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낮 한강공원, 아직 쌀쌀한데 사람이 다글다글 하다.
아내는 상당히 좋아했다.
수도를 가로지르는 강이 엄청 넓고, 깨끗하고, 강변도 깔끔하게 정리된 게 특별해 보인다나.
나로선 '아니 여길 왜 굳이 이렇게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터 듬뿍 문어 듬뿍 왕타코야키는 맛있었다.
기념품 사러 남대문 시장도 갔는데 사진을 찍지 않았다.
인니인들은 어디 여행 가서 기념품을 챙겨오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풍습이 있다.
한류 기념품들을 파는 점포들을 때문에 할 수 없이 가긴 했는데, 확실히 시장은 나랑 정말 상극인가 보다.
5만원 어치를 사고 현찰로 계산하면서 웃으며 "깎아주시고 그러진 않아요?"라고 물었더니, 장사꾼 아주머니가 난감하다는 얼굴로 "요즘은 그냥 정찰제예요. 다 가격표 붙어 있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알았다며 순순히 계산하고 돌아서 몇 발짝 안갔는데, 뒤에서 어느 한국인 아주머니 손님이 12,000원 나온 거 깎아달라고 하니까 장사꾼 아주머니가 냉큼 1,000원 깎아준다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나 시장판 상인들은 사람 봐가면서 거짓말 하는 걸 밥먹듯이 하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에 환멸이 들었다.
본인들은 당연한 상술이라고 합리화를 할테니 가책도 없을테고.
각자 사는 방식이 다른 거니 안가면 그만이다. 거기 간 내가 잘못한 거다.
그냥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깔끔할 걸 아내 관광겸 갔던 건데 그나마 1% 있던 정마저도 뚝 떨어졌다.
남산 한옥마을은 대충 볼만했다. 무료라는 거 감안하면 아주 알찼고.
인니는 이렇게 꾸며 놓으면 너무너무 당연히 돈 받는다.
정부가 조성했으면 정부가,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조성했으면 마을에서 돈을 받는다.
정부가 조성하고 안받으면 인근 마을 주민들이 나서서 주차비든 뭐든 명분 걸고 아득바득 돈 받을 거다.
그 돈 받아서 청소나 보수도 제대로 할리 없다.
발리만 해도 풍경 좋다고 찾아오는 관광객 많아지니까 마을 길을 막아 버리고 입장료 받는 지역 많다.
인니인들이 한국인들에 비해 딱히 더 탐욕스러워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원래 그게 당연하니까, 안하면 손해라 느껴져서 그러는 거다.
'마을 구역 안의 것들은 마을의 공동 재산'이라는 개념은 한국의 시골에도 아직 남아 있다.
인니는 그 개념이 더욱 강력하고 포괄적이다.
인니인에게 마을길을 공공도로인데 왜 막고 돈을 받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을 제대로 못할 거다.
답하기 궁색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너무 당연해서 생각해 본 적 없는 걸 물어봐서 어리둥절해서다.
예전엔 그냥 맹숭맹숭 했는데, 뭘 알고 보니까 한옥 내부 구경이 재미있긴 했다.
건축비 장난 아니게 들었겠네, 부잣집이라도 살기는 엄청 불편했겠구나, 마님과 돌쇠가 여기 숨어서... 하면서.
친구 동생이 소개해준 덕에 아내가 무려 청담동 뷰티샾에서 K-Beauty를 체험하게 됐다.
비용도 시원하게 친구 동생이 부담했다.
그날 저녁 고맙다고 한 턱 쏜 돈이 그보다 훨씬 많았다는 게 함정이지만 ㅋㅋ
자체 포장한 고오급 과자와 고오급 아아도 준다. 이런 곳 처음 와봤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보이는 남자들도 흔히 보였다.
내가 스포츠 머리 깎으러 저가 남성 전용 미용실에 가듯, 이 사람들은 여기서 머리를 다듬는 게 일상인 모양이다.
연녹색 등산 점퍼를 입은 내 차림새가 이 곳에서는 이질적으로 붕 떴다.
예전 같았으면 주눅들고 그랬을텐데,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발가벗고 탭댄스라도 추면 모를까, 여기 사람들은 내가 주눅이 들든 말든 내 존재에 눈곱만큼도 관심없다.
눈에 띄면 '저 촌스런 새끼는 뭐야?' 하는 생각 잠시 들고 금새 잊어 버릴 거다.
남들 눈에 뭘 어떻게 보일까 의식을 하니까 무리를 하게 마련이다. 정작 남들은 보지도 않는데.
꽃단장 했겠다, 바로 경복궁에 갔다.
아내가 가보고 싶은 1순위로 꼽은 곳이다.
나는 공짜라 해도 뭐 굳이... ㅎ
외국인이 다글다글
하얀 사람, 검은 사람 너도 나도 한복이다.
고증대로 복원을 참 잘해놓은 거 같다.
경복궁 건축 당시에 쓰였던 기계들도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아내는 한국 전통 건축물이 마냥 신기한가 보다.
좋아하니 좋긴 하네.
시간 내어 같이 와준 친구와 친구 동생.
단역 배우 경력이 있는 친구 동생은 호위 무사 복장으로 분위기를 돋웠다.
우리 해맑은 외국인 아가씨, 예쁜 한복 입고 사진 찍으려 잔뜩 멋낸다고 어제 홍대에서 산 굽높은 구두를 신고 왔다.
다른 외국인들은 다들 알아서 운동화 신고 왔더만. ㅋㅋ
경복궁 절반 정도 돌았는데 도저히 걷기 힘든가 보다. 하긴, 발 편한 운동화 신은 나도 힘들었다.
한복 대여점까지는 어찌어찌 돌아왔는데 한계다. 잠시 벗어둔 구두에 발 다시 집어넣지도 못한다.
대여점에 두고 부랴부랴 근처 다이소에 갔는데 욕실화랑 실내화 밖에 없다. (당연하지)
스폰지 푹신푹신한 실내화 신겨서 지하철 타고 광명시로 돌아왔다.
푹신푹신 따듯해서 아주 조오탠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