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서비스업의 "도와 드립니다"라는 표현에 대한 단상

명랑쾌활 2020. 9. 28. 09:03


서비스업은 종류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1차 산업과 2차 산업에 속하지 않는 모든 산업이 서비스업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니까요.

요즘 4차 산업이라고 하는 것들도 사실 대부분 서비스업의 연장입니다.

전 그중에서도 대행업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2015년 중순경, 인니 최대 한인 커뮤니티인 인도웹이 달아올랐던 일이 있었습니다.

모 비자업무 대행업체와 의뢰인이 진실 공방을 벌이며 크게 한 판 붙었는데, 인도웹 회원들도 대거 양쪽 진영에 참전하면서 사태가 커졌던 사건이었죠.

저도 즐거운 마음으로 참가해서 진흙탕에 신나게 구른 덕에 인도웹에서 알아주는 또라이로 이름을 날리게 됐고요. ㅋㅋ

대행업체와 아무 관계 아니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대행업체를 옹호하거나 반대편을 비난하고 조롱한 댓글들 중 일부가 대행업체 직원이 사무실에서 아이디를 바꿔가며 단 거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고,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깊은 내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는지, 이후 인도웹 게시글 수가 급감하기도 했습니다.


그 사건이 벌어진 초기, 대행업체와 의뢰인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진 단초는 바로 '도와 드린다'라는 표현에 있었습니다.

의뢰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의뢰인이 컴플레인을 한 상황에서 대행업체 직원이 의뢰인에게 "저희도 도와 드리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했는데, 의뢰인이 "돕기는 뭘 도와요? 돈 받고 하는 일이지."라고 한 거지요.

의뢰인이야 원래 마음이 상해 있었고, 대행업체 직원도 그 말에 마음이 상했던 걸로 보입니다.

양쪽 다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갑니다만...

전 대행업체 직원의 표현이 부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도움 : 어떤 일이 잘되도록 거들거나 보탬을 주는 일

서비스 : 재화를 생산하지는 않으나 그것을 운반, 배급, 판매하거나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하는 일

서비스업 :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산업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서비스'와 '도움'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는데, 딱히 얼토당토 하진 않습니다.

뭔가 도움을 제공하는 행위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도우미'라는 순화된 순우리말이 만들어지기도 했지요. (지금은 전혀 다른 의미로 변질되었습니다만)

한국인에게 '서비스 안주'는 공짜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서비스는 한국어로 '도움'이 아니라 '용역'입니다.

서비스업은 용역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이지, 도와주고 돈 받는 게 아닙니다.

'돕는다'라는 표현에는 '대가를 받지 않는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서비스 업종 중에서 컨설팅이나 대행업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 '서비스=도움'이라고 인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가령, 마트 계산대 캐셔나 식당 서빙, 택배 배달 등등은 분명히 서비스업이지만,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자신이 고객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독 컨설팅이나 대행업만 그런 경향이 있어요.
저는 그 원인이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해주는 거다'라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코드 찍찍 찍고 거스름돈 계산마저 컴퓨터가 해주는대로 내미는, 아무나 할 수 있는 하찮은 마트 캐셔일과는 다르다는 거겠지요.


혹자는 '도와 드립니다'를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기 위한, 부드러운 표현으로 쓴다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글쎄요... 의도는 갸륵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인식하는 태도는 곤란합니다.
업무에 있어서 '도와준다'라는 표현은 무책임한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나는 그냥 도와 드린 것 뿐이예요.' 뭐 이런 거죠.
상대와의 관계나 상황에 따라, 상당히 무례한 표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방장을 돕는 게 주방 보조의 업무지만, 주방장에게 '전 지금 주방장님을 도우려고 이러는 거예요'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 볼만 합니다.
이런 저런 일이 벌어질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그 중에 주방장이 감격에 겨워 주방 보조를 얼싸안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없을 겁니다.
얼싸안는 '것처럼' 보이는 반응을 보일 순 있겠지만요.


도움이 되었다고 마음 속으로 보람을 느끼는 것과, 상대 면전에서 그런 말을 입밖으로 내뱉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댓가를 받지 않는 자원봉사자조차도 봉사를 받는 대상에게 그런 말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말 자체가 좋은 뜻을 가졌다고 해서, 항상 좋은 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