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태국 0808

깐짜나부리 투어 Part 1 - 묘지, 다리, 열차

명랑쾌활 2008. 10. 21. 14:43

전날 신청한 깐짜나부리 투어. 오전 7시까지 동대문 앞으로 가야 했다.
같이 신청한 지혜양과 루프뷰를 나섰다.
원래 잠신님도 같이 가실 예정이었으나, 파타야에 일이 있어서 오늘 오후에 그리 가신다고 하셨다.
나중에 파타야에서 다시 뵙기로 했다.
(잠신님은 내가 투어 간 사이에, 태사랑 소모임 <낀 아라이> 게시판에 ' 명랑쾌활, 미모의 여대생과 단 둘이 깐짜나부리 투어 가다.' 라는,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왠지 뉘앙스가 이상한 게시글로 나를 낙슥사 사건에 휘말리게 하셨다. -_-;)

한산하다.
방콕 사람들의 분주한 아침 시간은 언제일까?

동대문 앞에 도착하니 한국분들이 잔뜩 모여있다.
우리 투어는 총 14명.
지혜양은 붙임성 좋게 또래의 혼자 온 여자분과 어느새 친해져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긴... 우리 쪽은 나이 차가 너무 커서 불편한 부분도 있었겠지.
수다를 얼마나 굶었을까? ^^
또래 만나서 신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지혜양이 새로 만난 분과 인사 시켜주긴 했지만, 서먹함과 불편함이 느껴진다.
그런걸 깨기 위해선 상호 간에 노력해야 하는데, 그 분에게서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고 나 역시 그랬다.
숫기가 없는 만큼, 혼자 있는 것도 익숙하다. 불편하지 않다.
오랜만에 혼자 여행하는 기분을 즐겨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7시 반 쯤 15인승 미니버스가 왔다.
15인승 버스에 14명... 이거 좋지 않다.
상황을 짐작하고 출입문 자리를 눈치껏 차지하고 앉았으나... 늦게 도착한 남자 두 명 때문에 뒷자리에 앉게 됬다.
실수였다.
내려서 그 두 명을 뒷자리로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그 자리를 고수해야 했다.
맨 뒷자리에 네 명이 앉게 됐는데, 그러기엔 좁았다.
게다가 내 자리는 왼편 구석이었는데 앞좌석이 있어서 매우 좁았다.
(부득이 정원의 미니버스를 탈 일이 있다면, 절대로 이 자리 만큼은 피하라고 권한다.)

애초에 그렇게 앉았으면 팔자려니 했을텐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래 저 자린 내 자린데 늦게 온 사람 때문에 피해본다는 생각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이런 마음은 스스로에게 손해다. 빨리 털어야 한다.
이럴때 가장 좋은 방법은 자는 거다.
그런데 이마저도 상황이 좋지 않다.
늦게 온 두 명 중 한 명은 문 옆 자리에, 한 명은 내 옆에 앉았는데, 접촉에 둔감한 성격인듯 했다.
자꾸 반팔의 맨팔뚝이 내게 닿고, 붙이고, 비빈다.
난 (지랄 맞을 정도로) 접촉에 예민하다.
모르는 사람은 미녀라도 닿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두 팔을 창 측으로 붙이는, 비틀린 자세와 비틀려가는 마음으로 잠을 청해야 했다.

한시간 정도 잤을까, 깨어보니 옆 자리의 남자의 자세도 그리 편해 보이진 않는다.
아마 내 의도 노골적인 자세 때문이겠지.
이 상황은 내가 나쁜거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쉬고 다시 타니, 다들 새벽잠이 가셨는지 여기저기 대화가 시작된다.
내 옆자리의 남자는 그 옆자리의 둘이 일행인 아가씨들에게 말을 붙인다.
질문이야 다 그렇다.
언제 왔냐... 처음 이냐... 어디어디 갔었냐...
물끄러미 창 밖을 보며 가는데 대화가 들렸다.
내용을 듣자 하니 옆자리의 남자 태국에 많이 온 듯 하다.
암파와는 어떻다, 아유타야는 저떻다, 짜뚜짝은 이렇다...

정보도 좀 얻을겸, 아까 미안했던 맘도 있고 해서 친해볼까 조심스레 말을 붙여 본다.
" 태국 자주 오셨나 봐요?"
뭔가 미묘한 표정.
" ...왜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 아뇨. 아까 옆자리 분들하고 얘기하시는거 듣다가 그렇게 생각했어요."
" ...아... 이번이 세 번째예요."
적절치 못한 상황에 적절치 못한 질문이었나 보다.
아마 내가 얼마나 왔길레 그렇게 잘 알아서 작업거냐는 뜻으로 말을 던진 것으로 오해한 모양이다.
난 처음 왔는데... -_-;;
어물어물 몇 마디 더 나누다 불편함만 더해지고 대화는 끊겼다.
이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좀더 노력해야 할까...
귀찮았다. 그래서 철저한 방관자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에 당한 외국인 전사자의 묘지.
' 묘지'를 ' 관광' 할 마음의 준비도, 죽음을 애도할 숙연함도 내겐 없었다.
들어가지 않고 울타리 밖에서 그냥 사진만 두어 장 찍었다.
딱히 이곳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관광 코스로 보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묘비 배경으로, 나무 배경으로 미인대회 포즈를 하고 서로 사진을 찍는 옆의 옆자리 아가씨 둘이나, 자연스러워 보이려 고심하며 아가씨들 주위를 맴도는 옆자리의 남자를 보니, 쓸 데 없는 생각인듯 하다.
그래 그래. 관광은 어디를 가느냐 만큼 어떻게 즐기느냐도 중요하지.
하지만 반바지에 끈나시를 입었을지언정, 조용히 묘비에 적힌 글을 읽으며 다니는 웨스턴들과 비교하는 내가 별난걸까.

왜 태국 전사자 묘지가 아니라 외국인 전사자 묘지일까?
2차 대전 때 태국은 일본 편이었다. 막판에 연합군 편으로 붙었다.
저렇게 외국인 전사자 묘지를 만들고, 깨끗하게 관리하는 게 그리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삐딱한 시선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마음이 비틀리면 세상이 비틀려 보인다.
그리고 지금 난 마음이 그리 편한 상태는 아닌 듯 하다.

이때 이렇게 다리를 건설했던 가락이 있어서 그런지, 지금도 일본은 태국에 다리 좀 놔주고 있다. (여전히 삐딱한 시선일까? ㅋㅋ)
영화를 봤지만 기억이 가물거려서 그런지, 그냥 철교로만 보인다.
마지막 사진의 노란 옷 아가씨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씽끗 웃어서 좀 당황스러웠다.
저 아가씨가 나에게 미소를 보내는 이유에 대해 부정적인 이유는 서른 두 가지 정도 추론할 수 있었지만, 긍정적인 이유는 단 한 가지 밖에 없었다.
내가 저 아가씨 취향이라는... 그늘가서 좀 쉬어야 겠다. 더위는 음식이 아니다.
발목에 매인 쇠사슬이 불만인지, 자꾸 발을 차는 코끼리가 안쓰럽다.
저 물이 흐른 흔적은 아마 소변이겠지.
자본주의의 구성원이 되어, 관광산업에 일조하여 생을 영위하게 된 코끼리는 성공한걸까.
단, 자발적이라는 전제 하에...
생각지도 않게 건진 사진.
태국 사람들의 색채감각에 문득문득 놀랄 때가 있다.
광장 한 가운데 멋진 포즈로 널브러져 주시는 개.
차이고 밟혀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바로 옆에 사람이 지나가도 신경 안쓴다.
비쥬얼 따위는 개에게 줘버렸지만 그래도 드문 드문 놓여진 쓰레기통이 친절하게 느껴졌다.

땡볕에 왕복횡단 하느라 지친다.
물 한 병 사들고 광장 한 구석 그늘에 앉아 물끄러미 구경 온 사람들을 구경한다.
문득 내 옆의 옆자리인 두 아가씨가 철교 쪽으로 간다.
아마 전쟁박물관을 꾸역꾸역 보고 나온 모양이다.
(난 동대문 사장님의 정보에 따라 일찌감치 다리만 둘러보고 그늘에서 쉬고 있는거다.)
어라라... 약 30여 미터 뒤로 내 옆자리의 남자가 보인다.
두 아가씨 철교를 건넌다.
잠시 후 남자가 철교 입구에 도착한다.
두 아가씨는 건너다 도중에 되돌아 왔는지 입구를 나서고 있다.
남자는 아주 우연히 만났다는듯 말을 건다.
잠시 뭐라 뭐라 대화, 두 아가씨는 광장을 중심으로 철교 맞은편의 시장으로 향하고, 남자는 다리를 건넌다.
1분 쯤 후, 남자가 철교 입구에 나타났다.
걷는 방향보다는 저멀리 시장 쪽에 시선을 더 자주 던지는 묘한 행동으로, 광장을 애둘러 걷는다.
그러다 나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친다.
(정확히는 선글래스를 쓴 내 얼굴을 정면으로 봤다. 내 입가에 걸린 미묘한 미소는 봤는지 모르겠다.)
움찔, 당황한 표정. 재빨리 시선을 돌린다.
방황하던 남자의 정처없는 발걸음은 결국, 우연히도(!) 시장에 당도하게 된다.
그 순간 나는, 그를 순진한 집적남이라 마음 속으로 이름 지어 주었다.

철교만 보면 맨숭맨숭 하다. 열차도 한 번 타 줘야 겠지.
<죽음의 열차>라는 거창한 이름의 기차를 타러, 투어 일행은 미니버스에 다시 몸을 실었다.
콰이 강의 다리 옆에도 기차역이 있는데 왜 버스로 다른 역으로 가는 걸까?

죽음의 열차를 타기 위해 도착한 Thakilen 이라는 역.
순진한 집적남과 그의 타겟들, 문제의 낙슥사가 보인다. ㅋㅋ

저쪽에서 와서
저쪽으로 간다.
우리나라 옛날 시골 역 같은 풍경은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관계의 좋고 나쁨은 정반대이지만.

우리나라 옛날 완행열차같은 풍경.
의외인 것은 이 열차가 현지인들의 교통수단으로 사용된다는 거다.
내 맞은편에 앉았던 아이와 아버지.
아버지의 손가락이 무지 길어서 깜짝 놀랐다.

아이에게 가지고 있던 마이쮸를 한 개 까서 주었다.
먹어야 하나 찰흙처럼 가지고 놀아야 하나 망설이다 입에 넣는다.
눈이 휘둥그레 반짝이더니 하나 더 달라고 손을 뻗는다.
하나 더 준다.
또 손을 뻗는다.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잡아 거둔다.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두어 번 손을 뻗다가 조용히 포기한다.
우리나라 아이들처럼 울며 떼쓰거나 집요하지 않다.
울며 떼써도 소용없는 것들에 익숙해서일까...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와 진다면, 보다 행복할 수 있다.
아이에게 괜한 것을 주는게 아닐까 했는데, 약간 마음이 편하다.

당시에 변변한 도구도 없이 인력으로 이걸 만들었다니, 당시의 현장이 얼마나 참혹했을까.

점심 먹은 곳.
깨끗하고 음식도 맛있었다.
다들 아침도 못 먹었을텐데 의외로 호응이 적다.
덕분에 나와 다른 남자 한 분만 신나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