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인도네시아

[Manado는 섬 이름이 아니다] 2. 상술? 사기!

명랑쾌활 2012. 5. 12. 17:36

지옥(?)의 부나켄 섬을 탈출하여 마나도 부두에 내렸을 당시 찍은 사진.
사진 한가운데의 작은 건물이 일종의 부두 관리 사무실이다.
부나켄으로 들어가는 외국인들은 저곳에 간단한 인적사항을 신고해야 한다.

그 부두 관리 사무실 처마에서 바라본 부두 전경

오전 8시
씩씩한 발걸음으로 부두에 들어서니 삐끼들이 바글바글 달라 붙는다.
다 스피드 보트 호객이다.

" 부나켄 40만 루피아."
" 헐, 뭘 그리 비싸냐? 나 공항에서 여기까지 앙꼿으로 6천 루피아에 왔다."
" 에이, 배는 기름이 많이 든다. 40만 루피아에 오늘 하루 종일 원하는데 다 데려다 주고 나중에 여기로 오는 것까지다."
" 난 걍 부나켄 들어가 거기 묵을 거다."
" 그럼 20만 루피아."
" 야이 John만아, 농담하냐? 하루 종일 여기저기 가자는게 아니라 걍 섬까지 가기만 하면 되는데 왜 가격이 절반인데?"
" 기름이 비싸잖냐."
" 일반 배는 없냐?"
" 있다. 오후 3시다."
" 하루 한 번?"
" 하루 한 번."
" 그거 말고 다른 배는 없냐?"
" 없다."
" 정말정말 없냐?"
" 정말정말 없다."

거짓말이라는 낌새는 있는데 따져봐야 뭐하겠나.
한 대 패고 싶은 마음을 화사한 웃음으로 포장하며 대화는 여기까지만.
알았다고 하고 부두 관리 사무실로 들어가려는데, 방금 대화를 나웠던 삐끼놈이 앞장서 들어가서 나에 대해 설명한다.
말의 내용 자체는 별 이상이 없었으나, 날 등지고 있어서 안보였지만, 공무원인듯한 사무실 직원의 표정으로 보아, 뭔가 신호가 오고가는 것 같다.

" 아자씨, 부나켄 가려는데 정말정말 스피드 보트 말고는 3시 배 뿐이야?"
" 맞어."
" 헐..."
" 왜?"
" 아니, 40만이면 너무 비싸잖여. 자카르타에서 여기까지 3시간 반 왔는데 비행기삯이 90만이구만."
" 10만 싸구만. 원래 그래. 기름값이 비싸잖아. 여기 가격표 봐바."
공무원이 벽에 붙은 공문을 가리킨다.
<스피드보트 50만 루피아>
그러나 인니에서는 공공기관 공문서라도 믿을게 못된다.
어차피 이런데 와서 스피드 보트 빌릴 사람은 외국인 밖에 없지 않던가.
" 정말정말 스피드 보트 뿐이야? 거기 살거나 하는 현지인들도 들어가야 할거 아녀? 거기서 나오는 사람도 있을 거고."
" 따로 정해진 거 없어. 그런거 타고 싶으면 저어쪽 강 어귀로 가봐."
" 오케이."

공무원이 가리킨 방향 쪽으로는 이렇게 재래시장이 펼처져 있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제대로 재래시장 투어다.
재래시장 별로 안좋아 한다.
어디 여행 가면 재래시장을 가야 사람 사는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뭐 취향따라 아니겠나.

전면의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갈구작거려서 보행에 방해 받는 거 싫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것도 싫다.

무엇보다도, 아무리 깎아봐야 어차피 원가 이하로는 살 수 있을리가 없는 불리한 게임인 흥정이 싫다.

실력에 따라 원가 이하로도 살 수 있어야 사는 사람에게나 파는 사람에게나 공정한 게임 아니겠나?

그렇다고 어차피 깎을 거 계산하고 부르는 값을 넙죽넙죽 줄 생각도 없고.

아, 한국 재래시장은 그렇게까진 싫지 않다.

부르는 값 안깎으면 덤이라며 얹어주는 '염치'라는게 있으니까.

뭐 그래도 갈구작거리는 사람들 땜시 안가긴 마찮가지지만.

마나도가 참치로 유명하다더니, 정말로 참치과 물고기를 떡하니 얹어놓고 판다.
일행 많았으면 저런거 하나 사다가 회 떠서 먹으면 환상이겠다.

잡은 물고기 땡처리라도 하는 곳인듯.

강 하구 풍경
물어보니 다들 처음 갔었던 부두로 가서 타라고 한다.

햇빛은 점점 강해지고 배낭은 점점 무거워져 간다.
지금 내가 뭐하는건가, 그냥 대충 가서 스노클링이나 하지 싶다.
다시 부두 사무실로 가서 일단 담배 한 대 꺼내 물었다.
왠 잡넘이 하나 와서 말을 건다.
" 부나켄 가고 싶다며?"
" 엉, 근데 너무 비싸."
" 내가 30만 루피아에 해줄게."
" 에이, 그것도 비싼데..."
" 무지 싼거야. 어쩔래? 지금 출발할 건데."
" 그래, 가자."
그러자 이 잡넘, 앞장서서 가면서 삐끼들에게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현지 종족어)로 떠든다.

모든 상황을 알게된 지금에 와서, 다시 구성하자면...
" 어이, 이 멍청한 외국인이 30만에 가겠대."
" 허, 존나게 멍청하구만. 역시 외국인은 봉이야, 봉."
" 혹시 모르니까 이 멍청이한테는 진짜 가격 알려주지 말라구."
" 오케이. 나도 이런 멍청이가 걸려야 하는데."
....정도가 아닐까 싶다. -_-;;

이것이 퍼블릭 보트.
부나켄 들어갈 때 타고 간 보트다.

잡넘을 쫄래쫄래 따라가니 얼레, 스피드 보트가 아니다.
ㅆㅂ 뭔가 이상한데...;;;
나 탔는데 바로 출발 안하고 좀 기다렸다가, 짐을 바리바리 든 왠 현지인 할머니 하나가 탄다.
느낌이 왔지만 이제 와서는 따지지 않는다.
피곤하기도 하다.
그렇게 부나켄으로 출발한다.

물론 한국인 특유의 성질 한 번 발휘하면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인니에 살면서 이 곳 룰에 익숙해 지면서, 주기로 이미 합의했으면 뒤늦게 억울해도 감수하는 편이다.
몇 차례 얘기한 바이지만, 인니인의 상술도 한국의 상도덕에서 보자면 사기일 정도로 독하다.
대항해시대에 향신료 무역의 중심지였고, 장삿속 밝기로는 세계 최고인 네덜란드와 아랍 상인들이 누비던 곳이다.
현재도 5%의 인구 비율로 부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탑클래스 상인종족 화교, 혹은 중국계 인니인들이 판치는 곳이기도 하다.
인니인들은 흥정은 얼마든지 하되(흥정을 즐긴다), 일단 가격이 결정되고 둘 다 합의하면 번복하지 않는다.
관광객 중에 재래시장에서 물건 살 것도 아니면서 흥정만 즐기다 그 가격 해주겠다는데도 돌아서는 경우가 있는데, 매우 심한 결례다.
보통은 참지만 잘못 걸리면 해꼬지 당할 수도 있다.
물건에 하자가 있어도 이미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물건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사람의 잘못이니 바꿔주지 않거나, 바꿔줘도 반반 책임으로 절반만 바꿔준다.
그리고 돈으로 토해내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위의 세 가지 보이지 않는 상도덕 룰 때문에, 한국인들이 사기에 가까운 일을 많이 당하는 편이다.

어쨌든 하늘은 우라지게 파랗고, 바다도 덩달아 새파랗다.

저 멀리 마나도 뚜아 Manado Tua 섬이 보인다.
부나켄 섬은 그 오른편, 육지와의 사이에 있다.

물 하나는 정말 엄청나게 맑다.
사진으로는 잘 안나왔지만, 꽤 깊은 바다인듯 한데, 배로 빠르게 지나면서도 뭔가 바닥의 형체들이 언뜻언뜻 보였다.

물고기들이 단체로 첨부덩첨부덩 지랄발광 뛰어노는 포인트들도 간간히 보인다.

와우에 나오는 낚시 포인트가 게임 설정으로 나오는 지어낸 것이 아닌 모양이다. +_+

점점 가까워지면서 D컵 마나도 뚜아 섬 옆으로 A컵 부나켄 섬이 보이기 시작한다.

부두에 가까이 가면서 찍었는데... 헛! 정말로 물이... 지나칠 정도로 맑다!!
바다수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야만의 유희를 즐기기도 곤란하겠다.
노란색이 번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날 것 같다. +_+;

나와 같이 퍼블릭 보트에 탔었던 할머니와 꼬마의 뒷모습

사기꾼 잡넘에게 미련없이 3십만 루피아를 건네고, 뭍으로 향했다.

돈을 받는 잡넘의 눈동자가 너무나 밝게 빛나 눈이 부실 지경이다.

뭐 당연한 얘기겠지만 부나켄 섬도 돈을 받는다.

외국인은 1년짜리 15만 루피아, 하루짜리는 5만 루피아.

현지인은 하루에 2,500루피아.

외국인은 현지인에 비해 쓰레기도 20배 버리고, X도 20배나 싸지른다고 생각하는 인니인들의 편견은 언제쯤 나아질까?

 

이때 당시까지만 해도 이런 노점상들이 있다는 것이 그저 그런갑다 했다.

소비자 규모를 따져봤을 때, 이건 정말 말도 안되게 비정상적으로 번화한(?) 것이었다.

 

지은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숙소

그냥 여기에 묵었어야 했다...

 

길을 물으니 해변으로 가랜다.

엉? 길이 없는 것인가...?

오염되지 않은 순수항 땡볕을 제대로 즐기며 해변을 걸어간다.

차가 다녀도 될 정도로 해변이 단단해서 걷는게 그리 힘들진 않았다.

 

약 5분 정도 걸으니 파노라마 코티지의 입구가 보인다.

저 소박한 간판이라도 없었으면 영락없이 그대로 지나칠 뻔 했다.

공사 중인 통로가 나를 반긴다.

한걸음 내딛으면 반걸음 우루루 무너져 가며 꾸역꾸역 올라갔다.


 

전망이 좋아 보이는 숙소... 아... 젠장...

불러도 당최 사람들이 안나와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숙소 뒤로 갔다.

현지인 스텝들이 묵는 곳 같기는 한데...

여기까지 와서 부르니 왠 아가씨가 어슬렁어슬렁 나온다.

 

이것이 비교적 최근에 지은 숙소다.

처음에는 이 방을 주려길레 밑에 전망 좋은 쪽은 빈 방 없냐고 물었더니 방이 다 찼댄다.

그러더니 한참을 열쇠를 찾다가 아까의 현지인 스탭들 묵는 곳에 가서 물어본다.

" 열쇠 어딨어?"

" 거기 방 다 찼잖아."

" 어, 그래?"

그러더니 밑에 전망 좋은 숙소 열쇠를 가지고 온다...

" 위에 방은 다 찼다. 밑에 방을 주겠다."

몇 분 전에 다 찼다는 방을 주겠다고 말하는 아가씨의 얼굴에는 어떤 겸연쩍음도 거짓말에 대한 가책의 기색도 없다.

나 역시 화를 내거나 따지거나 하지 않는다.

인니에 살면서 수도 없이 겪은 일인데, 인니인들은 정말 소름 끼칠 정도로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잘한다.

원래 그러려니 하지 않으면 혈압 때문에 살 수 없다.

일반화가 너무 심하지 않냐고? 모든 인니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라고?

물론 그렇다. 그저 한국인이 인니에서 살아가면서 마음 다치지 않기 위해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마음가짐일 뿐이다.

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너무도 태연한 표정으로 보건데, 그게 그다지 나쁜 행동이 아니라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나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그리도 태연한 거라면 그런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내가 너무 끔찍하다...

어쨌든 그렇게 원하던 전망 좋은 방을 얻게 되었다... 젠장...




마나도-부나켄은 3가지 교통수단이 있다.

1. 공용 여객선
대형배로 배삯은 만 루피아 이하일 것으로 추정된다.
하루 1회 왕복한다.
마나도-부나켄 오후 2시
부나켄-마나도 오전 9시
표면적으로는 바닥이 낮은 마나도 부나켄 부두 특성 상 간만에 맞춰 그렇게 운영된다고 하지만, 배로 먹고 사는 현지인들 때문에 그렇게 운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간만의 때를 맞춰 운영하는 거면 사실, 마나도 출발을 오전 9시, 부나켄 출발을 오후 2시로 하는 편이 훨씬 이치에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마 그럴리야 있겠냐고?
관광객들을 기념품 가게 지나가게 하겠다고, 억지로 길 막고, 거꾸로 거슬러 못가게 통제하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보아, 능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부나켄 기준으로 보자면, 오전에 배 타고 나와 시내에서 일 보고 오후에 돌아가는 것이니 섬주민 입장에서도 그 편이 좋겠다.
여긴 인도네시아다.
내국인에게는 무료인 곳도 외국인에게 입장료 비싸게 받고, 타지역의 큰 트럭이 마을길에 들어서면 통행료를 받는게 당연한 나라다.

2. 퍼블릭 보트
일종의 마을버스 비스무리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2만5천 루피아

3. 스피드 보트
관광객(특히 외국인 관광객)에 특화된 교통수단.
일반적으로 50만 루피아.
1인일 경우 40만 루피아, 3인 이상일 경우 60만 루피아 정도이나, 절대로 정가가 아니다.
1인인데 50만이라고 튕길수도 있고, 3인 이상도 50만으로 흥정할 수 있다.
하루종일 다이빙 포인트 이곳 저곳을 원하는 대로 데려다 주며, 왕복까지가 기본옵션이다.

스피드 보트가 위와 같은 옵션이라면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니다.
(인니 물가나 기름값에 비하면 비싼거다. 뭐 주 고객이 외국인이니...)
그런데 고작 부나켄에 데려다 주는 거에 저 가격을 무조건 불러대니...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