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발전이라는 이름 하에 이루어지는 개발.

명랑쾌활 2009. 1. 3. 15:10
발전이라는 이름 하에 이루어지는 개발이 과연 옳기만 한 일일까?

어릴적 내가 살던 강경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보다 포장되지 않은 곳이 더 많던 곳이었다.
한창 " 새벽종이 울렸네~" 가 울려 퍼지던 시절이라, 여기저기 맨땅이 아스팔트 길이, 조금 덜 중요한 길은 시멘트로 포장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며 컸다.
그 때 난, 빤빤하고 비가 와도 깔끔한 아스팔트 길이 깔리면 깔릴 수록, 그게 살기 좋은 마을, 행복한 나라가 되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좀 더 커서 서울로 이사오고 얼마 간의 시간이 흘러 선산에 찾아 갔을 때,
여간해선 개선될 것 같지 않았던 선산 앞의 깡촌 시골마을까지도 드디어 포장도로가 깔린 것을 보고서,
' 이야 여기도 이제 많이 발전했네.' 하고 생각했다.

그 시절 난, 자연적인 것에 인위적인 변화를 가하는 것이 곧 발전이라고 여겼던 거 같다.
개발은 만능이었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아니, 그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에 가깝다.

어느 날 우리 집 근처 도로에 공사가 시작 됐다.
허허벌판에 논밭만 있던 곳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 구성되었던, 왕복 4차선의 언덕이었던 곳이다.
그 전의 풍경이야 모르겠지만, 오가면서 도시 옆 야산 치고는 사람 다니기 힘들 정도로 나무가 빽빽하고 울창해서 마음에 들어 하던 곳이었다.
최소한 20년이 넘게, 아니 분명 그 이전에 이전부터 그렇게 있던 그 곳이 가차없이 깎여 나가고 있었다.
언덕 너머에도 이렇게 공사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왕복 6차선으로 도로확장 공사를 하는 것이다.
재개발로 인해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에 도로를 확충하는 것이리라.
생각보다 크게 산을 깎고 있었다.
건설 기술의 발전으로 저 정도를 깎고도 옹벽으로 버틸 수 있는 모양이다.
덕택에 그 곳에서 오랜 시간 있어왔던 나무들은 속절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보다 넓고 쾌적한 도로가 생긴다.
지금도 제법 빠른 속력으로 달리는 자동차들이 더 빠르게 달리기 쾌적한 그런 도로가.
이게 모두 행복해지는 걸까?
아니, 누가 행복해지는 걸까?
집으로 가는 길목의 풍경.
울창하게 우거진 저 밑을 지날 때가 좋다.
하지만 이 곳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개발의 시각으로 볼 때, 이 곳은 개발이 덜 된 곳이니까.

우린 넓어진 도로와, 그만큼의 산과 나무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