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길, 역시나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고갯길을 지나는데, 비라기 보다는 분무기로 물을 맞듯 잔뜩 축축하다.
마치 구름 속을 뚫고 지나가는 기분이다.
빗발이 그리 거세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숙소에 도착하여 오토바이는 세워두고, 우산을 빌려 쓰고 나왔다.
여행 첫 날, 어쩌다 보니 저녁을 먹게 됐던 마에마에 비치 바 Maemae Beach & Bar 에 다시 왔다.
양은 좀 적지만, 여기 음식이 가장 맛있었다.
6시 좀 넘었는데, 라이브 공연 중이었다.
노래 실력은 그냥 보통.
잘 하는 편이긴 한데, 귀를 끌어 당길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관광지 분위기 좀 나게 하는 정도.
사진 오른편 나란히 앉은 커플이 풋풋했다.
서양인 남자와 현지인 여자 (생김새로 보아 발리족) 커플인데, 여자가 이런 곳에 익숙하지 않은지 식당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하고 좀 튀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홀 손님 중 유일한 동양인이었는데, 우리가 오고 나니 괜히 우리 쪽을 흘끗흘끗 쳐다 봤다.
온통 서양인이 바글바글한 곳에서 동지 의식이라도 느낀 모양이다.
같이 온 서양인 남자는 '뭘 좀 어떻게 좀 해보려고' 안달복달 하는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함부로 여자를 터치하거나 하지는 않고 조심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언제부턴가 내가 서양인 바글바글한 식당에서 자연스러워 보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게 됐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예전엔 누가 쳐다보기만 해도 '왜 쳐다보나' 싶었고, 내가 뭔가를 하는 게 서양인들 눈에 어떻게 비칠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물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의식했었다.
그랬다가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아무 생각 없는, 정말 자연스러워진 상태가 된 거다.
뭐 대단한 사건을 경험했거나, 비결이 있는 건 아니고, 그저 자주 겪다 보니 익숙해졌을 뿐이다.
이연복 선생처럼 양파 잘 썰게 되는 게 무슨 비결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수백, 수천 개 썰다 보면 잘하게 되는 거랑 같은 거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익숙하지 않아서 어색해 보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걸 숨기려하고 익숙해 보이려는 노력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워' 보이는게 아닌가 싶다.
'부자연스러움'이란, 그렇지 않은 걸 그래 보이려고 하는 자의식에서 나온다.
익숙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애써 감추려고 하지 하지 않는다면, 그 건 그 것대로 자연스러운 거다.
인정하고 받아 들임.
순리, 다른 표현으로는 '무리하지 않음'.
뭐 어쨌든 저 서양 남자 + 동양 여자 커플이 행복하길 바란다.
잘 돼서 행복해지든, 잘 안돼서 행복해지든, 사람마다 처지가 다르고, 생각도 다르니까 각자 알아서 할 일이고, 어차피 나랑 상관 없다면 가급적 행복해지는 게 좋겠지.
생선 튀김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취향인데, 그럭저럭 괜찮았다.
무슨무슨 카레
인니 카레는 한국과 맛이 많이 달라서, 한국인은 취향 탈 수도 있겠다.
인니 10년 차인 내 입맛에는 괜찮았고, 일행도 이정도면 상당히 잘하는 거라고 했다.
다만, 감자가 덜 익어서 딱딱했다.
미리 볶아서 익히지 않거나, 푹 끓이지 않는 모양이다.
음식 나오는 양이 적은 편이라 인니식 야채 전병말이 튀김, 룸피아 Lumpia 를 추가로 시켰는데, 이건 그저 그랬다.
길거리에서 한 개 몇 백원 하는 걸 천원 넘게 받으려니, 이런 저런 내용물을 때려 넣은 게 오히려 밸런스를 해친 거 같다.
확실히 길거리 음식은 길거리에서 사먹어야 제맛이다.
캄캄해도 별로 위험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늘도 뭔 종교행사가 있는 모양이다.
마을 사원이 북적북적 하다.
사원을 지나치는데 오잉? 이게 왠...?
돼지 한 마리가 길가에 묶인채 널부려져 있다.
가까이 가니 풍풍 숨쉬는 소리도 들린다.
종교행사가 끝날 때 즈음이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될 운명이다.
군침과 함께 바라보는 시선이라 돼지 입장에서는 썩 유쾌하진 않겠지만.
파필라 Papila 커피하우스에 들러 달랑 두 개 남은 도넛을 사왔다.
그리 달지 않고 맛있다.
피자 같은 요리 보다는, 베이커리나 커피 종류가 주력 메뉴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