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III

누가 보상해야 할까?

명랑쾌활 2017. 6. 12. 11:03

인니는 바람이 세게 부는 일이 아주 드물다.

자주 그랬다면 나무들이 그렇게 허술하게 빨리 자라고 많은 잎들을 달고 있게끔 진화하지 않았을 거다.

올해 초엔 그 드문 센 바람이 며칠간 불었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 센 바람 때문에 공장 담벼락 바깥쪽에 심어져 있던 대나무들이 기울어서 담벼락을 일부 무너뜨렸다.

물론 대나무는 공장 바깥쪽 땅주인이 심은 거다.


누가 보상해야 할까?

이런 상식적인 질문에 가장 적절한 대답은, '적어도 외국인에게는 절대로 피해보상을 해줄리가 없다'다.

그 사실을 이미 겪어서 알고 있던 나는 보상 문제 따위는 고려하지도 않았고, 담벼락 수리를 위해 기울어진 대나무들을 베어낼 수 있도록 땅주인에게 '양해'를 구하라고 지시했다.

양해를 구하러 갔던 직원은 대나무를 베어내는 대가로 집주인이 60만 루피아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그것도 많이 깎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공동체 관습이 강한 지역일수록 타지인에 대한 배척이 심하다.

한국도 지금이야 공권력이 안정되어 그런 일이 드물지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시골에 공장 하나 세우면 그 지역 사람들(보통 토박이나 터줏대감이라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트집을 잡고 보상(?)을 요구했다고 한다.

인니도 그리 다르지 않다.

위와 같은 경우, 현지 토박이와 현지 토박이 사이에 벌어진 일인지, 현지 토박이와 외지에서 온 정착민인지에 따라 결론이 다르다.

또한, 관련 당사자간 경제적 상황이라던가, 그 지역에서 누가 입김이 더 센가 하는 사항도 결정에 영향을 끼친다.

만약 한쪽이 외국인이라면 100% 불리하다고 보면 된다.

뒷차가 앞차를 들이받아 놓고도 앞차 운전자가 외국인이면 되려 보상을 요구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는 나라가 인니다. (그 정도로 미친놈은 드물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임)


직원에게, '회사가 빚도 많고 돈도 없어서 60만 루피아 줄 수 없으니, 대나무 베지 않고 그냥 밀어내기만 해서 담벼락 수리하겠다'고 땅주인에게 전하라고 했다.

뭘 어떻게 얘기했는지, 대나무를 베어내고 담벼락 공사를 끝낼 수 있었다.

불쌍해서 봐준 건지, 양심에 찔려서 허락해 준 건지,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겠다.

고작 8년 산 거 갖고 한 길 사람 속을 어찌 알겠나.

그저 내 상식, 한국 상식을 잣대로 함부로 들이밀지 않게 된 정도면 다행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