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법인을 설립할 경우, 최소 투자 금액 제한이 있다.
'인니 국내 은행'에 '회사를 설립하려는 사람 명의의 계좌'를 개설하고, 그 계좌에 해당 투자 금액을 예치한 내역을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외국인이 인니 국내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려면 체류 허가(ITAS)가 있어야 한다.
회사를 설립해야 설립자나 투자자 자격으로 체류 허가를 받을 수 있는데, 회사를 설립하려면 체류 허가가 필요한 셈이다.
완전한 모순이다.
이 모순에 공식적인 답변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식적인 답변은 커녕, 왜 이 모양 이 꼬라지의 행정 처리 규정이 생기게 됐는지 이유조차도 그럴듯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인니 법률을 준수하며 법인 설립을 직접 진행해보려는 외국인은 전부 저 모순에서 막힐 수 밖에 없고, 결국 컨설팅 업체를 찾지 않을 수 없다.
관련 공무원들도 규정의 모순점을 알기 때문에 알면서도 인정해주는 우회적인 방법이 결국 공식적인 방법이 되어 버렸다.
주소지 변경 과정도 모순이다.
기존 거주지 관할 이민국에 신고를 하고 퇴거 확인서를 발급 받아 새 거주지 관할 이민국에 제출해야 한다.
이미 각 이민국 지점끼리 공통된 데이터베이스를 쓰는 세상이 됐지만, 종이로 된 서류들을 받아서 제출하는 과정은 여전히 존재하는 거다.
여기까지는 그럴수도 있겠다 싶겠지만, 문제는 기존 거주지 관할 이민국에서 퇴거 확인서를 받으려면 새 주소지의 실거주 증명서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그 주소지에 실제로 거주한다는 증명서로 동네 통반장이 발급해주는 서류다.
이미 집주인과 임대 계약서를 작성하고 선금 지불하고 서명을 했어도 이사를 해서 실제로 살고 있지 않다면, 대부분의 통반장은 실거주 증명서를 발급해주지 않는다. '아직은' 실제로 살고 있지 않으니까.
결국 이사를 하고 나서야 통반장에게 실거주 증명서를 받을 수 있고, 그 걸 들고 예전 집 관할 이민국에 가서 제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퇴거 확인서가 당일에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인니 이민국의 일처리는 업무 처리에 최소 3일이 소요된다는 희안한 규칙(?) 같은 게 있다. (듣기로는 최소가 3일이고, 보통은 5~10일이 걸린다고 한다.)
신청하러 가고, 발급되면 찾으러 또 가야 한다.
한국의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가는 걸로 비유하자면,
일단 부산으로 이사를 간 후 통반장에게 실거주 확인서를 받아서 서울의 살던 집 관할 동사무소에 신고를 하고,
3~10일 후에 다시 서울 동사무소에 가서 퇴거 확인서를 받아서 부산의 이사간 집 관할 동사무소에 신고를 해야 하는 셈이다.
게다가 그 과정 중에 일처리를 지지부진하게 끌면서 뒷돈을 요구하는 놈들이 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인니인들이 이사를 다녀도 주소지를 변경하지 않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게 그저 비용이 들어서인 줄 알았는데, 단순히 돈 문제만이 아니었다.
주소지 변경 신고를 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보니, 관청에서도 신분증 상의 주소 보다 '실거주 증명서'를 요구한다.
실제 거주지와 신분증(=주민등록) 상의 주소가 다르다고 따지지도 않는다.
거의 대부분 주소지 변경을 하지 않으니, 이 멍청한 행정 처리 규정을 개선할 필요성도 별로 느끼지 않는다.
규정이 잘못 되어서 규칙을 따르지 않는데, 규칙을 따르는 사람이 없으니 잘못된 규정을 고칠 필요도 없어진 셈이다.
행정은 전산화가 됐지만, 제도는 아직 구식이라 발생하는 모순도 있다.
외국인은 ITAS 발급 후 7일 이내 관할 시/군청에 신고하고 SKTT(거주지 등록 확인서)를 받아야 한다.
ITAS는 이민국에서 내주는 거주 허가고, 관할 관청에 거주하고 있다는 신고를 따로 또 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지금까지는 거주지 주소를 변경해야 할 경우, 이민국에 신고하고 다시 관할 시/군청에 SKTT를 받으면 됐다.
하지만 2024년부터는 한 가지 과정이 추가됐다.
예전 거주지 관할 시/군청에 퇴거 신고를 하고 확인서를 발급 받아 새 거주지 관할 시/군청에 제출해야 한다.
이유를 알아봤더니, 전산에 이전 주소지에 등록이 되어 있는 걸로 뜨기 때문에 새 거주지 관할 시/군처에서 입력을 할 수 없댄다.
전산화가 되는 바람에 직접 가서 발급 받아야 할 서류가 하나 더 늘어 버린 셈이다.
꼴에 전산화랍시고 하긴 했는데 행정 처리 과정은 구식을 답습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나마 지들도 웃기는 상황이라는 건 아는지, 굳이 퇴거 확인서 원본 제출을 요구하지 않고 스캔 파일만 보내도 처리해준다.
이민국 체류 허가를 제외하면 인니의 모든 행정 신고 및 등록 절차 중 딱히 외국인만 해야하는 절차는 없다.
내국인 인구에 비하면 극소수인 외국인 때문에 굳이 절차를 따로 만드는 건 귀찮은 일이다.
내국인들도 해야하는 건데 아무도 하지 않고 관청도 요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자국민들 끼리는 그럭저럭 슬기롭게(?) 우회적인 해결책을 찾아 어울렁 더울렁 살아가고, 외국인만 칼같이 규정을 지켜야 할 뿐이다.
외국인은 체류허가증에 적힌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르면 명백한 '이민법 위반'이다.
행정 처리를 안해주는 것은 물론, 옳다구나 잘 걸렸다 냉큼 잡혀 들어가서 운 좋으면 뒷돈 내고 훈방, 운 나쁘면 추방이다.
그러니 불편함을 감수하고 꾸역꾸역 후진적인 규정을 지키지 않을 수 없다.
인니에 오래 살다 보면 편법과 불법을 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후진국 정부를 얕잡아 보고 준법 정신이 해이해져서 편한 길 찾느라 그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지 않을 수 없는 환경 탓도 크다.
규정이 병신 같으니 규정 잘 지키고 살려면 병신짓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병신짓을 하지 않으려니 눈치껏 재주껏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샛길을 이용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한국에 사는 한국인은 '이민국'과 '외국인'이라고 하면 '불법 체류자'를 떠올릴 거다.
하지만, 절대 다수의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인 보다 더 한국 법을 철저하게 지킨다.
그 나라의 법은 자국민은 봐줄지언정, 외국인은 하등 봐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법을 어긴다 해서 자국민의 국적을 박탈할 수는 없지만, 외국인은 추방시켜버리면 그만이다.
인니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사는 한국인들도 그렇다.
현지인들보다 세금도 훨씬 많이 내고 말도 안되는 규칙도 모두 꼬박꼬박 지키지만, 늘 소수 약자 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