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 당일치기 찍고 오기를 했습니다.
관광을 목적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관광지를 간 것도 아니니, 여행이라고 하기는 애매하네요.
일단 인니에 들어왔다가, 취업비자 발급 수속이 완료되면 해외로 나가야 합니다.
취업 비자를 발급 업무를 취급하는 부서가 국외 공관(대사관)에만 있는 인니의 요상한 제도 때문이지요.
인니에서 일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은 겪었고, 몇 번을 겪은 분들도 많습니다.
저도 이번이 4번째네요.
보통은 가장 가까운 싱가폴로 갑니다만, 말레이시아로 가는 사람도 있고, 일정 조율해서 한국에 갔다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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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15분, 자카르타 공항에서
밝은 보름달이 떴다.
당일치기로 비자를 끝내려면 싱가폴 공항에 9시 이전에 도착해야 한다.
자카르타에서 싱가폴까지는 1시간 반이 소요되는데, 싱가폴 표준시각은 1시간 빠르기 때문에 6시 15분에 출발하는 첫 항공편을 타고 가야 한다.
두 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하니, 4~5시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공항 근처에 살거나 전날 와서 묵는다면 괜찮겠지만, 먼 곳에서 출발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한밤중에 출발해야 한다.
자카르타 인근의 한국 업체들이 많은 지역 중 한 곳인 수까부미 Sukabumi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고생을 하는 편이다.
수까부미에서 공항까지는 통상 3~4시간은 예상해야 하기 때문에, 밤 12시 ~ 1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나중에 비자 수속 다 끝내고 자카르타에 도착하면 밤 9시 쯤, 거기서 다시 수까부미까지 오면 새벽 2~3시는 기본이다.
꼬박 24시간 이상이 걸리는 여정이지만, 수까부미에서 근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싱가폴 갔다 오는 당일을 제외하고 전날이나 다음날도 정상적으로 근무한다고 한다.
그렇게 일을 시키는 한국 업체도 지독하지만, 그걸 또 버텨내는 한국인도 참 독하다.
(인니에 진출해서 중견업체로 뿌리 내린 업체들의 사장이나 임원들의 경우, 아직도 한국 70~80년대 기업 가치관에 멈춰 있는 사람들이 많다.)
단순히 휴식이 모자라는 문제 뿐 만 아니라, 하루에 비행기 두 번 타면 나타나는 후유증, 약 1주일 정도 피로가 잘 안풀리고 몸이 좀 시름시름한 증상을 버텨 내야 하는 거다.
수까부미에서 싱가폴 당일치기를 7~8번 했다는 어르신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죽을 맛이라고 하신다.
나같은 경우, 전날 끌라빠 가딩 Kelapa Gading (새벽 시간엔 공항까지 40분 거리인 지역) 지역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출발했다.
젊다면 회복을 넘어 복원도 가능하지만, 30대 중반이 넘으면 유지가 고작이다.
고작해야 회복이나 가능한 몸을 과도하게 혹사 시키는 건 생명력을 깎아 먹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잠깐 쓰다 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회사도 직원 생명력을 배려해 줘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피곤에 절어 흐리멍덩 하느니, 좋은 컨디션 유지하며 일하는 게 회사로서도 이익이다.
직원이 곧 회사고, 회사가 곧 직원 아닌가.
사람 한 명 이틀 정도 빠진다고 개판되는 업체라면 제대로 된 업체도 아닌 거고.
전날 편의점에서 산 도라에몽 빵으로 아침을 떼운다.
만화 보면서 늘 궁금했던 빵인데, 실제로 팔아서 신기했다. (저 빵에다 뭘 어떻게 하면 두 배가 되고 네 배가 되다가 난장판이 되었던 에피소드가 흐릿하게 기억난다.)
하지만 맛은 그냥 그저 그랬다. =_=
별 네 개짜리 호텔에 묵었는데, 새벽에 출발하느라 못먹고 나온 조식 부페가 생각났다.
몇 번 본 풍경이라 그닥그닥...
이렇게 지나가며 보기만 했지, 근처에 가본 적은 없다. ㅋㅋ
올 때 마다 단골로 찾는 대행사 사무실이 있는 건물 주차장
당연한 얘기지만 다 외제차다.
경치 보며 담배 한 대 피운다.
흡연 정책이 빡빡한 편인 싱가폴에서는 모든 건물 내 흡연은 금지지만, 그래도 대충 빠져나갈 구멍들은 있다.
가령 여기는 건물 구역 안이기는 하지만, 실외 주차장이고 지붕이 없으니 건물 안은 아니라, 그럭저럭 넘어가는 분위기다.
괜찮다고는 하지만, 떳떳하게 피워도 된다기 보다 그냥 '눈치껏' 넘어가는 거 같다.
뭐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땅덩어리가 좁다 보니 저런 해괴한 빌딩도 있다.
기둥 위에 건물을 올리고, 건물 밑에는 공원을 조성했다.
구글로 찾아 봤는데, 검찰청이랜다.
딴 데 갈 생각 1도 없이, 하루 종일 등 마사지만 받았다. ㅋㅋ
이렇게 아무 것도 안하고 푹 쉬어도, 피로가 1주일 간다.
비행기 하루 두 번 타는 거 보통 일 아니다.
아, 이번에 갔을 때 특이했던 일이라면, 비자 수속 대행사 사장님에게 "문빠냐?"는 소리를 면전에 대놓고 들었던 거.
하도 황당해서 대답도 제대로 못했다.
1년에 손님을 몇 천 명씩 상대하시니 지겨울 만도 한데, 손님과 대화하는 걸 즐기는 분이다.
문제는 골수 경상도 정치 성향을 가졌는데, 그런 자신의 성향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면에서는 세심하고, 사람 편하게 잘 챙겨 주시기 때문에, 한 번 다녀갔던 사람이라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독특한 분이기도 하다.
상대방 면전에 '무슨무슨빠'라고 하는 게 상당히 예의에 어긋나는 표현이라는 걸 모르거나, 나와는 몇 번을 만났으니 가깝게 느껴져서 예의보다는 솔직함을 보이지 않았나 하고 좋게 생각하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선은 지켜야 하지 않나 싶다.
뭐 악의는 없는 분이라 다음에도 가게 된다면 다시 그 대행사로 가긴 하겠지만...
나이 많은 사람 경솔함을 나이 적은 사람이 이해해야 하는 웃기는 상황이 왜 이리 자주 벌어지는지 모르겠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