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동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담임은 여선생이었다.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큰 소리를 내거나 흥분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차분하다기 보다는 목소리나 행동에 활기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선생은 공개적이고 노골적으로 나를 포기했다는 티를 냈다.
복도에서 뛰다가 걸려도, 한심하고 짜증난다는 눈으로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교실로 들어가라고 했다.
전체가 벌 받을 일이 있어도 나는 외면했다. (면제가 아니라 외면)
쉬는 시간에 반 친구들 서너명과 종이 비행기를 접어서 창밖으로 날리다가 걸렸을 적이 기억난다.
교실 앞에 나란히 세워두고 반 애들 다 들으라는듯 '넌 내가 벌 줄 필요가 없으니 들어가 앉아'라고 했다. 그리고 말썽 피운 다른 친구들은 모두 손바닥을 맞았다.
담임이 공개적으로 왕따를 한 거다. 당시는 왕따가 없어서 반 친구들과 사이는 좋았다. 친구들은 쟨 왜 저런 취급을 받나 정도로만 보고 넘어갔다.
천만다행이었던 건, 그 당시 난 눈치가 더럽게 없었다는 거다. 눈치가 있었다면, 정말 지옥같았을 취급이었다.
선생이 들어가라 그러면, 난 또 시키는대로 순순히 내 자리로 갔다. 영문을 모르겠으니 쫄지도 않았다. 나도 때려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미쳤나 ㅋ)
아마도 그런 내 태도가 더 열받았을 거다.
나이 마흔 근처인 그 여자가 왜 고작 12살짜리 초딩에게 적의를 가졌는지, 난 아직도 당최 모르겠다.
무관심과 포기를 같은 반 애들 앞에서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건 초등학교 담임 선생이 가할 수 있는 가장 악랄한 제재 아닌가.
난 성적도 상위권이었고, 심한 말썽을 부릴 정도로 깡이 좋은 애도 아니었다.
굳이 억지로 유추해보자면, 그 당시가 가장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이라서 촌지를 갖다 바치지 못해서 그렇지 않나 싶다.
한 놈은 모르고 했어도, 당한 놈에게는 심한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일이긴 하다.
그래도, 고작 11살 짜리 제자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레 그럴 수 있을까.
내가 그 당시 그 여자 나이보다 더 많아지고 어른의 사정이란 걸 이해하게 된 이후로도, 도대체 모르겠다.
자기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서 상태가 맛이 갔었고, 하필 내가 미워할 상대로 찍힌 게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다행인 것이, 난 1학기를 채 마치기 전에 구로동으로 전학을 가게 됐다.
1년 내내 그 여자가 담임이었다면, 내 인성에 상당히 안좋은 영향을 끼쳤을 거다.
대신, 선생이란 건 그냥 직업일 뿐이고 시기 질투 증오 편애라는 감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보통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라면 선생이 부모와 같은 위상으로 존중받던 시절이었고, 선생이 말하는 건 진리처럼 받아들였던 시대였다.
그런 시절 어린 나이에 선생도 그냥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대다수가 당연하고 옳다고 하는 것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삐딱하게 보는 반골이 된 건, 그 여자 역할도 컸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