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인도네시아

자띠루후르 저수지 Waduk Jatiluhur - 잠깐 짬 나서 가봄

명랑쾌활 2013. 9. 11. 08:29

어찌어찌 짬이 나서, 평소에 한 번 가볼까 했던 자띠루후르 저수지에 가 봤다.

 

자카르타 동쪽 방향인 발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이륙한지 얼마 안되어 창 밖으로 어엄청 큰 규모의 호수를 볼 수 있었다.

시간, 지형 상으로 보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호수가 아니라 저수지인데, 경치는 그럭저럭 볼 만 하지만 편의시설이 별로 없어서 별로라고 한다.

 

자카르타 면적과 비교해 보면, 만만치 않게 큰 저수지다.

자와섬에서 가장 큰 저수지-호수라고 한다.

인니에도 크고 작은 저수지들이 많다.

쌀농사를 짓는 국가는 필연적으로 관개수로가 발달하게 마련이다.

 

날 잡아서 간게 아니라 짬이 나서 간 거라, 저 빨간 색으로 표시된 곳만 가봤다.

구글로 살펴 본 바로는, 북부와 서부 말고는 길이 없어 접근도 힘들어 보인다.

 

자띠루후르 Jatiluhur 톨게이트로 나와 도착한 저수지 입구

배로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선착장이 있었고, 단촐한 음식점 몇 개, 낚시하는 사람... 이게 전부다.

탁 트여 경치도 좋고, 민물 비린내도 나지 않았다.

저 멀리 저수지 위에 바글바글한 건물은 양식장으로 보인다.

 

지나쳐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50여 미터 정도 들어가니 인니 생활 통털어 가장 상태가 안좋은 비포장도로를 만났다.

재활용 쓰레기 사는 차량이 앞에 가지 않았다면 더 이상 갈 엄두를 못내고 도로 나왔을 정도다.

 

이 심각한 비포장 도로에 허름한 집, 그리고 그 옆에 주차된 차량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어어엄청난 비포장길을, 앞의 트럭을 길잡이 삼아 계속 달려, 저수지가 탁 트인 곳까지 도착했다.

 

문명(?)으로부터 고작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이 마을은, 육로로만 따지면 과장 좀 해서 오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3km를 가자고, 차로 20분이 걸렸다.

일반차량으로는 가지 않는게 차량의 건강에 이로울 거다.

하지만 아마도 배가 주된 교통수단이 아닐까 싶다.

 

인니에서는 거리로 얘기하는 것이 무의미할 때가 많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거리를 시간으로 환산해서 얘기한다.

그나마도 편차 1시간은 기본이다.

한국도 예전에는 그랬다.

여기서 두어시간 걸어서 고개 두 개 넘어 주욱 가면 무슨 마을이 나오는데... 이런 식이었다.

한국에서 업무적으로 인니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몇 km냐는 질문을 하곤 한다.

화물 운송이나 이동 시간을 산정하기 위해서라면 의미가 없는 질문이다.

도로 사정이 안좋은 인니에서 미터법은, 부지나 건물 면적을 가늠할 때나 유용하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고집스럽게 몇 km인지를 재차 질문한다.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고, 익숙한 것의 굴레에 스스로를 가둬넣고, 자신의 상식이라는 잣대로 다른 대상을 재려는 오류를 흔히 범한다.

특히, 상명하복과 수직적 인간관계로 점철된 한국의 조직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식은 곧 권위이고, 그 상식의 오류를 지적하는 행위는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나는 이렇게만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렇게 사는 방법 밖에 모른다며, 사뭇 비장하기까지한 그들이 애잔하다.

하긴, 노예에게 알아서 일을 찾아서 하라는 것만큼 어려운 지시가 어디있겠나.

 

구글에 나온 정보와는 달리 차량이 지날 수 있는 길은 여기에서 끊겼다.

이어진 길은 오토바이만 갈 수 있는 폭이었다.

왔던 길로 다시 나와야 했다.

 

입구를 나와 남쪽 방향으로 저수지변을 따라 내려가니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넓이의 수문교가 나왔다.

 

수문교를 넘자 탁 트인 경치와 함께 길다랗게 둑이 뻗어 있다.

연인, 혹은 동성친구끼리 온 사람들이 뚝방길을 따라 앉아 있다.

분위기로 보아, 데이트 장소이기도 하고, 남녀 간 즉석만남 장소인듯 하다.

 

인니도 대도시는 안그렇겠지만, 시골의 연인들 데이트는 소박해 보인다.

그냥 경치 좋은 곳에 나란히 앉아 두런두런, 어깨를 끌어 안거나 하는 장면도 거의 못봤다.

그 이상의 행동들(?)을 하는 곳도 물론 있지만, 은밀한 곳일테니 외국인인 내 눈에 쉽게 뜨일 리가 없다.

누차 얘기하지만, 인니가 무슬림이 대부분인 나라라고는 해도, 다 사람 사는 곳이다.

이슬람이 생활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종교라고는 해도 인간 본능을 막을 수는 없다.

본능은 종교 이전에, 종족 보존의 필수 조건이다.

 

동아시아의 어느 나라는 그런 인간 본능을 법으로 억제하려는 엄청난 시도를 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게 가능했다면, 5천년 간 그 수많은 나라들은 병신이어서 그걸 통제를 못했거나, 모두 도덕이 땅에 떨어진 사악한 나라여서 내버려뒀다는 얘긴가.

연인 사이의 혼전관계는 괜찮다는 것도 우습다.

사랑이라는 법적 기준 외의 개념을 매개로 한 상호합의 하의 관계는 합법이고, 돈을 매개로 한 상호합의 하의 관계는 불법이라는건 어불성설이다.

차라리 발생한 소득에 대한 세금 포탈을 죄목으로 했다면 논리적이다.

호감, 결혼 계획, 미래에 대한 달콤한 희망이라는 불확실한 개념보다는 돈이 확실하지 않나?

연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선물을 증여하는 행위 역시 혼전관계에 대한 댓가성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요컨데, 지금 그 동아시아의 어느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법적 문제 임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비논리적이며, 심지어 광신적인 부분까지 있다.

도덕이라는, 뜻은 분명하지만 기준은 모호한 개념을 법의 명분으로 삼게 된다면,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은 자는 법적 처벌을 받는다는 법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도덕을 근거로 한 명분이 종교를 근거로 한 명분보다 더 위험하다.

최소한 종교는 경전이라는 명시된 기준이라도 있지 않은가.

 

저수지 반대편 풍경

 

저수지 쪽 풍경

 

안전장치 따위는 없다! ㅋㅋㅋ

 

인니에서 이정도면 쓰레기가 적은 편이다.

 

경치 좋은 저수지변으로 쓰레기가 쌓여 있다.

세대가 바뀌어야 가능할테니, 앞으로 최소 20년 내에는 이런 쓰레기가 없어지지 않을거다.

 

 

 

 

나중에 오토바이 타고 뚝방길 너머도 도전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