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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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에 관한 기억

명랑쾌활 2024. 3. 22. 07:28

사촌형의 외할머니는 아주 유명한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일은 꾸준히 있으셨던 걸로 기억한다.

찾아가 뵐 정도로 가까운 촌수는 아니었지만, 어쩌다 세배를 하게 되면 세뱃돈이 아주 후하셨다.

사촌형도 용돈이 꽤 풍족했었던 걸로 보아, 영험하다는 소문은 있던 모양이다.

 

방학 때 사촌형 집에 있는데, 사촌형이 산기도 하시는 외할머니 모시러 가야 한다고 해서 같이 나섰다.

밤 11시였던가, 새벽 4시였던가 기억은 잘 안나지만 아무튼 사람들이 흔히 돌아다닐 시간은 아니었다

봉고차를 끌고 산자락을 올라갔다. 인왕산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산동네는 깜깜했지만, 아주 외진 곳은 아니었다.

더이상 차가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도로가 좁아진 곳에서 차에서 내렸다.

판판한 바닥보다 계단이 더 많은 시멘트 공구리 길을 따라 다시 10분 정도 걸어 올라갔다.

공구리 길이 끝나고 흙길이 이어졌다.

사람이 다녀서 난 길이지만, 자주 다닌 흔적은 없는 오솔길이었다.

10여 분 정도 오르니 저 멀리 몇 개의 촛불로 밝혀진 곳에 사촌 외할머니가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촌형이 멈춰서며,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고 했다.

사촌형의 외할머니는 쉴새없이 무언가 나직히 속삭이며 손바닥을 비비며 상체를 앞뒤로 움직이는, 치성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20여 분쯤 후 할머니가 재물로 올렸던 과일들을 다시 담아 보자기에 싸서 내려오셨다.

사과나 배 등등 과일은 엄청 맛없었지만, 2월에 접한다는 거 자체가 신기한 시절이었다.

 

믿어라 믿지 마라 딱히 말할 근거나 체험한 건 없다

하지만 효험이 아니라 신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모든 무당들이 근거없는 사기꾼은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아무 근거 없는 사기꾼이라면 아무도 안보는데 추운 겨울 한밤중에 산에 올라 간절히 치성을 드릴리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