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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심장을 가진 허깨비] 3. 여직원의 퇴사

명랑쾌활 2024. 10. 24. 07:11

내가 입사할 당시, 한국인 여직원이 있었다.

작년에 고문이 내 입사를 반대를 하면서, 그 대체로 케빈을 보조하라고 뽑은 신입이었다. 내가 입사했을 땐 이미 근무 5개월 차였는데도 업무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교육을 해도 진척이 너무 느려요. 회사 생활에 대한 기본도 안되어 있고요. 가르쳐보긴 했는데, 도저히 업무를 맡길 수준이 안돼서 그냥 생산 쪽에 굴리고 있어요. 어째야 할지 몰라서 방치 상태죠 뭐."

영업부 소속이니 전 관리부장은 터치를 안하고 있었고, 가르쳐야 할 케빈은 손을 놓은 상황이었다.

케빈은 한국인 여직원의 교육도 내게 부탁했다.

 

며칠 지켜본 결과, 케빈도 문제가 있었다.

케빈은 상대를 본인 기준으로 재단하고 윽박지르는 스타일이었다. 내게는 깍듯했기 때문에 몰랐던 면이었다. 위계를 따지고 지키는 성향이 강해서, 본인보다 위면 공손하지만 아래에게는 가차없었다.

미적분을 가르치려고 하면서, 배우는 상대방이 '최소한' 방정식은 할 수 있을 거라고 단정을 하고 시작하는 셈이다. 방정식을 모르면 알 수 없는 부분을 가르치고서, 그걸 이해 못하면 말귀를 못알아듣는 거라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경상도 사투리라, 그 센 말투로 윽박지르니 상대가 주눅들어 말도 붙이기 힘들었다.


빌리도 문제는 있었다. 변명이 심했다.

지시가 제대로 수행되지 안아서 이유를 물었는데,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쪽으로 변명하기 급급했다.

신입이 지시를 척척 하는 게 이상한 거니 너무 주눅들지 말고, 수행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야 해결책을 가르쳐 줄 수 있다고 아무리 타일러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한국인 여직원의 그런 행동이 '요즘 사회 초년생들'의 일반적인 성격 문제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케빈과 빌리 양쪽 사이에서 중재를 해가며, 서로의 관점 차이를 이해하도록 설명했다.

점차 빌리도 자기 몫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케빈이 빌리를 교육할 때나, 업무 상 문제가 발생해서 질책해야 하는 경우에 케빈의 요청에 의해 종종 동석하곤 했다.

자신과 단 둘이 있으면 너무 주눅들어 하니까, 동석해서 분위기를 풀어달라고 했다.



언젠가, 케빈이 한국인 여직원과 미팅을 하던 중에 잔뜩 흥분한 얼굴로 회의실을 나와, 나에게 동석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누구 걸리면 서른 대 정도는 팰 것 같은 표정이다. 회의실에 들어가 삼자 대면을 했다.

케빈은 자기가 일전에 한 말이 있는데, 그렇게 말하지 않았었다고 여직원이 우기고 있다고 했다. 여직원은 억울한 표정으로 뭔가 말하려다가 참는 기색이다.

하아... 이거 참 애들도 아니고... 아니, 여직원은 애가 맞다쳐도 케빈은 왜 이러는 걸까.

나는 케빈에게 누구의 기억이 맞는지를 다투는 건 무의미한 일이니, 그냥 다시 한 번 더 전달하라고 했다.

여직원에게는 업무 관련 발언은 항상 메모하되, 아주 중요한 건이 아니면 적어뒀던 메모 내밀어서 상급자 이겨 먹으려 하지 말고 일단 상급자 기억이 맞는 걸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그날 퇴근을 하는데 여직원이 내게 와서, 자기가 머리가 안좋을지 모르겠지만, 이번만큼은 똑똑히 기억한다, 정말 억울하다는 말을 했다. 눈물까지 글썽이는데 어지간히 억울했나 보다.

하지만 나는, 그렇더라도 상급자에게 끝까지 우겨서 인정 받아내는 건 좋지 않다고 말해주고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여직원은 1년이 다되어갈 즈음, 케빈과 족자에 출장을 갔다.

출장 중 케빈은 전화로, 여직원이 자퇴 의사를 밝혔다고 내게 전했다.

여직원과 면담했다. 퇴사 사유는 낮은 급여와 불확실한 장래성이라고 했다.

부서장인 케빈은 여직원을 잡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 아무 관심 없어 보였다.

상사와의 궁합이든 업무 적응이든 스스로 극복해야 할 일이다. 상사마저 끌어줄 생각이 없다면 방법이 없다. 하루 빨리 다른 길을 찾는 편이 낫다.

나는 사직서를 수리했고, 여직원은 얼마 후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 때는 그냥 여직원이 열악한 해외 근무 상황이 힘들어서 한국을 간 거라고 치부했다.

왜 하필 케빈과 족자에 출장 간 중에 급작스럽게 퇴직 의사를 밝혔는지는 마음에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