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한국

[한국 방문 2023] 1. 아내의 첫 한국 방문

명랑쾌활 2023. 8. 23. 11:52

다시 5개월 만에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 아내와 함께다.

2019년 초, 관광비자가 거부되지 않았다면 아내는 진즉 한국을 가봤을터다.

직후 코로나 사태로 국가 간 이동이 봉쇄됐다.

작년에 다시 한 번 신청한 관광비자가 받아들여졌다면 그때 방문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후진국에 대해, 예전 미국이 개발도상국인 한국에 대했던 것보다 더 거만한 나라가 됐다.

주인니 한국대사관이 요구한 모든 서류 요건을 충족시켜 제출했지만, 가타부타 뚜렷한 사유도 없이 아내의 관광비자는 거부됐다.

혼인신고 전 한국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인사드리려는 계획은 그렇게 무산됐었다.

그리고 처음 비자 신청을 했던 2019년으로부터 만 4년이 넘어, 아내는 드디어 그 대단하신 대한민국에 방문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한국인의 배우자 자격으로.

 

대한항공에 비해 10만원 저렴한 아시아나를 이용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 대한항공에 매각되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이라지만 뭐 큰 문제가 있겠냐 싶었다.

생각대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작은 문제는 있었다.

 

저녁 시간에 이륙 직후 취침 전 배식된 간식은 심각하게 질이 좋지 않았다.

말라서 퍽퍽한 저질 빵에 정체모를 재료로 만들어진 햄과 저질 식용유로 만든 거 같은 유사 치즈가 끼워진 햄버거는 소스 조차도 없었다.

이정도로 수준 떨어지는 음식은 인니 살면서 급이 매우 떨어지는 행사에서나 드물게 두어 번 본 적 있었다.

주변 인니인 승객들이 혀를 쯧쯧 차는 소리가 조그맣게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아내도 받아서 보자마자 포장도 뜯지 않고 옆으로 치웠다.

난 얼마나 맛이 없을까 한 입 배어물어봤다.

무(無)맛이다. 나쁜 맛이고 괴상한 맛이고를 떠나 그냥 아무 맛이 없다.

식감도 예상했던대로 너무 퍽퍽해서 씹기 힘들고 불쾌하다.

배어문 한 입은 어렵게 억지로 삼키고 나머지는 그대로 랩으로 싸서 치워버렸다.

 

도착 1시간 여 전, 기내식을 배식했다.

아침 대용이라 현지식으로 계란찜, 한식으로 죽 중 하나 택일이다.

내가 선택한 계란찜

물기가 다 빠져 퍽퍽하다. 군대 시절 대량 조리해서 나온 짬밥 계란찜보다 더 맛이 없다.

곁들여 나온 감자도 아예 간을 하지 않았는지 맛이 없고 덜 익었다.

계란찜이나 채소들 모두 구분없이 한꺼번에 대량 조리용 찜기에 찐 것 같다.

빵도 말라 비틀어진 싸구려였고, 과일도 품질이 떨어지는 데다 약간 말랐다.

인니 시골 공장 관리하던 시절, 현지인 직원들에게 배식했던 저렴한 캐터링 업체 도시락이 이런 수준이었다.

당시 개당 단가가 1천원도 안됐었다.

 

기내식이 너무 후지다 보니 승객들 분위기가 싸하다.

배식하는 승무원들도 애써 표정 관리는 하지만 쪽팔림을 꾹 참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아내가 선택한 죽은 그나마 나았지만... 대한항공에 비해 수준이 한참 떨어지긴 마찬가지다.

배를 채우려고 억지로 절반 정도 비운 아내는 30분 정도 지나 기내가 흔들리는 중에 종이봉투에 다 토하고 말았다.

 

자카르타에 출발했으니 인니 현지 캐터링 업체가 만든 기내식일텐데, 단가 너무 심하게 후려쳤거나 싸구려 업체와 계약한듯 하다.

부도 직전 회사를 위한 눈물겨운 자구책이라고 보기엔 참으로 미련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네 회사 어렵다고 널리 알리는 것 이외에 무슨 긍정적 효과가 있나 싶다.

어려운 회사 사정을 왜 100만원이 넘는 항공권 가격을 감당하는 승객들에게 분담시키는 걸까.

식당이 사정 어렵다고 질 떨어지는 음식 팔면 손님들이 사정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아름다운 세상이던가.

가뜩이나 먹는 문제는 사람 기분 엄청 상하게 한다.

승객 1인당 기내식 단가 5천원 낮췄다 쳐도 승객 200명이면 왕복으로 총 200만원.

2억원 짜리 장사에 고작 200만원 아낀답시고 회사 이미지를 망해도 싼 회사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어떤 인간이 내놓은 방책인지 모르겠지만 가히 어차피 망할 회사 빨리 망하라고 활동하는 첩자가 아닌가 싶다.

 

인천 공항 착륙 후, 한국 심카드로 바꿔 끼고 전원을 키자마자 별별 요상한 스팸 문자가 초단위로 후두둑 몇 십여 개가 쏟아졌다.

내 번호에 뭐 문제가 있나 싶어, 승무원에게 이 거 왜 이러는 건지 아냐고 물었다.

승무원들은 벙찐 얼굴로 (아마도 그딴 걸 왜 자기에게 묻느냐는 거 같았다 ㅋㅋ), 오는대로 차단하면 될 거라고 한다.

일전에 인니의 스팸 문자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올린 적 있다. (https://choon666.tistory.com/1557)

내가 한국에 살지 않은지 10년이 넘다 보니 착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인니 스팸 문자 욕할 게 아니었다. 한국이 더 미쳐 돌아가는 개판이었다.

 

혼자 입국할 적에는 셀프 입국 심사 후, 위탁 수하물 찾아서 후루룩 나가면 그만이었는데, 이제는 외국인 입국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아내를 기다려야 한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다른 인니인들은 거의 다 나오고 나서도 10여 분을 더 기다리고서야 아내가 나왔다.

입국 신고서를 작성하지 않아서, 양식이 비치된 곳까지 한참을 되짚어 갔다 왔다고 한다.

 

나야 한국 입국할 적엔 작성할 필요가 없어서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비행기 이륙 후에 한국인 승무원이 뭔가 나눠주면서 내게 영어로 말을 걸었던 게 기억났다.

이제 겉모습이나 분위기가 한국인이 봐도 한국인인지 헷갈릴 정도로 현지화가 됐구나 싶어 웃으면서 "저 한국인이예요"라고 대답하니, 승무원이 약간 당황해서 아 그러시군요 하면서 지나쳤었다.

그 때 승무원이 입국 신고서를 나눠줬던 거였고, 아내도 한국인이라 생각하고 그냥 지나갔나 보다.

아내 외모가 동남아스럽지 않은 편이긴 하다.

둘이 인니 어디 여행 가면, 내게는 인니어로 말 걸고 아내에게는 영어로 말거는 경우가 흔하다. ㅋㅋ

 

입국 심사는 까다롭지 않았다고 한다.

여권 사진과 얼굴만 대조해보고 별다른 질문 없이 그냥 통과했다고 한다.

여권 긁으면 전산에 비자 종류도 뜨는지, 따로 프린트해 간 비자 발급 확인서도 확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 싱가폴 입국 심사 때 질문 두어 개는 받고 통과하면서 '싱가폴 참 빠르구나' 했었는데, 역시 한국이 공항 일처리 빠르기로는 세계 최고 수준인 모양이다.

 

하필 한국 도착한 날 이상한파로 날씨가 영하권으로 내려갔다.

출발 전 작년 이맘 때 날씨 검색했더니 영상 10도는 넘는다 해서 그에 맞춰 나름 옷을 준비했다가 봉변 당했다.

추위 잘 안타는 나야 그럭저럭 버텼지만, 아내에게는 거의 얼어죽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나 보다. 얼굴이 새파랗게 굳었다.

공항 버스 안이야 따듯하지만, 정거장 내려서 집까지 가는 10분이 문제다.

엄마가 패딩 점퍼를 챙겨서 정거장에 마중 나오셔서 다행이었다.

아내는 예의상 사양할 겨를도 없이 냉큼 받아 허겁지겁 입었다. ㅋ

집에 도착하자마자 따듯한 방바닥에 요깔고 이불 덥고 누은 아내는 그대로 녹아 늘어 붙어 버렸다.

 

 

아내는 추위에 어지간히 놀랐는지 몸살이 살짝 온 모양이다. 다음날도 이불 속 소라게가 되어 나오질 않는다.

운전면허 연장하러 강서면허시험장 가는데 같이 가기로 했었는데, 아내는 집에서 쉬겠다고 한다.

 

면허시험장 입구, 요즘 보기 드문 공중전화 박스가 눈에 뜨였다.

 

교통카드나 신용카드로도 이용할 수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교통 카드나 신용 거래도 스마트폰만으로 해결하는 추세라 크게 소용은 없을 거다.

 

공중전화는 손실만 나는 사업임이 분명하지만 세금을 들여서라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정상 스마트폰이나 신용 카드가 없을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당연히 스마트폰을 가져야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불이익을 강요하는 게 마땅한 사회는 옳지 않다.

자본주의가 절대선인 세상이 되어버린 덕에 많은 사람들이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 선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효율은 선하지 않다. 효율을 추구하면 대게 비인간적인 쪽으로 향하게 된다.

우리가 소위 '인간적'이라고 하는 것들 대부분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완전 구형인 카드용 공중전화. 30년 전 형태 그대로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 여학생과 사귈 뻔 했었다.

서로 썸 주고 받다 마침내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그당시 정서로는 1일 시작하겠다는 뜻이다), 약속 장소인 상업은행 앞에서 1시간 동안 기다렸지만 결국 오지 않았다. 공중전화로 그 여학생 집에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차였나 보다, 아니 그럼 약속을 하질 말던가 너무 독하잖아, 망신 주려 그런 건가, 쪽팔리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난 철산상업지구 상업은행 앞에서 기다렸고, 그 여학생은 광명사거리 상업은행 앞에서 2시간을 기다렸다고 한다.

새파랗게 어린 남자놈 풋사랑이 다 그렇듯, 진실을 알게 됐을 때는 이미 감정이 꺾인 상태였다. 그렇게 흐지부지 끝났다.

 

연배가 좀 있는 세대는 공중전화 부스를 봤을 적에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게 마련이다.

9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들은 동물원의 노래 <유리로 만든 배>같은 공중전화 감성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거다.

필요가 없어서 사용하지 않은 것들은 기억에도 없기 마련이다.

반대로 난 초등학생도 대부분 스마트폰 가지고 있는 세대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포용력 어쩌고 연장자입네 어떻게든 이해하려 무리하다 보면 미루어 짐작해서 오해하기 십상이다.

젊은 세대는 지나버린 과거를 체험할 수 없지만, 기성 세대는 지금 현재를 살고 있으니 젊은 세대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초중고 시절, 같은 공간에 있었던 기성 세대인 선생마저도 학생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기성세대가 초등학생도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진 세대의 청소년기 정서를 미루어 짐작하는 건, 90년대 이후 출생 세대가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의 정서를 미루어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오류가 많을 가능성이 높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냥 그렇게 생겨처먹었나보다... 무책임한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다.

대개 오해와 갈등은 상대를 몰라서가 아니라, 상대를 내멋대로 기준으로 이해했다고 간주해서 벌어진다.

소통은 되면 좋지만, 안되면 억지로 굳이 애쓸 필요 없다.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안되겠다 싶으면 안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1종 면허 갱신하려는 사람이 몰려서 문제라는 기사를 보긴 했다.

온라인으로 접수 처리하고 인근 경찰서에서 갱신 면허증을 찾는 방법도 있다고 했지만, 한국 체류 일정이 정해졌기 때문에 당일 처리할 수 있는 직접 방문을 택했다.

사람 많을 거 각오를 하긴 했지만 민원센터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아,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호표 출력기는 우측에 있었다.

노인 복지 일자리로 안내 보조 업무를 수행하시는 어르신이 번호표 출력을 도와주셨고, 민원 신청서 작성은 번호표 출력기 옆 투명 아크릴로 막힌 부스 안 직원들이 양식을 나눠주며 작성 요령을 '짧고, 분명하고, 빠른 말투로' 화라라라락 설명해준다.

매일 수백명에게 거의 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해야한다. 저것도 쉬운 업무가 아니겠구나 싶었다.

 

537번 번호표를 받았다.

접수 창구 모니터에 뜨는 호출 번호는 이제 겨우 300번대 초반이다.

내 앞으로 200명 이상이 기다리고 있다.

10분간 지켜보며 호출 번호 줄어드는 속도를 재봤다.

문제 없이 빠르게 접수되는 민원 접수는 2분, 뭔가 미비한 게 있으면 5분 이상, 창구는 6곳인데 교대로 휴식 시간이 있는지 접수 직원들이 돌아가며 자리를 비운다.

호출했지만 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 포기하고 간 모양이다.

대략 1시간에 100명 꼴로 접수 처리되는 거 같다.

 

적성검사부터 하고 나서, 나가서 담배도 피우고, 운전면허 실기 시험 보는 것도 구경하며 시간을 때웠다.

예상대로 2시간 조금 넘어서 접수를 할 수 있었다.

접수 후 20분 가량 대기하니 면허증이 나왔다.

총 2시간 반 정도 걸린 셈이다.

 

인니 스팸 공해 비판하며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착각을 했었다.

인니 관공서의 후진적 행정 시스템도 비판했었는데 반성을 하게 된다.

한국 행정 시스템은 결점이 없는 양 착각했었는데 교만한 거였다.

인니의 상대적으로 낙후된 시스템을 겪으면서, 나도 모르게 한국을 너무 이상적으로 왜곡해서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오후 쯤 되어 기운을 차린 아내를 데리고 나와 친구와 저녁을 먹고 귀가하는 길.

집앞 골목. 가장 좋아하는 길이다.

한국에 가면 늘 이 풍경을 사진 찍곤 했다.

아내는 사진으로 볼 적마다 언젠가 직접 걷고 싶다고 했었다.

5년 넘게 걸려서 드디어 실현됐다.

별 것도 아닌, 흔하디 흔한 주택가 골목길에 직접 와보는 게 그리 복잡하고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