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흑도 아니고 백도 아닌, 그 사이에 어딘가에 있으면서 흑이나 백 쪽으로 약간 치우쳤을 뿐이다.
성격이 소심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게 아니다. 소심한 정도는 모두 다르다.
이기적인지, 성급한지, 폭력적인지, 교활한지, 비겁한지, 성향 각각은 모두 정도가 다르다.
그리고 그 각자 무수히 다른 지표들이 모여서 한 사람의 성격을 형성한다.
우린 서로 당연히 다르다.
사람을 무언가를 하려고 움직이는 동인은 세 가지다.
하고 싶어서거나, 하기는 싫지만 한 후의 보상 때문이거나, 하기는 싫지만 안했을 경우 겪을 대가가 더 싫거나.
그런데, 하고 싶다거나 싫다는 감정도 사람마다 각자 그 정도가 당연히 다르다.
우리 애는 왜 공부를 안할까. 옆집 애처럼 진득하게 하지 못할까.
감각하는 바가 달라서 그렇다.
이해력이 다르고, 지루함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 부모님의 말에 순응하는 정도가 다르고, 성적이 낮아서 느끼는 수치심이 다르다.
우리 애가 공부를 안하는 건, 이웃집 애보다 참을성이 약하고 성질머리가 못되어서가 아니다.
이웃집 애가 느끼는 지루함의 고통보다 우리 애가 느끼는 정도가 훨씬 심하고, 참아야 한다는 목적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쇼핑 좀 따라다니는 게 그렇게 싫냐, 얘기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는 게 그렇게 어렵냐고 한다.
다른 남자들도 그정도는 다 한다고 한다.
다른 남자들은 다 이해심 넘치고, 내 남친은 아니라고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스트레스를 느끼는 정도가 달라서, 참을만 한 남자도 있고, 못견디겠는 남자도 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군 좋아서 이러는 줄 알어!'라는 식의 말 들을 기회가 자주 있다.
악독하게 구는 직장 상사나 아부 잘하는 사람,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사람 가지가지다.
맞다. 어지간히 이상한 성격이 아닌 이상에야, 남에게 악독하게 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아부를 받는 걸 좋아할 수는 있어도, 아부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야근을 자주 하는 사람은... 뭐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보통은 싫어한다.
그런데 간과하는 점이 있다.
각자 스트레스 느끼는 강도가 다르다.
미움 받는 데 남보다 둔감할 수도 있고, 아부해야 하는 게 기질적으로 견디기 힘들 수도 있고, 야근이 아주 심하게 죽도록 싫을 수도 있다.
거기다 대고 '다들 그렇다'라고 윽박지르는 건 획일적인 사고방식이다.
높은 곳이나 깊은 물 무서워하는 건 이해하면서,
바퀴벌레 무서워서 남자에게 잡아달라고 하는 건 이해하면서, (남자도 무섭긴 마찬가지다 ㅠ_ㅠ),
공부, 쇼핑 따라다니기, 아부, 야근 싫어하는 건 이해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린 서로 다르다.
좋은 정도, 싫은 정도가 각자 다른 건 너무 당연하다.
내가 아무렇지 않은듯 참고 넘어갈 수 있다고 해서, 남도 똑같이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