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 사람들은 추문을 좋아한다. 한국도 안 그런 건 아니지만 인니는 유독 심하고 노골적이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이 인건비와 땅값 싼 곳을 찾아 들어가다 보니 깡시골에 공장을 세우기 마련인데, 한국도 그렇듯 인니 역시 시골 뒷소문이 더욱 극성스럽다.
한국인 직원과 미혼인 현지인 경리가 읍내의 큰 상점에서 회사 비품을 구입하는 모습이 눈에 어쩌다 눈에 띄기라도 하면 그 날 안에 마을과 인접 마을 일대까지 추문이 퍼져서, 다음날에는 공장에 역수입되는 경우는 일은 대단할 것도 없다.
대단한 건, 어째서 읍내에서 둘이 같이 갔었는지 아는 직원들조차 그 추문에 편승해서 같이 씹고 뜯고 즐긴다는 점이다.
한국은 그래도 뒤에서 수근거리는 행위가 떳떳한 일이 아니라는 정도의 선은 있다. 하지만 인니인들에게는 그런 윤리도 희박해서, 추문에 억울한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다. 내가 없는 말 지어낸 것도 아니고, 그냥 들은 말 남에게 전달했을 뿐이며, '딱히 나쁜 마음으로' 그런 게 아니라는 마인드다. 인니인들에게 추문이란 하나의 즐길거리이자, 공동체 구성원들의 사이를 더 가깝게 만드는 화젯거리일 뿐이다.
나와 재스민의 추문 역시 새삼스러울 것 없었다. 전 직장 다니면서 숱하게 겪었던 일이라 딱히 마음 상하지도 않았다. 다만, 추문이 퍼진 곳과 타이밍이 묘했다.
재스민은 영업 2팀 구축의 사전 준비로 뽑은 두 명의 경력직 중 한 명이다. 본사 출근 기간에는 집에서 출퇴근 했지만, 지사가 오픈하면서부터는 지사 근처의 꼬스 Kost (월세 원룸) 에서 출퇴근했다.
지사 오픈 2개월 후, 나도 지사 근처로 이사를 했다. 원래 살던 집과 본사는 30분 거리였지만, 지사까지는 본사를 거쳐 다시 1시간을 더 가야했다. 본사와 지사를 번갈아 출근하기엔 비효율적이어서, 원래 살던 집 계약이 끝날 때 쯤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재스민과,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또 한 명의 경력직 메이에게 내가 살만 한 집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고, 그들은 몇 군데 후보지를 선정해줬다. (인니는 부동산 업체를 통해 거래하면 수수료가 매우 비싸고, 각 업체마다 쥐고 있는 집들을 다른 업체와 공유하지 않아 선택권도 좁기 때문에, 발품을 팔아가며 집주인과 직거래하는 편이 훨씬 낫다.)
나는 후보지들을 돌아보고, 재스민의 꼬스가 있는 주택단지 내 단독 주택을 선택해서 계약을 했다.
계약을 한 바로 다음 날, 본사에 추문이 퍼졌다. 나와 재스민이 동거를 하려고 집을 샀다는 소문이었다.
추문이야 얼마든지 날 수도 있다. 인니 살면서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겪었고, 추문 무서워서 애써 구한 적당한 집 계약 피할 생각도 없다.
문제는 어떻게 다음 날 바로 본사에 추문이 퍼질 수 있느냐였다. 사실과 상당히 일치하는 근거로.
보통 추문은 만나서 수다 떨 때 주고 받은 이야기로 발생해서, 그 이야기 소스가 다른 사람들에게 건너 건너 가면서 점점 살이 붙게 마련이다. 특히나 이렇게 악의가 분명한 추문은 더욱 그렇다.
누군가 나나 재스민에게 악의를 품고, 일부러 추문을 만들어 전화를 통해 인위적으로 퍼뜨린 모양새다.
내가 지사 근처에 집을 구한다는 건 딱히 비밀도 아니었으니, 지사의 직원들이라면 누구든 계약 사실을 알 수도 있다.
그 중 추문 당사자인 나와 재스민은 제외, 내 추천으로 입사한 메이도 내게 불리한 일을 할 리 없는 사이다.
케빈 추천으로 충원한 영업직과 경리는 지사를 오픈한 이후에 입사해서 본사에 가본 적도 없다. 에이프릴도 본사에서 왕따를 당했다고 했으니 본사에 소문을 전파할 동기가 부족하다.
내 운전기사는 내 인맥으로 직접 뽑았고, 메이 운전기사도 갓 입사한 사람이다. 둘 다 사는 곳도 본사에서 멀다. 집 계약한 날 본사에 간 적 없고, 바로 퇴근했다.
케빈은 그럴 리 없으니, 남은 건 케빈의 운전기사다.
케빈에게 물었다.
"글쎄요. 걔가 형님 집 구한 거 알기는 할텐데, 그런 걸 본사에 퍼뜨릴 이유가 없잖아요. 어제 오늘 본사에 간 적도 없고요. 전 그나마 가장 의심스러운 건 메이인 거 같아요. 애가 친화력이 엄청 좋은데, 대신 입이 가볍잖아요. 야니랑 얘기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얘기했을 수도 있죠. 야니는 형이나 지사 싫어하니 그런 소문 충분히 퍼뜨리고도 남고요."
메이에게도 물어봤다. 메이는 억울하다는듯 펄펄 뛰었다. 어떻게 자기를 의심할 수 있냐고 서운해했다.
대부분의 추문이 그렇듯 주모자는 밝혀지지 않고 유야무야 끝나는 줄 알았다. 보통 추문은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특정할 범인이 없고, 어떤 사람이 목적으로 가지고 퍼뜨린 추문은 특정할 범인이 있지만 증거가 될 말은 형체가 없다.
하지만, 추문이 발생한지 두어달이 지나 잠잠해졌을 즈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튀어나왔다.
케빈이 요청으로 본사의 영업 1팀에서 지사의 2팀에 합류하게 된 에이프릴은 처음엔 2팀 직원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구성 목적 상 이미 1팀과 사이가 좋을 리 없는데다 텃세까지 겪었던 2팀 직원들은, 1팀으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처지인 에이프릴을 쭉 신경써줘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지사 직원들 사이에서 에이프릴이 따돌림을 받는 것 같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케빈이 예전에 에이프릴이 1팀에서 따돌림을 받아서 얼굴이 꺼멓게 죽었다고 했을 때는 별로 그래 보이지 않았었는데, 이번엔 정말로 그래 보이는 게 내 눈에 보였다.
지사 직원들을 따로 따로 면담해서 연유를 알아 보는데, 메이가 사실을 털어놨다. (메이는 전 직장에서도 직원들의 비위 사실을 밝혀낸 적이 여러 차례 있는 명탐정이다. 그래서 메이 주변에 사건이 끊이질 않는 건가...?)
메이는 추문 사건 당시, 다들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정황 상 자신이 퍼뜨린 것으로 은근히 오해 받게 됐던 걸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다.
메이가 의심한 사람 역시 케빈의 운전 기사였다.
사무실에서는 메이나 재스민이나 집 관련해서 말을 한 적이 없으니, 사무실 직원들은 알 턱이 없었다. 집 알아보러 다닐 때 같이 다녔던 자기 운전기사와 내 운전 기사가 그 사실을 알고 있고, 기사 끼리는 대기 시간 동안 별의 별 얘기를 하니 케빈의 운전기사 역시 알게 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운전 기사들을 캐봤는데, 메이의 운전기사와 내 운전기사는 혐의를 벗었고, 결국 케빈의 운전기사가 용의자로 남았다.
하지만 케빈의 운전기사는 소문을 퍼뜨릴 접점이 본사에 없었기 때문에 추리가 막혔다.
그러다 며칠 전, 사무실에서 메이는 에이프릴이 화장실 간 사이에, 데스크에 올려 두고 간 에이프릴의 휴대폰에 뜬 메시지를 우연히 보게 됐다. 케빈의 부인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케빈 어디 있느냐는 내용의 문자는 마치 동생에게 쓸 말투였다.
의외의 사실에 의구심을 품은 메이는 그 후 에이프릴을 몰래 주의 깊게 지켜 보던 중, 에이프릴이 지사 여직원들의 대화를 녹취하거나 움직임을 도촬하는 듯은 모습을 포착했다.
메이는 에이프릴의 휴대폰 잠금 패턴을 봐두었다가, 에이프릴이 휴대폰을 두고 화장실에 간 틈을 노려 열어 보았다. (무서운 명탐정 메이...) 그 안에서 자신을 비롯한 지사 여직원들이 대화하는 영상 뿐 아니라, 본사 여직원들의 영상도 다수가 있었다.
메이는 뛰어난 친화력을 본사로 돌렸고, 본사 사람들로부터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됐다.
에이프릴은 케빈 부인의 사촌 동생이었고, 케빈 추천으로 입사했다.
본사 여직원들에게도 몰카와 녹음을 하다 들켰던 일이 있었다. 직원들의 추궁에 에이프릴은 케빈의 부인이 시켜서 어쩔 수 없었다고 실토했다. 케빈이 부인은 남편 주변 여성들을 과도하게 의심하는 사람이었다. 다시는 찍지 말라고 하고 넘어갔지만, 그 후로 아무래도 거리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구체적 피해를 준 건 아니라서 괴롭히거나 하진 않았다. 이 사건은 당시 케빈도 알았다고 한다.
케빈의 운전기사 역시 케빈의 부인과 친척 관계로, 케빈이 어디에 있고, 누구를 만나는지 실시간으로 케빈 부인에게 일일이 보고하고 있었다. (훗날 알고 보니 케빈과 동서지간, 케빈 부인 언니의 남편이었다.)
케빈의 운전기사와 에이프릴도 친척 관계였다.
이러한 사실들을 본사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새로 입사한 사람들에게 딱히 숨긴 게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인데다 굳이 알려줄 계기도 없어서 넘어간 거였다.
지사로 넘어갈 당시에도 딱히 에이프릴을 왕따한 적은 없었고,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고 한다. 즉, 에이프릴이 지사로 넘어오게 된 건 케빈 부인이 조종했던 거였다.
그리고, 내가 재스민이 사는 꼬스가 있는 주택 단지에 집을 구했다는 사실 역시 에이프릴을 통해 전해 들었다고 한다.
내가 집을 구한 과정들은 케빈의 운전기사를 통해 에이프릴과 케빈 부인에게 전해졌고, 케빈 부인은 에이프릴을 시켜 본사에 그 이야기가 퍼지도록 했을 것이다. 추문이 되기 딱 좋은 재료들로.
케빈 부인이 그랬던 이유는 캐빈 주변의 여직원들 중 가장 젊고 예쁜 여직원이 재스민이었기 때문이다. 추문을 일으켜 회사에서 나가도록 만들려고 그랬던 거였다.
메이는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되자, 추문의 당사자가 됐던 재스민에게도 당연히 알렸다.
둘은 도저히 에이프릴과 사이 좋게 지낼 수 없었지만, 에이프릴에게 딱히 다그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케빈의 부인이 연루된 일이기도 하고 어쩌면 케빈까지 연관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에이프릴은 따돌림'만' 받게 됐다.
내게도 알리고 싶었지만, 내가 케빈을 너무 신뢰해서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캐빈은 에이프릴에 관해, 자기가 데려온 직원이라고만 했었다. 왜 자신의 부인과 친척 관계라는 걸 말하지 않았을까? 그냥 본사 영업 1팀에서 계속 근무했을 거라면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지사로 끌어 오고자 했을 적엔, 당하지도 않은 왕따를 거짓 구실로 삼아 자기가 데려온 직원 책임지고 싶다 할 게 아니라, 내게 사실을 말해줬어야 했다.
며칠 후, 케빈은 에이프릴을 본사로 다시 보냈으면 한다고 내게 요청했다. 지사 직원들과 좀 맞지 않는지 에이프릴의 얼굴이 까맣게 죽어서 안되어 보인다고 했다.
본사에서 왕따를 당하니 지사로 데려오자고 했는데 다시 본사로 보낸다? 말이 앞뒤가 안맞으니 겸연쩍을만도 한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다.
나도 딱히 의외라는 기색 없이 그러자고 했다.
"형님은 왜 그런지 이유를 아세요?"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다. 내가 얼마나 아는지 간보는 눈초리다.
얘기를 해주자면 케빈 면전에 대고 부인이 의부증과 집착 문제를 건드리게 되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짚이는 부분들이 있지만 확실한 건 아니니, 굳이 얘기할 일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예전에 있었던 추문을 퍼뜨린 게 에이프릴이었다고 사실로 확인됐고, 그 사실을 직원들이 알게 돼서 멀어졌다고만 했다.
케빈은 그 게 무슨 소리냐고 놀라 되묻지도 않았고, 그럴 리가 없다는 반응도 없었다.
" 아, 그래요?"라는 덤덤한 반응이 전부였다.
에이프릴은 다시 본사로 출근했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나와 추문이 난 재스민은 실제로 나와 사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