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구라파

10여 년 전 유럽 배낭여행

명랑쾌활 2014. 10. 2. 08:31

2000년도에 한달 반 동안 유럽 9개국 + 홍콩을 순회하는 빡센 일정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갔었습니다.

제 인생에 참 의미있었던 여행이라 언젠가 한 번 올려볼까, 여행기에 구라파 폴더까지 만들어 놨었는데, 몇 년이 지난 이제서야 올리게 되네요.

사진은 필름 카메라로 찍은걸 스캔으로 일일이 밀어서 보관했던 건데, 파일마다 코멘트까지 정리한 거 보니, 어지간히 할 일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뭐 반은 '나도 유럽 좀 가봤지요' 하는 유치한 자랑질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 ㅋㅋ

 

런던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건 런던탑 야경이었다.

멀리서 봐도 뭔가 으스스한 포스가 느껴졌다.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게 소녀 동상

메이저도 좋지만 이런 마이너도 좋지 않응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구시청사 근처 육교 건물

돈이 없어서 옛 건물을 그냥 두는게 아닐 터다.

유럽 도시들은 한국과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던 곳이다.

 

하이델베르그 성

독일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도시다.

하이델베르그 대학의 단과 건물들이 도시 여기 저기에 있는 대학 도시의 분위기가 독특했다.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성의 구조와 기능들, 성채 공략 전술 등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도 이때부터다.

 

뮌헨 마리엔 광장에서

인상이 푸근한 서양 아줌마의 전형을 보여주는듯한 아줌마.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미라벨 정원

예쁘긴 참 예뻤다는 인상이었다.

지금 사진을 보면서는 돈지랄도 풍년이라는 생각이 드는거 보면 나도 참 많이 꼬였다.

 

체코 프라하의 카를 다리에서 바라본 건물

카를 다리에서 여기 저기 경치를 구경하다, 위의 풍경이 왠지 눈에 익다는 느낌이 들어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찾아 보니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 나왔던 건물이었다.

그렇게 인상적인 장면도 아니었는데 왜 기억에 남았을까?

 

오스트리아 빈의 시청사 광장에 있던 노천 카페

하루에 평균 10여 km를 걷는 완전 뚜벅이 여행이었는데, 저런 곳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 씩 할 때가 정말 좋았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외곽 스타디온 지역 거리

아무래도 저렴한 배낭여행이다 보니 숙소는 주로 도시 외곽에 있었다.

가는 길에 마침 비가 방금 그쳐 굉장히 추웠었다.

 

부다페스트 피자헛에서 먹었던 에그베이컨 피자

한국의 기름에 절은 피자헛 피자가 가장 고급이었던 내 입맛에 혁명을 가져왔다.

이때 비로소, 피자가 정말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과 피자헛 메뉴를 국가별로 다르다는걸 알았다.

이후, 어디 여행 가면 그 지역 피자가 있으면 꼭 먹어 보는 취향이 생겼다.

 

이탈리아 베니스

당시는 아직 한국인 배낭여행자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한국인들은 보통 일본인으로 오인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유독 나만 중국인으로 오해를 하는지 의아했었다.

이 사진을 보니 납득이 갔다.

지금도 여행 다니다 보면 중국이나 싱가폴 사람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ㅋㅋ

 

베니스의 산 마르꼬 성당 광장

비둘기가 더럽게 많았다는게 기억에 남는다.

 

베니스 인근 리도섬

패키지로 한 군데라도 더 찍겠다고 갔다.

유럽 부자들의 휴양지라던데, 뭐 별거 없었다.

 

리도섬에서 베니스로 돌아오는 배에서 본 하늘 풍광

그 때 당시, '이 광경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자연의 풍광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참 좋구나~ 하며 그 순간의 행복을 실감하게 된다.

단순히 여행지 만으로는 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피렌체 두오모로 가는 길

건물들을 보면서 한참 잘 나가던 시절의 피렌체는 돈이 더럽게 많았겠구나 실감했다.

 

바티칸 박물관에서 바라본 바티칸 전경

바티칸도 다 사람사는 곳이구나 싶었다.

 

로마 테베레 강

유럽 도시들의 강들이 생각보다 다 작아서 실망스러웠었다.

 

콜로세움 근처 피자집

그냥 동네 골목집에 있는 평범하고 저렴한 피자집이었는데... 맛있었다!

이후로 어디든 여행 가서 먹어 보는 피자맛의 평가 기준은 이탈리아에서 먹었던 피자맛이 되었다.

 

마차 경주장

여느 관광지 같으면 울타리 쳐놓고 입장료를 받겠지만, 로마는 유적의 도시다.

마차 경주장 정도는 아무나 산책하는 공원이다.

개를 데려와서 원반 던지고 받기도 하고...

 

스페인 계단 앞 분수

관광객이 아닌 두 노신사가 앉아 뭔가 얘기를 나누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에겐 몇 백만원을 들여 찾아온 관광지가, 누군가에겐 일상의 한 거리다.

 

나폴리는 그냥 기차역까지만 찍고 왔다.

시간 계산을 잘 못하는 바람에 폼페이 유적을 볼 시간 여유가 없었다.

스위스행 야간 열차를 타기 위해 로마로 바로 돌아가야 했다.

아직도 아쉽다.

 

스위스 Sursee 역

스위스 행 야간열차에서 유레일 패스를 잃어 버렸다.

기차표 없이 열차를 타다 걸리면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해서 바짝 쫄았는데, 검표원에게 사실대로 얘기하니 순순히 다음 정차하는 역에 내리라고만 했다.

덕분에 예정에도 없던 역에 내려 기차표를 다시 사야 했다.

스위스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곳도 깔끔하고 예쁘다는걸 알았다.

 

루쩨른의 빈사의 사자상

추운데 햇빛은 따가웠다는 기억 말고는 뭐 글쎄...

 

스위스에서는 아무데나 사진을 찍어도 엽서 사진이 된다는 말은 정말이다.

 

융프라후 요흐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며 찍은 사진

마치 비행기에서 찍은듯 하다.

 

융프라우 요흐 전망대는 가장 높기만 할 뿐 경치가 안보여서 별로였다.

멋진 경치를 보고 싶다면 다른 전망대를 가길 권한다.

해발 3,500m 높이가 어떤가를 느끼는 경험은 색다르긴 하다.

한 1시간 정도 있었는데 점점 귀가 먹먹하고 머리가 아팠다.

 

프랑스 니스의 해변

자갈 해변이었는데 바다색이 정말 예뻤다.

꼬마애들이 수영하고 있길레 멋모르고 들어갔는데, 딱 두 발짝 만에 가슴 깊이까지 쑤욱~

관성에 의해 세 발짝 내딛는데 발이 안닿는다. ㅠ_ㅠ

서양은 아이 때부터 거의 대부분 수영을 가르쳐 놓는다더니...

해변에 앉아서 멀뚱멀뚱 애들 수영하는 것만 구경했다. ㅋㅋ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밑에서 올려다 보며 찍은 사진

남들은 잘 안찍는 사진을 찍는 취향은 이미 이때부터 있었다.

그냥 찍는 사진들은 인터넷 찾아보면 프로 사진가가 찍은 멋진 사진들이 널리고 널렸지 않응가.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키스상

실전에서 포즈를 취해 봤는데... 예술은 참 어려운 거라는걸 알았다.

(아무리 내가 힘이 부치는 티를 냈어도 그렇지, 머리를 왜 쥐어 뜯냐고!)

 

루브르 박물관 돌아 보다 바람 쐬려 창 밖을 보는데, 마침 투르 드 프랑스 행렬이 지나치고 있었다.

 

퐁피두 센터 앞 예술가 분수대

한국 같으면 여성 비하에 모성 모독이라며 당장 철거하라고 시위가 빗발치지 않을까 싶다.

 

파리 뤽상부르 공원에서

유럽 여행 중 가장 한가롭고 좋았던 때다.

 

스위스에서 유레일 패스를 잃어버려 이후로는 기차표를 일일이 구입해야 했다.

원래 일정은 니스에서 스페인 마드리드로 가야 했는데, 일정 통털어 최장 구간 야간 기차라 가격이 엄청나게 비쌌다.

금전적인 문제도 그렇고, 이동에만 왕복 20시간 이상이 소요되는지라 일정에서 빼고, 바로 빠리로 가기로 결졍했다.

덕분에 여행지마다 1박만 찍고 돌아다니던 이전 일정과는 달리, 본의 아니게 파리 한 곳에서 5박6일을 지내게 되었다.

원래 2박3일로 계획했던 빠리 여행코스도 일정이 두 배로 늘어나니, 한결 여유가 있었다.

이전까지는 여행지마다 유명한 곳 찍고 찍고 다니느라 몸도 힘들고 정신 없었는데, 여유가 생기니 비로소 풍경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새벽부터 일어나 여행지 찍고 다녔는데,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나 동네 빵집에서 바게뜨빵 사다가 동네 공원에 앉아 뜯어 먹던 기억이 유럽 여행 중 기억에 남는 좋은 추억 중 하나였다.

이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경험으로 인해, 이후 내 여행 취향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여행 중 하루에 일정(장소나 액티비티)은 최대 두 가지만, 괜한 의무감에 압박 받지 말고 귀찮으면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이다.

 

요즘도, 가장 효율적인 동선으로 최대한 많은 곳을 찍는 것을 목표로 여행 계획을 짜는 혈기왕성한 여행자들을 가끔 본다.

너무 일정이 빡빡한거 아니냐고 하면, 괜찮다거나, 많이 해봐서 익숙하다고 한다.

그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낼 수 있는지를 물어 보는게 아니다.

여행은 극기 훈련이나 테스트가 아니다.

그런 빡빡한 일정으로 그 여행지들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느냐는 얘기다.

타인은 물론, 뭔가 해야 한다는 자기 자신의 강박으로부터도 자유로와져서,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서 움직이는게 (혹은 가만히 있는게) 여행 아닐까 싶다.

진심으로 빡빡한 일정이 좋다면 뭐 할 수 없는거고. ㅋㅋ

 

몽마르뜨 거리

좋아 보이는 술집도 많았는데, 그냥 지나쳤다.

이때까지만 해도 서양인들 복작복작한데 들어가는게 왠지 주눅들었었다.

백인에 대한 열등감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홍콩의 야시장

스탑오버로 하루 머물렀다.

야시장 노점의 칭따오 맥주와 홍콩식 탕수육이 정말 맛있었다.

 

 

이 여행에 느꼈던, 한국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 오히려 세계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라는 인식의 확장은, 이후 제 생각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 여행 이후, 일상에서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면, '어? 빠리는 그렇지 않던데?' 등의 생각이 가끔씩 톡톡 튀어나왔습니다.

너무 당연해서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자각이 시작되었죠.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반강제로 가게 되었는데, 그 계기가 된 사람에게는 아직도 감사하는 마음이 큽니다.

 

아직 못 가보셨다면, 다른 언어를 쓴 곳으로의 여행을 권합니다.

내 영역을 벗어나면 나 자신이 그다지 대단할 것이 없다는 사실과 그런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건, 자아 성찰에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부부나 연인이 난생 처음 해외여행을 가서 미지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 대부분 남자들이 소극적이 되고 여자들이 적극적이 되는 이유가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대단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당황하는 거죠. ㅋㅋ

대단하지 않다고 하찮다는게 아닌데, 다들 그리 아등바등 대단해 보이려 안간힘을 씁니다.

아닌걸 굳이 그런 것처럼 보이려니 무리가 따르는 거구요.

굳이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만 깨달아도 여유가 생깁니다.

통찰과 현명함은 여유에서 나오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