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한국

[한국 방문 2023] 2. 부산행

명랑쾌활 2023. 8. 30. 12:59

어쩌다 보니 부산은 한 번도 가본적 없다. 딱히 가고 싶은 생각이 든 적도 없다.

아내도 다음엔 모를까 이번 한국 방문에 부산 여행은 시큰둥 했다.

 

인니에서 인연이 있던 지인들 중 가장 가까운 사이였던 형님이 작년 크리스마스 날 돌아가셨다.

한국에서 치뤄진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형님 모셔진 곳에 작별인사 드리러 가는 건 이번 한국행의 가장 중요한 일정 중 하나였다.

형님은 부산 사람이었고, 부산에 모셔졌다.

 

부산역 광장

한국 제2의 도시라 해서 상상했던 풍경과 매우 달라서 의외였다.

안양보다도 소박했다.

 

광장에서 뭔가 찍고 있다. 뮤직비디오 같다.

행인 통제하는 사람들이 야광조끼 입고 정중하게 부탁하는 태도로 유도하는 게 눈에 띈다.

예전엔 방송 찍는 게 뭔 벼슬이라도 되는 양, 후줄근한 반코트나 조끼 입은 사람이 껄렁한 태도로 통제하고 그랬는데 훨씬 보기 좋다.

 

부산역 건너편 텍사스 스트리트

이런 것도 관광상품화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십몇 년 전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기차역,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는 어김없이 사창가가 있었다.

그래서 그 지역 가장 센 조폭은 보통 역전이 나와바리였고.

역전파, 사거리파라는 이름이 가장 흔했던 건 다 이유가 있다.

 

싹 바꿨지만 사창가 특유의 분위기는 묘한 분위기는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거 같다.

예전엔 어땠을지 대략 상상이 간다.

근데 텍사스 스트리트라는데 순 러시아판이다.

러시아어 간판 즐비하고, 지나는 행인들도 관광객이 아니라 평상복 차림의 동유럽인이 많다.

적어도 부산에서는 러시아가 미국을 이긴 모양이다.

 

텍사스 끝에 차이나타운이 이어진다.

 

높은 담장과 철문으로 둘러쌓인 화교 학교

화교 문화가 원래 폐쇄적이어서 그런 건지, 화교 박해 때문에 폐쇄적이 될 수 밖에 없어서 그런 건지 궁금하다.

 

외국인으로서 인니에 사는 나도 현지인들 시선에서 분리된 곳에 있으면 안정감을 느낀다.

뭐 해꼬지하거나 위협하는 게 아닌데도 그렇다.

비주류의 다름은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비상식적'이라 치부되기 쉽다.

흔히 생각없이 말하는 '보편적', '일반적', '상식적'이라는 표현은 옳음의 근거가 아니지만, 마치 옳음의 기준인양 정당성의 근거로 쓰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오후 5시, 팬데믹 여파인지 썰렁하다.

영업하지 않는지, 닫힌 문 너머 인기척이 아예 없는 업소가 여기저기 눈에 뜨였다.

 

간짜장으로 유명한 원향재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간짜장 매우 맛있었다. 5점 만점에 5점.

기름에 달달 볶는 요리가 어째서 담백한지 신기했다.

담백하다고 해서 슴슴하거나 맛이 약한 건 아니다. 꽉차게 맛있는데 자극적이지 않았다.

요리가 아닌 끼니의 맛이다.

 

군만두 찌듯 튀긴 식감은 아주 좋았지만 생강향이 강해서 내겐 별로였다. 5점 만점에 3점.

생강향 좋아하는 아내는 아주 좋아했다.

내 몫으로는 시켰지만 절반은 아내에게 권했다.

입이 짧아서 여기서 한 끼를 채우면 이따가 밤에 술을 못마실 것 같아 적당히 허기만 지웠다.

 

소주는 여기 손님들 보통 드시는 거 달라고 했더니 대선 소주를 내왔다.

뭐 그냥 소주맛이다.

싼 값에 취하라고 주정에 물 타서 만드는 술인데 뭐 그리 다를까.

 

 

서면 근처 숙소에 짐을 풀고 잠깐 쉬는데... 아내가 침대에 눌어붙어 일어나질 않는다.

버스 타고 광명역, KTX 2시간 반에 텍사스와 중국 왔다갔다, 다시 지하철 타고 서면 숙소. 피곤했나 보다.

아 ㅆ... 난 배고픈디.

기다리면서 맛집 검색.

양곱창, 돼지국밥, 낙곱새, 해물탕, 쭈꾸미, 초량통닭... 아내가 다 별로랜다. =_=

그럼 뭐 땡기는 건 있냐 물으니 곰곰히 생각하다 두부가 들어간 국물 요리가 먹고 싶댄다. 아니 부산까지 와서 이게 뭔... =_=;;

다시 검색해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배고프다 못해 속이 쓰려서 안되겠다.

8시 반 쯤 되어서 일단 숙소를 나섰다.

 

서면 거리 한 바퀴 도는데 딱히 뭐 없다.

하도 서면 서면 그래서 기대감이 컸나 보다.

안양 일번가보다 규모도 작고 특색도 없다.

다른 점이라면 지저분하고 시끌시끌, 술취해서 버럭버럭 소리지르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는 것 정도.

20여 년 전 광명시 상업지구가 이랬다.

우와... 진짜 별론데?

아무래도 부산은 내 취향은 아닌듯 하다.

부산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내 취향에 안맞는 거 같다. 

 

치터스 바가 보여서 찍었다. 서면에서 찍은 유일한 한 컷

당최 썩 마땅한 곳이 없다.

일본식 징기스칸 고깃집이 한적해보이길레 들어갔다.

양고기 120g 16,000원인데 엄밀히 말하면 1인분이 아니다.

둘이 왔어도 한 테이블에 미니멈 4인분을 시켜야 한다는데 무슨 1인분인가.

그럴거면 싯팔 1인분 200g에 27,000원으로 팔던지.

테이블에 채소와 소스 좌라락 세팅됐는데도 얼굴에 철판 깔고 미안하다며 그냥 나왔다.

 

이젠 허기도 느껴지지 않고 기력이 없다. 짜증 만땅이다.

부산까지 와서 이게 뭔 고생인가 싶다.

그냥 대충 눈에 뜨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찌개에 반주로 술 먹는 밥집이다.

김치전골 시켰다. 두부는 없었다.

부산까지 와서 이게 뭔... 허허, 나 참...

 

 

다음날 아침, 괜찮으면 며칠 더 있다 갈까 했는데 당최 그런 맘이 들지 않는다.

아내도 딱히 가고 싶은 곳 없댄다.

형님 찾아뵙고 바로 상경하기로 결정했다.

 

마을버스 타고 영락공원에 내렸다.

부고 소식에 이곳에서 화장을 한다고 했다.

 

아내가 갑자기 몸상태가 안좋아진다고 한다.

묘지 쪽은 괜찮은데, 저쪽에서 안좋은 기운이 느껴진댄다.

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아내가 가리키는 방향은 하필 화장장이 있는 쪽이다.

보기에도 안색이 좋지 않고 식은땀도 흘린다.

원래부터 그쪽으로 민감한 체질이랜다.

 

나만 혼자 관리 사무소에 갔다.

사무소 직원에게 탈상 날짜와 성명을 조회했는데, 명단에 없댄다.

외국에서 왔다며 다시 부탁하니, 다른 명단을 조회해보고는 화장은 여기서 했는데 유골은 여기에 모시지 않았다고 한다.

 

형수님 메신저로 물어볼 수도 있지만 연락하지 않았다.

아직 100일이 지나지 않았다. 고인에 대한 슬픔이 진정되고 계시는데 자극이 될까 조심스러웠다.

내 의도가 선하더라도 반드시 상대방에게 좋으란 법은 없다.

여기까지 찾아왔으면 됐다 싶다.

내가 알고 형님이 알면 된 거다.

 

영락공원에서 멀어지자 신기하게도 아내의 안색이 확연히 나아졌다.

그쪽 세계가 있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지만, 아내의 모습을 보니 더 현실감이 느껴진다.

 

아침 건너뛰었고, 점심 시간도 좀 지났다.

아내에게 먹고 싶냐고 물으니 김밥이 드시고 싶으시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부산역 근처에도 돼지국밥집, 밀면집 많은데... 졸라 먹고 싶은데... ㅠ_ㅠ

뭐 하긴, 한국인이나 부산 가면 돼지국밥 먹고 대구 가면 막창 먹고 그러는 거지, 외국인 입장에선 서울이든 부산이든 다 그냥 한국이다. 아무렴, 한국 본토 김밥이 먹고 싶을 수도 있다.

마침 부산역 건너편에 김밥천국이 있었다. 한국 김밥 맛의 표준이다!

땡초김밥이 마음에 쏙 들었나보다. 맛있다 감탄을 하며 신나게 먹는다.

한 줄 포장해서 기차 타고 가면서 먹고 싶다길레, 우리 동네에도 김밥천국 많으니 가서 먹자고 했다.

 

1박2일 부산 가서 간짜장, 군만두, 김치전골, 김밥 먹고 왔다.

부산의 유명한 음식들은 하나도 못먹었다. ...뭐 하긴 서울에도 다 있긴 하다.

나랑 부산은 인연이 아닌가 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