 규모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화이팅~ 한국어 화이팅~

 

만으로 4년 반 후, 추가 사항

이제 세상 물정 좀 알고, 남 가르친다는 것도 밥벌이가 엮이면 그리 아름답거나 고상하지 않다는걸 느낀 지금, 그 교수나 조교는 그럴만 했다는걸 이제는 알겠다.

교육은 결국 자기가 아는 것을 가르친다는 것인데, 나만 알고 있으면 모르되 제자도 그걸 알게됨으로써, 제자는 곧 스승의 경쟁자가 되어 버린다. (청출어람이란 말이 왜 달리 있겠나.)

그것도 스승 한 명 당 제자라는 경쟁자가 해마다 몇 수십명이 쏟아져 나온다.

그 제자 중에는 스승보다 싼 값을 감수하고라도 얼마든지 스승의 자리를 대신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결국, 고용보장이 되어 있지 않은 교육자는 누구보다도 정치적이고, 사회적이어야 하며, 경쟁자의 기미에 누구보다도 예민해야 살아남는다는 얘기다.

그렇다. 그들은 내가 자리 봐달라고 할까봐 경계를 한게 아니라, 내가 단순히 생각했던 그 '말씀 나누고 조언 듣는 행동' 그 자체를 경계했던 것이다.

거기다 대고 나는 '말씀 나누고 조언 듣는 행동'만 할테니 안심하라는 듯이 얘기한거고... ㅋㅋㅋㅋ

이런저런 상황 이해하게 된 지금도 그 교수와 조교의 태도는 여전히 못났다고 생각한다.

다만 예전의 기분 나빴던 생각은 간데 없고, 오히려 미안한 마음마저 약간 (아주 약간) 든다.

먹고 살기 위해 타고 있는 그 불안할 굴레를, 위협할 것 같은 존재에 대한 경계심과 적대감.

뱀은 자길 위협하는 거 같아 불안해서 사람을 물지, 가만히 있는데 쫓아와서 물지는 않는다던가.

 

그들이 날 그리 대했다 기분 나쁠 것도 없고, 내가 그들을 교육자이니 이럴 것이다라고 미뤄 기대한 것도 우습다.

그래, 그 때 난 어렸다.

뭐 지금도 썩 자랐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세상이나 자 자신을 보는 시선이 많이 건조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