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말레이시아

[Kuala Lumpur] 06. 바뚜 케이브 Batu Caves

명랑쾌활 2014. 4. 21. 08:51

batu 돌, 바위  caves 동굴 (영어)

어쩌다 보니 고유명사가 되었을뿐, 사실 바뚜 케이브는 말 그대로 '바위 동굴'이라는 뜻이다.

 

전철로 오는 사람들은 옆문으로 들어간다.

으리으리한 정문길은 차를 타고 오시는 분들을 위한 거다.

 

사진 우측 하단에 걸려 있는 플랭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바뚜 케이브 스타 호텔 1박 50링깃 2시간 20링깃>

...저 2시간이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 2시간일까?

 

적당히 인간미 있어 보이는 뱃살을 가진 하누만 Hanuman 아저씨.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하누만은 인도의 고대 대서사시 라마야나에 나오는 원숭이 왕으로 서유기의 모티브가 된다.

어쩌면 어벤져스 3탄에 헐크 아빠로 나올지도 모르겠다.

 

원숭이 따위는 비둘기 만큼 흔한 동네다.

지들 끼리도 별로 신경 안쓰는듯.

 

공작의 일종인듯한 새도 어슬렁 어슬렁

참고로, 바뚜 케이브에 모신 무루간 Murugan 신이 타고 다니는 새가 공작이다.

 

궈먹지도 않을 잉어 떼들이 바글바글

 

숙박업소 겸 동물원 겸 갤러리인듯

 

저길 올라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심장이 월렁거린다.

 

인니는 오늘이 하리 녀삐 Hari Nyepi (힌두력 신년 첫날)라고 휴일인데, 말레이에서는 아니다.

혹시 알아주는 힌두교 성지인 이곳에서도 뭔 행사라도 있을까 싶었는데 저언혀 없다.

발리 힌두교가 좀 독특하다던데, 발리 힌두교에서만 중요한 날인갑다.

 

바뚜 케이브의 흉물 명물 비둘기떼

아하하하~~ 두팔 저으며 뛰어들면 날개로 따귀 제대로 얻어 맞을듯.

몇 놈은 밟힐지도 모른다.

자고로 쪽수 많으면 같잖게 거들먹 거리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씨바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어 하며 계단을 오른다.

높은 계단이나 산을 오를 때 씨발씨발 주문을 외우면 그래도 좀 덜 힘들다.

누가 시켰으면 그 사람을, 아니면 자기 자신을 욕하면 된다.

 

아으 내가 미쳤지 뭐 줏어 먹을게 있다고... 하면서도 꾸역꾸역

 

다크 케이브 투어는 꼭데기 거의 다 올라와서 있다.

그러니 난 바뚜 케이브에는 안올라가고 다크 케이브만 하겠다는 꾀를 부려봐야 소용 없다.

 

거의 다 올라왔다.

계단을 오르다 힘들 때는 뒤를 한 번씩 봐주는 것도 힘이 난다.

내가 이미 해냈다는 것도 대견하고, 그 일을 이제 허덕허덕 하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하고.

하지만 인생의 계단은 끝이 없어서 뒤돌아 봐야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오, 끝이다 끝. 

 

다 올라와서 내려다 보는 경치는 계단이 약간 굽어 있어 전망이 좀 별로다.

타이푸삼 축제일이 되면,

차이나 타운의 스리 마하마리암만 사원에서 출발하는 수레가 여기까지 행진해 온다고 한다.

(아들 축제라고 엄마가 축하해주러 오는듯)

저기 보이는 저 넓은 광장에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서 여기저기 꼬챙이랑 갈고리를 주렁주렁 피부에 꽂고 다닌다고 한다.

 

지은 죄를 육체적 자학으로써 퉁치는건 자기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적일 게다.

하지만 그런다고 지은 죄가 상쇠되거나 소멸되는건 아니다.

뉘우치고 앞으로는 착하게 산다고 지은 죄가 없어지는건 아니다.

그게 과거의 죄와 상쇄될 수는 없다.

지은 죄는 이미 지어진 죄고,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

예전에 지은 죄도, 지금 하는 착한 일도, 각각 그에 따른 댓가가 있는거다.

'어느 순간' 그동안 지은 죄가 없었던게 된다는 종교적 믿음은, 그 죄에 당한 사람에게 너무 뻔뻔스럽지 않나 생각한다.

지금 천 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을걸 구해주고 있다 하더라도, 옛날에 빵 한 개 훔쳤던 죄는 그것 그대로 그에 따른 댓가를 치룬다는게 셈이 분명하다.

도화지 개판으로 그려도 새걸로 바꿔준다는게 얼마나 안이한가.

이미 그려진 부분은 온전히 그가 떠안아야 할 몫이다.

이런 분명하고 매몰찬 셈이 맘에 든다.

'아무리 그래봐야 인생이란 도화지는 한 장 뿐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냉정하게 말하는 현실주의가 맘에 든다.

 

옆에 공작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저 작은 신상도 무루간 신인듯.

 

라자 라비 바르마 Raja Ravi Varma 의 무루간 Murugan

후방의 공작 꼬리깃 시트가 편안한 승차감을 보장할 것 같지만, 저리 과적을 해서야 동물학대 아닌가.

 

앞의 스뎅통은 당연히 식수통이나 휴지통이 아니다.

신상 앞에 돈통이 그렇고, 예배에 헌금이 그렇고, 신앙과 돈이 밀접한 관계라는건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나.

돈으로 사랑이나 행복은 살 수 없다는 말처럼 대표적인 형이하학적 대상인 돈은 사실, 신심 같은 형이상학적인 부분도 대체할 수 있는 대단한 물건이다.

 

혹자는 신성한 분위기라고도 했는데, 마징가 제트 쯤은 날아 올라줘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무루간 신의 아빠이자 힌두교에서 가장 짱 센 신인 시바도 한 구석에 모셔져 있다.

저 아저씨 포즈가 워낙 독특해서 힌두교 잘 모르는 내가 척봐도 알겠다.

그럼 그 옆에 있는 여신은 무루간 신의 엄마인 암만인듯.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원숭이는 안보이고 왠 닭들이...

 

이렇게 내려가면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면 아주아주 흐뭇하다.

그래서 예방주사도 먼저 맞는게 좋다.

 

뒷모습을 보니 무르간 아저씨, 당당하고 여유로운 앞모습과는 달리 좀 불편해 보이는걸 끼우고 계셨다.

역시 삶은 보이는 것보다 치열하다.

 

박스 3개를 머리에 이고 느리지만 꿋꿋하게 올라가고 있다.

1년에 한 번 꼬챙이와 갈고리를 꼽고 고행하는 것 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고행이 더 경이로와 보인다.

혹여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모든 고된 일은 존중 받아 마땅하다.

 

계단 입구 뒷면에...

 

이러면 좀 곤란하지 않나 싶은 신상도 보인다.

모유와 우유를 동시에...

 

바뚜 케이브 입구 근처 가게에 앉아 좀 쉬었다.

한동안 안쓴 것처럼 보이는 빙수 얼음 가는 기계가 보인다.

 

오전 10시 쯤, 이제 슬슬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왜 굳이 더울 때 와서 고생하나 모르겠다.

바뚜 케이브는 절대로! 아침 일찌 오길 권한다.

일부러 고행 하겠다면 꼬챙이도 몇 개 준비해 오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