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choon666.tistory.com/966 에서 4년의 터울을 건너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선배형이 갑작스럽게 귀국했다.
이미 귀국하고 나서 연락을 해와서 알게 된 거라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2022년 12월 6일일 거다.
기력이 없긴 했지만, 덤덤한 말투로 사업 마무리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그는 인니에서 평생 살기를 바랐다.
뒤늦게 발견된 대장암 말기, 다니던 회사에서 한국 본사로 발령내주고 치료도 지원한다는 제안도 거절하고,
항암치료를 받느라 한달에 한 번 한국을 왕복하면서까지 인니에 있으려 했다.
6차까지 받으며 점차 호전되고 있다는 검사 결과에 희망을 가졌지만, 결국 간까지 전이되어 버렸다.
더 지체하다가 비행기를 타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될까 서둘러 떠났다고 한다.
아마 인니로 다시 오기는 힘들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상황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다.
이 사람은 이 부분, 저 사람은 저 부분, 온전히 전체 사정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조각을 맞추고, 빠진 부분을 미루어 짐작하니 알겠다.
그답다.
그는 상대의 이해를 신경쓰는 사람이 아니다.
대화를 하다보면 앞뒤 맥락 자르고 이야기 흐름을 툭툭 건너뛰며 이야기하고는 못알아들으면 말귀를 못알아듣냐고 짜증을 내곤 했다. 자신만 알고 아직 얘기한 적도 없는 걸 상대방도 이미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상대방 입장에 맞춰 차근차근 설명하는 걸 답답해했다.
현지인을 차별하지 않아서 나와 마음이 맞았는데, 알고보니 한국인이든 현지인이든 공평하게 무심한 거였다.
타인 뿐 아니라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무심했다.
자신의 죽음마저도, 주변 사람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할 마음이 딱히 안들었나보다.
그가 귀국한지 2주 쯤 후, 그의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다. 한국에 사는 그의 오랜 친구였다.
그의 친구는 인니에 남겨진 사업이 있다면 정리하고자 한다며, 자료를 요청했다.
그와 통화하면서 이미 정리가 끝난 상황인데, 그걸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 제대로 얘길 안한 모양이다.
참 그답다.
이미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태까지 악화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가지 않는다면, 어쩌면 간다 하더라도 이젠 더이상 그와 말을 나눌 수 없을 것 같다.
그가 귀국한 직후 전화가 와서 잠깐 통화했던 게 마지막이었나 보다.
한국을 왔다갔다 하며 항암치료를 하던 동안 이런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변변한 작별도 없이 그렇게 떠나버렸다.
4년 전 비슷하게, 그와 변변한 이별도 없이 떠나버린 그의 애인이 떠오른다.
그녀가 떠난지 며칠 후, 그는 술자리에서 덤덤하게 소식을 전했었다.
딱히 내게 꼭 알려줘야 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뭐 알려준다는듯.
그렇게 애도하며 술잔을 나눴다.
4년 후 이렇게 될 줄, 그때의 우리는 상상이나 했었던가.
그는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그 때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던 때만큼이나 덤덤하다.
정말 그답다.
난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다. 정신 활동은 전기 신호일 분, 인간은 뒈지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도 나와 생각이 같았다.
하지만, 사실은 사후세계가 있고, 둘이 다시 만나게 된다면 좋을 거 같다.
그의 아내는 기분 어떨지 모르겠지만...
결혼하는 게 당연하다는 부모 뜻에 따라 선을 보고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고, 부양해왔고, 부양할 사이라고, 그가 그랬다.
정말 사랑했던 건 그녀라는 걸 내가 들었고, 내가 봤고, 내가 안다.
세상 별 미련이 없던 그녀가 바랐던 건 그와의 결혼이었고, 그 역시 반드시 그리 해줄 거라고 종종 내게 말했다.
그래도 그는 책임을 저버리는 사람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그는 남겨질 가족들의 생계에 지속적으로 보탬이 될 방법들을 궁리했다.
그는 책임을 다했다. 부부 일방이 사망하면 혼인은 해소된다.
그러니 이제 그가, 먼저 떠났던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되는 정도는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녀가 떠난 후에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듯 돌아갔다.
그와 나는 그 속절 없는 세상을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왔다.
이제 그도 떠난다. 그래도 세상은 아무 일 없이 돌아갈테고.
난 여태껏 그래왔듯 그냥 그렇게, 굴러가는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갈 거다.
언젠가 내게도 그날이 올 때까지.
인니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둘 사이를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한국으로 귀국했다. 먼 나라 옛 일은 까맣게 잊었겠지.
그의 아내는 어쩌면 그녀의 존재를 눈치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부양의 책임을 지키는 한 넘어갔던듯 하다.
난 그 둘 사이 이야기와 결말을 알고 기억하는, 아마도 유일한 사람일 거다.
그가 이렇게 떠나게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난 이 이야기를 아주 한참 더 덮어뒀을터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으니, 이 속절없는 세상에 흔적이라도 남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2022년 12월 23일 밤,
그 두 사람 이야기의 끝을 적는다.
....
윗글을 쓴지 이틀이 지나, 선배형의 부고를 전해 들었다.
12월 25일은 그의 기일이 되었다.
귀국한지 3주가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리 급히 귀국했었나 보다.
나와 마지막 통화할 적엔 어느 정도 예감을 하고 있었을텐데, 그 비슷한 말조차 정말 한 톨도 하지 않았다.
정말 끝까지 그답다.
이미 그녀와 재회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