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 최대 명절인 르바란 Lebaran 귀성길 (무딕 Mudik) 정체가 4월 19일부터 시작됐다.
자와섬을 동서로 잇는 유일한 '유료'도로가 꽉 막혔다. (고속도로가 아니라 유료도로다.)
이럴거면 뭐하러 유료도로를 타냐 싶겠지만...
일반도로는 오토바이 때문에 더 지옥이거든. ㅎㅎ
차량이 1m 나아가는 동안 오토바이가 대여섯대는 끼어든다.
원래 인니의 유료도로는 어중이 떠중이 못들어오게 하기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평상시에도 주행속도가 60km 이하인 경우가 잦은 도로를 고속도로라고 하긴 무리가 있다.
인니 정부는 귀성길 정체가 절정에 달할 19~20일 양일간 자카르타-까라왕 구간의 자카르타 방향 차로를 폐쇄했다.
자카르타 갈 일 있으면 일반도로로 가라는 건데, 문제는 일반도로도 귀성길 오토바이와 차량들이 반대차선까지 점령한다는 거. (처음엔 오토바이 한 줄만 슬쩍 침범하는 식으로 시작하지만, 그게 결국 두 줄, 세줄이 된다.)
그냥 해당 이틀 간은 자카르타 가는 건 포기하는 수 밖에 없다.
절대 다수의 필요에, 자카르타 쪽으로 가야할 일이 있는 사람들의 권리는 무시된다.
인니는 이런 게 가능한 나라다. 상황에 따라 소수의 불편을 강제하는 경우는 흔하다.
마을에 결혼식 잔치가 있다고 마을길을 폐쇄하는 게 그닥 진귀한 일도 아닌 정서라, 모두들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인다.
관점을 달리하면 합리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1년에 한 번, 1주일 가량의 정체 때문에 도로 인프라를 늘리는 게 낭비일 수도 있으니.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귀성길 정체가 절정에 이르는 4월 19, 20일은 정부가 발표한 르바란 휴가 권장일이 아니라는 거다.
르바란 Lebaran 은 원래 1개월 간의 금식을 마치고 서로 축하하는 기간이다.
정확히는 이둘 피뜨리 Idul Fitri (아랍어로는 Eid al-Fitr) 라는 2일 간의 명절이 공식 휴일이지만, 귀성과 귀경에 필요한 일자를 앞뒤로 붙여서 르바란 휴가라고 칭한다.
이둘 피뜨리 기간에 맞춰 정부 노동청은 회사 측에, 직원들의 연차 사용을 보장해줄 것을 권장하는 일정을 발표한다. (쭈띠 버르사마 Cuti Bersama 라고 하는데 '연계 휴일' 정도로 해석하면 적당할듯.)
하지만, 말이 연차지 실은 연차가 없는 직원도 다들 쉬고, 말이 권장이지 회사의 자율성은 거의 없다.
보통 이둘 피뜨리에 주말 끼고, 중간 비는 날은 연계 휴일로 채워서 8~11일 정도의 휴가 기간이 주어지는데, 하필 2023년 이둘 피뜨리는 딱 토, 일요일이라 정부는 하루 전인 금요일과 이후 월~수요일, 총 4일을 연계 휴일로 발표했다.
21~26일, 6일 간이 정부 '공식' 르바란 휴가 기간인 셈이다.
근데 어째서인지 교통부는 공식 기간 이틀 전인 4월 19, 20일을 귀성길 정체가 피크일 거라는 예상 발표를 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실제 휴가는 공식 휴가 기간 이틀 전부터 이미 시작될 거라는 걸 정부도 알고, 시민들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정부도 입장이 있으니 민간 기업에 연계 휴일을 6일이나 주라고 강제 권고할 수는 없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일선 현장에서 '알아서 자발적으로' 이틀의 휴가를 더 부여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공식과 실제는 다르다는 건, 인니에 살면 숱하게 겪는 일이다.
체류 허가 연장하려는데, 공식적으로 필요한 서류 목록과 지역 이민국이 요구하는 서류 목록이 다른 경우는 흔하다.
운전면허증, 세금 납부, 실거주 증명 등등 모두 그렇다.
법과 규정이 현장 상황이나 실정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나라가 인니다.
여기선 되는 게 저기선 안되는 일이 드물지 않다.
그래서 인니는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나라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