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사람들

명랑쾌활 2010. 4. 17. 20:20

고작 반 년 남짓 살고 느낀, 섣부르다해도 할 말 없는 생각들이다.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려고 하지만, 사실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어쨋든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 사적인 시각이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니까, 그 점 고려해서 보길 바란다.

이곳에 와서 가장 처음 사귄 친구, 데디.
아파트 내 세탁소에서 일하고 있으며 가장 우두머리 격이다.
제법 살벌하게 생겼지만, 그래도 그 인상처럼 총명해 보인다.
벌써 결혼해서 애가 둘인데, 모두 시골에 산다.
여러 가지 도움을 주는 고마운 친구.
열쇠 복사 사건만 아니었으면 정말 좋은 사이가 될 수도 있었는데...
어쨌든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순박하게 생긴 데덴.
청소파트다.
얌전하며 말이 별로 없는 편.

에벤. 청소 파트

에남.
이름을 보아하니 6째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 보니, 그만 둔 모양이다.

이땅
이 친구도 요즘엔 통 안보인다.

이잘.
이 친구도 제법 친했었는데, 최근 들어 잘 안보인다.

무아스.
왠지 남미 축구선수 삘이다.

람단.
장난끼 넘치는 이 친구도 이제 보이지 않는다.

로니.
게슴츠레한 표정이지만 행동에 왠지 관록이 있어 다들 대접해 주던 친구.
이 친구도 요즘은 안보임.

사ㅎ룰(오타 아님)
영리하고 뺀질거릴듯한 인상답게 청소 파트의 우두머리 격이다.
내게 가장 농담이나 장난을 많이 치던 친구인데, 연초부터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뭔가 문제가 있어서 (예를 들어 파벌이라던가) 대량으로 그만 둔 모양이다.

요노.
사진은 왠지 사악하게 나왔지만, 정말 착한 친구다.
약간 날라리 같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종교에 대한 믿음도 진지한 편인듯 하고...
아, 물론 종교 얘기는 하지 않으니, 본 바가 그렇다는 얘기다.
여기서 섣부른 종교 얘기는 절대 금물이다.


작년, 여기 지내던 초창기에 외로움이나 답답함을 이들이 조금이나마 해소해 주었다.
애초에 독하게 맘 먹고 공부하기로 한 바, 한국 사람들은 수두룩 했지만 그닥 친해질 수 없었다.
당장은 도움되겠지만, 공부에 분명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게 될테니까.
그 덕에 반 년을 넘게 봐오면서도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과는 지금도 데면데면한 관계다.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의사소통도 되고 활동폭도 넓어지게 되어, 예전처럼 빈번하게 얘기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만나면 반갑게 인사는 하고 지낸다.
(그래도 좀 미안한 감은 있다. 상황 바뀐다고 사람 변한거 같아서.)

이들과의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뿌아사 기간(라마단 금식기간) 저녁 때 모여서 같이 밥을 먹던 때다.
당시엔 말을 못해서 거의 알아 듣지 못했지만, 그래도 낮 동안의 고통스러운 금식이 끝나고 다들 모여서 웃고 떠들며 음식을 먹는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군대에서 훈련 같이 새빠지게 하고서 모여서 밥 먹을 때 기분이랄까.
별 배척없이 끼워 주어서, 같이 밥을 먹곤 했다.
이때의 경험으로, 이슬람의 금식 기간은 고행임과 동시에 축제라는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뭐 꼭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 번은, 한 친구가 여자애를 데리고 왔다.
그러더니 나한테 소개를 시켜 준댄다.
춤 추는 것도 좋아하니, 나중에 따로 자리 마련해 줄테니 저녁 사고 같이 놀잖다.
눈치가 왠지 지 여자친구인듯 하여 물어보니 아니랜다.
자긴 결혼했는데 무슨 여자친구가 있겠냐며, 그냥 아는 동생이랜다.
그냥 적당히 얼버무려 거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역시나... 애인이었다. -_-;;
이 정도면 농담이라도 도가 지나친 것이 아닐까 싶은데...

또 한 번은 라마단 때 일인데, 한 친구가 넌 밥 안사냐고 묻는다.
그렇잖아도 한 번 쯤 밥을 살까 생각도 했지만, 괜히 먼저 말하면 졸부 티내면서 무시하는 것 같아 지켜보고 있었던 터라, 그러마 했다.
그랬더니 KFC가 괜찮은데 어떠냔다.
이런... 이 친구들 10명이서 모여서 먹을 정도 음식이 대략 6만 루피아, 7천원 정도면 떡을 친다.
그런데 KFC에서 사면 싼 메뉴도 인당 2만 루피아 정도 한다.
그 외에도 이런 낚시질은 간간히 시도되었다.
참고로 내가 사기로 한 날, 그 친구 중 한 명에게 대신 음식 사다 줄 것을 부탁하며 얼마 정도면 되겠나고 물었다.
6만 5천 루피아... -_-;;
장담하건데, 5천 루피아는 자기 공임일 것이다.
그냥 7만 루피아 줬다.

이슬람 국가라고해서 다른 열대지방 국가들과는 좀 다를까 싶었는데, 의외로 불륜이나 성관계를 동반한 연애가 드물지는 않은 편이었다.
(아, 물론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제대로 된 집안들은 당연히 그런 부분에 완고한 편이다.)
한 명은 기본이요, 부인 두고 두 세다리 걸치는 것도 그렇게 의외는 아닌 분위기다.
재미있는 것은(이게 재미있는 상황인지는 모르겠다), 뻔히 제 애인이 듣고 있는데서 나한테 그냥 아는 동생이라고, 절대 애인 아니라고 실실 웃으면서 말한다는 거다.
거기다 관심있으면 소개시켜 주겠다는 말도 꼭 셋트로 덧붙이면서.
그러면서 나중에 같이 밥 먹을 때 보면, 같은 그릇에 음식 담아서 사이좋게 떠먹고 있다.

또 다른 이야기.
한 친구가 어느 날인가 뜬금없이 문을 똑똑 두드리더니 맥주를 한 캔 달라고 해서, ' 이거 이거, 날 봉으로 본건가..?' 하고 우려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는 그런 일이 없길레 그냥 그 날 맥주가 무지 먹고 싶었나 보다 하고 잊었다.
그러다 어느 날 또 맥주를 달라고 또 왔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유를 알거 같았다.
이유인 즉슨, 전날, 같은 아파트에 아는 분 LPG 가스가 떨어졌다고 하여 그 친구에게 부탁했었다.
그리고 어제 아는 분이 잘 교체했다고 했다.
친절하게 끌차로 날라다 집에 갖다 주었다고 한다.
예전 맥주 한 캔 달라고 한 그 날, 나 역시 LPG가스가 떨어져서 그 친구에게 부탁해서 교체했었다.
그리고 그 이전 열쇠 복사를 부탁했었던 때는, 왠지 열쇠 복사 다하고서도 굳이 끝끝내 내 방까지 쫓아 왔었다.
맥주 한 캔 생각났나 보다 하고 같이 마실까하고 꺼냈는데,
" 너 공부하느라 바쁜 것 같으니 난 그냥 가겠다. 하지만 이왕 꺼낸 맥주니 내가 가져가도 되겠지?"
하고서 꺼낸 맥주를 가지고 간 적이 있었다.

나름 자신의 수고에 대한 댓가를 챙긴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이 곳 정서의 한 면을 본 것 같아, 한 가지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이기 때문에 뭔가 부탁하고서도 팁 같은 것을 주기 뭐 했었다.
그래서 가끔 생각 나면 음료수나 과자, 아이스크림 같은 것 사다 주고 했었다.
그건 한국의 정서일뿐, 그럴 필요가 없었단 얘기다.
한국인 정서의 ' 아는 사람'이나 ' 친구' 관계라는 것은, 어디까지가 부탁의 허용 범위고 어디까지가 그에 대한 갚음의 범위일까?
어떤 때는 연장자가, 어떤 때는 월급 받은 누군가가 한턱을 낸다.
아무 이유 없는 호의의 베품.
하지만 서로 암묵적으로 심적인 부채로 달아 둔다.
다음에 한턱 내거나, 아니면 보다 공손하고 깍듯하게 대우하는 것으로 그 부채를 상쇄해 나간다.
그렇게 서로 간의 부채가 존재함으로, 보다 끈끈해 진다.
이게 ' 정'이라 불리우는 한국의 인간 관계 정서다.
좋은 점이기도 하지만 좋지 않은 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해 준 사람은 부족하다 느껴 섭섭하다, 갚은 사람은 이제 충분한데 더 바란다 섭섭하다,
결국 끝날 때 뒤끝이 좋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이들의 이런 정없음을 차갑게 느낀다.
꼭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
난 왠지 그닥 섭섭하거나 나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셈을 할 필요가 없는 친구는 이미 충분하다.
(과분하게 많다. 무려 네 명이나 된다. 신용카드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후배도 하나 있다.)
그런 친구는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고?
글쎄다.
자신의 허용 범위를 넘어서 무엇인가를 원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내주어야 한다.
난 계산적인 성격이고, 이 이상의 ' 절친한 친구'는 내 계산 범위를 벗어난다.
계산적이라 끈끈한 정의 한국인 사회에서는 재수없다 욕 좀 먹는 입장이지만,
만나면 간 쓸개 다 빼줄 것처럼 형님 동생 친구 지내면서 속으로는 추상적인 부채 계산 부지런히 하다가,
헤어지면 완전히 잊는 그런 모습들이 내겐 더 이상해 보인다.
심하게 말하면 위선적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런 두리뭉술한 상호 주관적인 부채관계가 정확할 리가 없지 않나.
받은건 적게 기억하고, 준건 크게 기억하는게 인지상정이다.
그렇게 별 탈 없으면 좋은 사이지만, 어쩌다 틀어지게 되면 나오는 전형적인 레퍼토리가,
" 니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 ㅋㅋㅋ

그와 난 좋은 ' 인니식 친구' 관계로 지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