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

코로나 백신 2차 접종 성공기

명랑쾌활 2023. 2. 3. 10:34

외국인이라 안된다는 개소리를 듣고 나니 허탈하더군요.

공식 앱에 줄줄 뜨는 백신 접종처와 예약 빈 자리리들은 다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가봐야 외국인이라 안된다고 할 가능성이 높으니 헛지랄입니다.

애초에 전 코로나와 델타 둘 다 겪었고, 공공장소에 출입을 할 수 없다니까 할 수 없이 접종하는 거였다, 그까짓 시기 좀 못맞추면 뭐 어떠냐.

내려놓으니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역시 번뇌는 집착에서 비롯됩니다.

집착을 내려놓으니 1차 접종을 했던 지엑스포 JIEXPO 에서 접종 예약 받는다는 공지가 빡 뜹니다. (밀당하냐?)

여기라면 외국인 드립치면서 거부하지 않겠지요.

원래 1차 접종 3주 후 2차 접종해야 하는데, 4주가 됐습니다.

괜찮습니다. 효능은 기대 안해요. 그저 백신 맞았다는 쯩이 필요할 뿐입니다.

 

오전 8시 반 쯤 도착했는데... 와 ㅆ ㅈ됐다는 촉이 마구 울립니다.

수도권 일대의 모든 접종률 낮은 시골 마을 주민들을 관용 버스 동원해서 다 데려온 모양입니다.

 

접종 시작 시간에서 30분 지났는데 북새통입니다. 시골에서는 새벽부터 출발한 모양입니다.

단순히 사람 많은 게 문제가 아니라, 무질서가 걱정입니다.

새치기는 기본이고, 먼저 들어가려는 수작이 난무할 겁니다.

 

일단 줄 끝으로 가서 섰지만...

 

앞으로 갈 수록 괴상한 줄들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기왕 새치기 할 건데 뒤에서 할 리 없으니까요.

운전하다보면 흔히 보는 광경의 보행자 줄서기 버전입니다.

진입로 차선에 줄 안서고 옆의 직진 차선 진행하다가 끼어드는 차량 때문에 전 차선이 정체되는 거죠.

 

보다 못한 군인과 진행 요원이 강하게 통제해서 사람들을 자리에 앉힙니다. 자리에 앉히면 새치기 끼어들기 어렵고 눈에 확 뜨입니다.

코로나 사태 덕에 대기줄 통제 요령이 늘었습니다. 시민 의식도 눈꼽 만큼 나아졌고요.

하지만 뻔히 앞에서 앉으라고 소리를 쳐도, 저렇게 못들은척 끝까지 개기고 서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습니다.

바로 앞까지 가서 딱 쳐다보고 말하면, 그때서야 이제 들었다는듯 근처 자리에 앉으려는 '시늉'을 합니다. 근처에 빈 자리가 있을리 없습니다. 통제하는 사람이 다른 쪽 통제하러 가면 그 자리 그대로 서있으려고 시간 끄는 겁니다.

만약 끝까지 지켜보면 할 수 없이 뒤로 갑니다...만, 다시 앞으로 새치기 하려고 호시탐탐 노립니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걸 손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한국의 강압적 질서 의식 주입 교육이 과연 틀리기만 한 건가, 자율성의 존중이 항상 옳은 것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광경입니다.

제가 인니에 오래 살면서 한국의 원래 당연했던 것들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한국에 살 적엔 무조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 중 왜 그랬는지 이해를 하게 된 것도 적지 않습니다.

 

사진 왼편 여성은 아이를 데리고 온 보호자라서 서있습니다.

오른편에 벽을 따라 줄줄이 있는 사람들은 시골에서 단체로 왔는지 뒤에서부터 한 덩이로 우르르 와서 뭉개고 있는 겁니다.

오른편의 모자 쓴 할아버지는 그 옆의 의자에 앉은 사람과 일행 아닙니다.

의자에 앉지 않은 사람은 다 뒤로 쫓으니까 의자 등받이에 슬쩍 팔을 올리며 일행인척 하는 겁니다.

투박한 외양의 시골 노인이라고 순박하게 보면 안됩니다.

시골도 어차피 사람들 부대끼며 사는 곳이고, 어찌보면 도시보다 더 원초적입니다.

잘 몰라서 어수룩할 수도 있지만, 잘 모른다는척 의뭉 떠는 교활함일 수도 있습니다.

 

사진 왼편 남자는 통제하는 군인 앞에서 의자에 앉은 여성의 보호자인척 의뭉 떨고 있습니다.

하여튼 통제 징그럽게 안듣습니다. ㅋㅋ

 

뭔 서류 같은 거 보여주고는 줄 안서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

그 중엔 아랍인, 중국인, 서양인도 제법 됩니다. 끝발 좋은 줄이 있나 보네요.

저 정도는 애교입니다. 현지인들도 저런 경우는 그러려니 합니다. 끝발도 능력이라고 받아들여주는 느낌입니다.

뭐, 저도 관청 업무 볼 적에 현지인들 잔뜩 기다리는데 브로커 써서 차례 안기다리고 급행으로 처리한 적 많아서 할 말이 없네요. 그때 저를 보는 현지인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는 시선이었습니다.

 

드디어 건물 안으로 입장해서 '줄을 다시' 섭니다. ㅋㅋㅋ

여기까지 딱 1시간 걸렸습니다.

대충 세어보니 가로 20, 세로 20, 총 400개의 의자가 놓여 있네요.

참 웃기는 게, 여기서는 서있는 사람의 거의 없습니다. 건물 밖에 줄 섰을 적엔 꾸역꾸역 서있었던 그 많은 사람들이 무슨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줄 의자에 앉아있다가 슬슬 한 곳으로 모이는 아줌마들.

같은 마을에서 온 모양이고, 의자에 앉은 사람이 대장 아줌마인 모양입니다.

저렇게 자기 자리를 비우면, 그 자리는 다른 사람이 채웁니다.

자리 앉으라고 해도 자기 자리 돌아보면 이미 채워져 있고, 혼돈의 시작입니다. 아니, 이런 건 혼돈 축에도 못낄라나요.

엄마가 저렇게 통제를 안따르는데,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

인니 질서 의식 개선은 빨라도 50년은 걸릴 거라고 봅니다.

 

폼 나는 건 군인이 다 합니다. 경찰은 군인 꼬봉인 것처럼 인식합니다.

군인이 권력을 놓지 않아서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경찰의 비리도 제 무덤 판 거고요.

수하르토 군부 독재 시절, 군인도 직업의 일종이라며 정치 참여의 길을 열어둔 여파가 오늘날에도 여전합니다.

 

드디어 접종 구역 안에 들어왔습니다.

혈압 재고 예약 여부 확인하는 줄입니다.

건물 밖 1시간, 건물 안 1시간 20분, 총 2시간 20분 만에 입성했습니다.

 

오른편은 아스트라제네카, 왼편은 시노백 백신을 접종합니다.

당연히 아스트라제네카 쪽으로 몰립니다.

물정 모르는 시골 사람들은 시노백 쪽 줄에 앉도록 은근히 유도하는 거 같았습니다.

 

접종 마치고 나오면서 찍은 광경입니다.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모양입니다. 그래봤자 서있는 사람은 앉으면 지구라도 멸망할듯 죽어라 서있지만요.

1차 접종 관련 포스팅에 이제 인니도 질서 의식이 많이 발전했다고 했었는데, 제 착각이었습니다.

그 때는 오전 11시에 도착했었는데, 아침에 난리를 치뤘다가 어느 정도 정리된 광경을 본 거 같습니다.

역시 한 번 본 걸로 전부를 판단하면 얼토당토 않는 오해를 하기 쉽군요.

 

이 때가 11시 10분이었습니다.

8시 40분에 줄 섰으니 총 2시간 30분 걸렸습니다.

생각보단 양호하네요. 조금만 늦었으면 점심 시간 걸렸을 겁니다. 인니는 아침이 더 붐비지만, 그래도 아침에 줄을 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침에 줄 섰을 적에, 의자에 앉지 않았다고 뒤로 밀린 사람들에 새로 붙는 사람까지 합쳐서 사진 왼편 저 멀리 건물 꺾어지는 곳까지 줄이 늘어섰던 걸 봤었습니다.

지금은 사진 중앙 약간 왼편의 하얀 벽까지 줄서 있더군요.

점심 시간 걸리면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른다는 단점만 아니라면, 아침 일찍은 피하는 게 차라리 나은 거 같습니다.

 

각 마을에서 온 버스들이 2열로 주차되어 있습니다.

저 버스들에 꽉꽉 채워 데려왔으니 사람이 그렇게 많았네요.

그래도, 어떻게 행정 운영이 저렇게 멍청할 수 있을까 싶은데도, 어떻게든 그럭저럭 굴러가는 거 같아서 대단합니다.

외국인인 제가 2차 백신까지 맞은 게 신기할 정도예요.

이렇게 또 한 고비를 넘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