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

[공급자 위주의 인니 서비스 문화] 11. 휴대폰 통신망 이용

명랑쾌활 2020. 10. 26. 08:54

인니의 휴대폰 통신은 선불 충전이 기본입니다.

휴대폰 가게에서 심을 구입하여 등록하고 휴대폰에 끼워 넣으면 개통이 되긴 하는데, 선불 요금제만 가능합니다.

후불제로 전환하는 절차는 엄청 성가시게 해놨습니다.

우선, 지역마다 있는 해당 통신사의 직영 서비스 센터에 직접 가서 해야 합니다.

센터가 많지 않아서 가장 가까운 곳이 차로 1시간 걸리는 지역도 흔합니다. (도시에 산다면 상대적으로 가깝습니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도 많고, 기본 요금도 제법 비쌉니다.

후불제였다가 선불제로 바꾼 전기 요금처럼, 휴대폰 통신 공급사 역시 연체나 미납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가급적 선불 요금제로 유도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 출처 : http://pulsaama.blogspot.com>

선불 충전은 ATM, 편의점, 휴대폰 가게, 몇몇 일반 가게에서 할 수 있습니다.

휴대폰과 전혀 상관 없는 일반 가게라도 뿔사 Pulsa 라고 써붙여 있으면 선불 충전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뿔사 : 선불로 구입하는 휴대폰 통신망 사용 권리)

물론 수수료는 무조건 뜯습니다.
인니에서는 뭘 하든 수수료 안뜯길 방법 없습니다. 아랫돌 빼다 위에 쌓아도 수수료 뜯을 겁니다. ㅋㅋ


<사진 출처 : https://tirto.id>

데이터 통신 역시 선불로 구매해야 하는데, 이렇게 데이터 선불 패킷을 파는 가게에서 사거나, 통신사의 전용 서비스 센터로 전화 연결하여 충전할 수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충전해놓은 뿔사에서 빠져 나갑니다. (이건 수수료 없습니다. 인니에선 아주 드문 일입니다.)



통신사의 서비스 센터에 직통으로 접속해서 인터넷 패킷을 충전하다 보면, 소비자를 불편하게 만들어 자신들이 판매하길 원하는 상품 쪽으로 유도하려는 공급자 위주 마케팅 문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들에게 별로 이익이 되지 않는 상품까지 도달하는 단계를 최대한 복잡하고 찾기 힘들게 만드는 거죠.


첫 화면입니다.

데이터 60기가/사용기한 1달/20만 루피아 상품을 전면에 걸고 1번을 선택하면 바로 구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2번도 밀고 있는 상품인가 봅니다.

다른 상품을 보려면 4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다음 화면에서도 일단 1번은 지들이 밀고있는 상품을 내겁니다.

그 밑으로,

2번 OMG 는 Oh My God 약자입니다. 놀랍다는 의미로 쓰는 인니 젊은 세대의 유행어입니다. (참고로 '오엠게'라는 인니식 발음을 하지 않고 '오엠쥐'라고 합니다. ㅎㅎ) 텔콤셀이 제공하는 '데이터와 동영상이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통합 패키지 상품'을 뜻합니다.

3번 Mingguan은 '주 단위'라는 뜻입니다.

4번 Harian은 '일 단위'라는 뜻이고요,

5번 Malam은 '밤', 심야 이용 한정을 뜻합니다.


주 단위, 일 단위는 있는데, 월 단위는 없지요?

OMG 항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월 단위를 뜻하는 단어는 Bulanan이고, 예전엔 그렇게 표기했었습니다.

뜬금없이 OMG라는 족보도 없는 명칭으로 바뀌는 바람에 해맸던 기억이 납니다.


끝일 것 같지만 아닙니다.

다시 또 지들이 미는 상품을 1, 2번에 띄웁니다.

다른 월 단위 상품을 보려면 3번 '그 밖의 월 단위' 항목으로 또 들어가야 합니다.


드디어 제가 원하는 상품 항목이 나왔습니다.

외부에서는 대용량 데이터를 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월 2기가면 충분한데, 가장 적은 용량의 월 단위 데이터 상품은 4번 3기가 짜리입니다.

빌어먹을 OMG 상품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지만, 패키지로 묶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매 당합니다.

순수하게 데이터만 사는 선택권 따위는 없습니다.

그런데, 상품 리스트의 순서가 참 괴상하죠?

내림차순도, 오름차순 아니고 중구난방입니다.

돈 안되는 건 최대한 찾기 힘들게 배치한 게 아닐까 의심스럽습니다.


인터넷 패킷 충전엔 불합리한 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1개월 (정확히는 30일) 단위 데이터 상품을 쓰고 있는 중 아직 데이터 잔량이 있는데 또 충전을 하면, 데이터 잔량에 새로 충전한 만큼 추가 되지도 않고, 사용 기한이 가산 되지도 않습니다.

예를 들어, 3기가 30일 충전을 하고 15일 후 1기가 남은 상태에서 다시 충전을 한다면, 데이터 잔량이 4기가에 45일이 되는 게 아니라, 그냥 3기가 30일이 됩니다.

15일 사용 기한이 남은 1기가 잔량은 그냥 사라지는 거죠.

설마 인니 통신회사 기술력이 떨어져서 그런 건 아닐 겁니다. 특별히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요

그냥 그렇게 하지 않는 겁니다.

인니는 컴플레인 창구가 없고, 소비자들이 어지간해서는 컴플레인 할 생각을 안하니까요.

설령 컴플레인 하더라도, 잔량이 남은 상태에서 충전을 한 소비자 과실이라고 하면 그만입니다.



이 건 뿔사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 접속 화면입니다.

예전엔 접속 번호만 입력하면 바로 떴었는데, 몇 년 전부터 이따위로 바꿔 놨습니다.

사업자가 밀고 있는 상품들 전면에 띄우고, 뿔사 확인을 하려면 5번 항목으로 다시 들어가야 합니다.



텔콤셀에서는 두어 달에 한두 번 꼴로 스팸 전화가 옵니다. (스팸 문자는 하루에 대여섯 번)

안오게 할 방법 따위는 없습니다. 그런 선택지 자체가 없어요. ㅋㅋ

착신 번호가 188로 뜨기 때문에 싫으면 아예 안받고 버티는데, 보통은 하루 이틀 걸쳐 두어번 오고 맙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근면 성실한 씨발 훌륭한 직원에게 걸리는 경우가 아주 가끔 있습니다.

사흘 간에 걸쳐 무려 8번 전화가 온 적이 있었지요.

안받으면 받을 때까지 할 거 같은 기세라 결국 8번째 전화를 받았는데, 역시나 상품 광고하는 내용이었죠 뭐.

아마 일한지 얼마 안되는 신입이 '전화 안받으면 리스트 한 바퀴 돌리고 또 전화하라'는 지침을 무식하게 곧이 곧대로 지킨 모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화를 내진 않았습니다.

인니는 '설령 잘못을 했더라도' 그에 대해 화내는 사람을 인격적으로 덜떨어진 사람으로 취급하는 문화가 있거든요.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생각을 못하기 때문에, 화를 내고 컴플레인 해봐야 아무 의미 없습니다.

화내든 상냥하게 거절하든 당분간은 전화 안올테고, 화내든 상냥하게 거절하든 어차피 스팸 전화는 또 올텐데, 소용 없는 짓에 감정 소모할 필요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갑니다.



인니는 불편함을 표출하는 것을 삼가하는 문화이다 보니 공급자 위주의 서비스 문화가 형성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반면 한국은 서비스 수준이 급속도로 발전했고요. 그 이면에 갑질과 분노가 흔한 사회가 되었다는 부작용이 심각합니다만.

적어도 인니는 직업에 따른 인간적 차별과 무시는 약한 편인 걸로 보아, 모든 일엔 반드시 대가가 있게 마련인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