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한국

[한국 방문 2019] 3/3. 돌아가는 길

명랑쾌활 2020. 2. 3. 10:07

드디어 인니로 돌아가는 날이 왔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매일 매일 트렁크에 던져 넣었던 물건들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꼭 닫고 무게를 잰다.

아직 여유가 있으면 집에 있는 라면이라도 더 채워 넣어, 알뜰하게 무게 제한을 꽉 채운다.

라면 한 개라도 인니에서 사는 것에 비해 최소 300원 이상 버는 셈이다.


집에서 공항버스 정류장까지는 10분 거리다.


인니 생활 초기엔, 엄마는 한국을 떠날 때면 매번 공항까지 배웅 나왔었다. 매번 난 나오지 말라고 했고.

떠나는 사람이야 앞에 펼쳐질 일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떠나 보내는 사람은 떠난 사람의 빈 자리가 기다리고 있다.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얼마나 휑할지.

난 계속 배웅 나오지 말라고 했고, 결국 엄마는 정류장까지만 배웅했다.

이번 방문 때는 떠나는 날 마침 엄마에게 다른 약속이 있어서 나 혼자 나왔다.

예전 같으면 약속을 취소하고라도 배웅하셨을텐데, 그러지 않아서 좋다.

떠나 보낼 땐 내일 돌아올 것처럼, 돌아오면 어제 떠났던 것처럼, 그렇게 심상하게 받아들이는 게 좋다.

언젠가 마침내 다시 돌아오지 않은 길을 떠나는 날은 반드시 올테니, 지금의 작은 이별들에 일일이 상심하지 않는 게 좋다.


저 멀리 공항버스가 오는 게 보이면, 마음을 내려 놓는다.

공항이 아니라, 이 곳에 이미 내려 놓는다.

버스를 타는 순간 이미 난 한국을 떠났다고 생각한다.

버스가 공항까지 가고, 공항에서 티케팅을 하고, 수속하고, 기다리는 시간은 이미 이륙 준비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인천-자카르타 비행기 기내는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여행객보다는 한국에 장기체류하다 마침내 집에 돌아가는 인니인과 인니에 장기체류하러 가는 한국인의 비율이 높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행하는 사람의 떠남과 거기 사는 사람의 떠남은 감정이 전혀 다르다.


인니에 왔다는 걸 실감하는 때는 수하물을 기다릴 때다.

인니도 제법 질서의식 수준이 높아져서 바닥의 가이드 라인을 지키는 사람들이 늘었다.

하지만, 저렇게 지 편하자고 떡하니 가이드 라인 안에 들어가 남의 시야를 가리는 사람이 있으면 아슬아슬한 질서의식은 금새 무너지기 마련이다.

얄궂게도 가이드 라인 안에 들어가 폼 잡고 서있는 저 사람은 한국인이다. (인니 문화에서 팔짱을 끼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전면 거부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인니인은 팔짱을 잘 끼지 않는다. 물론 모두가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한국에 가면 멀쩡하게 질서 잘 지키다가도 인니에 오면 돌변하는 한국인이 많다.


모두가 가이드 라인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엉망이 됐다.

이제 수하물 컨베이어에서 자신의 가방이 나오는 걸 보려면 몸을 기울여야 한다.

맨처음 질서를 깬 한국놈팽이인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뭐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깨질 질서였지만, 불특정 다수를 뭉뜽그려 욕하는 것보다는 구체적 대상 하나 꼭 집어서 다 뒤집어 씌우는 게 탓하기 편하다.


난장판 속에서 목을 빼고 내 트렁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자니, 인니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난다.

이제 다시 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