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서식기 VII

다리 위에서 왜 그러고 있을까

명랑쾌활 2026. 5. 31. 07:56

다리 위 가상자리에 (인니의 거의 모든 마을도로에는 갓길이 따로 없음) 오토바이를 세우고 있는 사람들을 매우 자주 본다.

유료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라면 모두 그런 게 아니라, 유독 몇몇 곳만 늘 그런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아이와 함께 와서, 아이가 철망에 달라붙어 유료도로를 지나는 차들을 구경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한다.

가뜩이나 차량 2대 마주 지나기도 빡빡한 좁은 도로에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으니, 차량 두 대가 마주 지날 적에는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이런 곳에서 팔자 좋게 경치 구경이나 하고 있나 싶겠지만, 이게 다 열악한 인니 교통 인프라 때문이다.

 

인니의 버스들은 가는 길에 어디서든 승객을 내려주고, 어디서든 승객이 타겠다고 하면 태워준다.

교통 인프라가 부족해서 그렇다.

정류장이 있어도 거기서부터 다시 목적지까지 가는 대중 교통 수단이 거의 없다.

현실이 그러니 지정된 정류장에만 정차해야 한다는 교통법도 없다.

시외버스는 더 하다.

보통 유료도로를 중심으로 운행하다 보니 정류장이랄 곳도 없다.

공식적인 정차지는 출발지, 중간에 휴게소, 종착지 밖에 없다.

 

정부 예산도 부족한 인니가 다리마다 높은 철망을 추가로 설치하는 이유다.

 

그래봐야 어떻게든 철망을 찢어서 개구멍을 만들지만.

 

시외버스는 보통 유료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밑 갓길에 잠시 정차를 하고, 승객이 타고 내린다.

다른 구간들은 전부 차단벽으로 막혀 있어서 넘나들 수 없지만, 다리밑은 구조상 드나들 수 있는 통로를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일반도로와 달리 유료도로에서 버스 승하차는 인니에서도 불법이다.

유료도로를 순찰하는 경찰에게 걸리면 벌금이다.

하지만 보통은 알면서도 눈감아준다. 교통 인프라 때문에 그렇다는 거 서로 뻔히 안다.

물론 현행범으로 눈에 뜨이는 건 넘어갈 수 없다.

인니식 유도리다.

 

유료도로 진출입로 구간도 단골 승하차 구간이다.

근처 갓길에서 내려 진출입로를 따라 500m는 족히 되는 거리를 걸어서 나간다.

 

큰길에서 마을길로 들어서는 초입에도 같은 이유로 오토바이들이 늘 서있다.

승합차 크기의 소형 버스는 왠만해서는 큰길로만 운행하는데, 마을길 입구에 내려서 집까지는 짧게는 1km에서 멀면 5km, 심하면 20km 이상 떨어진 곳도 있다.

큰길만 오가는 교통편에서 내리는 사람을 마중 나온 사람들이다.

마중 나온 사람들이 대기하는 구역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니 오토바이를 세울 곳이 없다.

길 폭도 좁다 보니 차량은 진출입시 서행할 수 밖에 없고, 큰길까지 덩달아 정체가 빈번히 발생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서로 적당히 피해주고 이해해주면서 그럭저럭 사회가 굴러간다.

다 똑같이 사람 사는 세상인데, 외국인이 보기에 답답하거나 부조리해 보이는 것들에는 나름의 그럴만 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