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그 사람이 그런 걸 왜 우리 모두가 부끄러워 해야 하지?

명랑쾌활 2020. 10. 28. 09:54


모 블로그에서 인니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고, 현지인 직원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인니 한국 기업에서 일한지 얼마 안되는 한국 청년의 블로그였다.

글 내용중 '한국 기업들의 불법적인 처우에 대해 우리 한국인은 부끄러워 해야 한다'라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본인이야 정의감에 불타올라 그랬겠지만 글쎄...

10여년 전 UI의 인니어 어학당 다니던 인니 생활 초창기 시절의 내가 생각난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니는 20대 초반 한국 여학생들, 한국인 신분을 이용해 현지 여성들을 삼다리 사다리로 후리던 남학생들의 행태를 보며, 한국 망신 시킨다는 생각을 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한국인을 대표한다는 마음가짐은 나쁘지 않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뭐 좀 자의식 과잉이긴 하지만, 긍정적인 쪽으로 자신을 통제하는데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전체주의적 인식이자, 편견에 대한 굴복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개인은 개인일 뿐이고, 모든 한국 사람을 대표하지 않는다.
내가 나쁜 짓을 한 건 내가 나쁜 것이지, 한국이 나쁜 게 아니다.
설령 내 나쁜 짓으로 인해 어떤 외국인이 전체 한국인에 대해 안좋은 인식을 갖게 된다 해도 할 수 없다.
그 외국인의 인식은 성급한 일반화로 인한 편견일 뿐이고, 그 걸 일일이 헤아리고 신경쓰는 건 내 능력 밖이다.
비합리적 편견을 갖는 쪽의 잘못이다.

'우리 한국인이 부끄러워 해야 한다'는 생각도 지나치다.
한국인 스스로 모든 한국인에 대해 성급한 일반화를 하는 격이다.
외국인이야 한국에 대해 잘 모르니 한 면만 보고 한국 전체를 일반화 할 수도 있지만, 한국인이 그런 시각에 동조를 해서 어쩌자는 건가.
'우리'라는 말은 그런데 쓰라고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거야 본인 감수성 문제일 뿐, 타인에게 강요나 권유할 일이 아니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다른 한국인이 한 잘못을 같이 걸머지자는 건 사양한다.

한국식 전체주의 교육을 받아 형성된 가치관은 한국에서만 쓰고, 외국에서는 벗어 버려도 되지 않을까 싶다.
어느 나라든 좋은 사람 나쁜 사람도 있고, 본인이 나쁜 사람에 해당할 수도 있다.
그 사실을 받아 들이고, 그저 본인만 본인 가치관대로 똑바로 하면 될 일이다.

자신이 한국을 대표한다는 자의식이 지나쳐, 본래 자신이 아닌 위선적인 태도를 연기하다 무리하는 바람에 붕괴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