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여행기?/한국

[한국 방문 2022] 3. 복귀

명랑쾌활 2023. 7. 28. 12:32

안양역 건너편

안양에 갈 일이 있었다.

마치 섬처럼 혼자 허름했던 낡은 건물.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재개발이 늦어지는 건물인가 보다.

 

도로를 경계로 한 편은 신식 건물들이, 반대편은 몇 십 년 되어 보이는 낡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보행자 도로 한복판 전동 킥보드가 놓인 걸 자주 봤다.

왜 그런가 싶었는데 어느 날, 전동 킥보드를 탄 고등학생이 걷고 있는 나를 추월해 10여 미터 가다가 보행자 도로 한복판에 멈춰서더니, 그대로 두고 학원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 버리는 걸 우연히 보게 됐다.

머뭇거리거나 주변 신경 쓰는 기색도 전혀 없었다. 수도 없이 그랬던 것처럼 너무 자연스러웠다.

차라리 껄렁거리는 티라도 있었으면 그러려니 할텐데, 그저 교복 입은 차림새가 평범해 보이는 학생이었다.

평범한 학생, 여기저기 흔하게 볼 수 있는 방치 상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라는 뜻이다.

주변에 킥보드 거치소가 없으면 또 이해가 가는데, 역설적으로 길 한복판에 방치된 전동 킥보드 근처에는 어김없이 거치소가 있었다. GPS 기록에 걸리니까 그런 모양이다.

 

불이익 받거나 말거나 아무데나 둘만큼의 깡은 없지만, 자기 손해 받지 않는 선이라면 쿨하게 반항하겠다는 심보.

이런 걸 양아치 짓이라도 한다.

나도 학생 시절 이런 짓 많이 했었다. 규칙 잘 지키고 어른 말 잘 듣는 게 찌질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었다. ㅋㅋ

한국이 너무 선진국이 된 건 아닌 거 같아 마음이 따듯해진다.

 

인니 복귀 전날, 사랑니 뽑느라 갈아엎어진 잇몸은 여전히 너덜너덜 해서 진통제와 항생제를 먹어야 했지만, 그럭저럭 통증이 가라앉아서 그렇게 먹고 싶었던 곱창을 먹었다. (돌팔이 치과의사 새끼에게 저주를!)

인니에서는 곱이 제대로 들어있는 곱창을 먹을 수 없다.

천상 냉동으로 수입할 수 밖에 없는데, 익히는 중에 곱이 물처럼 줄줄 흘러 나온다.

...근데 한국 물가 엄청 올랐더라. 양도 많이 줄었고.

최저임금으로 혼자 살아가야 하는 사람은 도저히 먹을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다.

최저임금이란 게 '인간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저한의 임금'이 맞다면, 곱창은 한달에 한 번 먹는 것도 사치인 음식으로 분류되는 모양이다.

 

간만에 시카고 피자도 좋았다.

인니는 치즈 품질이 좋지 않아, 이런 곳이 드물다.

 

도깨비 호프 (구 꼬마 도깨비). 상업지구에서 20년 이상 버틴 몇 안되는 가게다.

이 노상 테이블 깔린 분위기가 그리웠다.

인니는 이런 곳은 발리 같은 관광지 밖에 없다.

세속 국가를 표방하지만 무슬림이 대다수라 그렇다. 자기들 눈에 띄는 곳에서 하지 말라는 거겠지.

이슬람이 국교인 말레이시아도 안그러는데, 인니는 괴상한 종교 텃세가 있다.

뭐랄까, 완장 차고 강압하는 행위가 자신의 종교적 신실함을 증명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할까.

 

3차 술자리는 마무리로 간단하게, 이번 한국행 마지막 잔을 친구와 친구 동생, 셋이서 나눴다.

3차는 자기가 내겠다던 친구 동생눔이 별것도 아닌 걸로 친구와 말다툼 하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휙 가버리는 바람에 황당했지만...

이제 적지 않은 나이인데, 얌체 막내 기질은 나이와 상관 없나보다. ㅎㅎ

 

얼마나 걷기 좋은 나라인지, 얼마나 밤에도 안전한지, 한국을 떠나보지 않은 사람만 모른다.

좋다거나 안전하다는 건 상대적 개념이다. 비교 대상이 없으면 실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보다 어려운 처지인 사람을 보며 자신의 행복을 확인한다.

'저런, 쯔쯔...' 혀를 차는 동정심은 인류애라기 보다는 자신를 향한 위안이기도 한다.

 

이번 인니행 항공편은 다도해 해상 국립 공원 상공을 지나갔다.

좌측으로 강진군, 우측 군도 끄트머리에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남해를 한 번도 못가봤다. 인니는 북쪽 끄트머리 마나도까지 가봤으면서. ㅎ

 

제주도 상공도 지났다.

 

제주 남동부 표선항 일대.

저 반짝이는 것들은 비닐하우스다. 제주도에 이렇게 비닐하우스가 많은 줄 처음 알았다.

 

기내식으로 나온 비빔국수. 맛이 개좆 개의 음경 같았다.

비빔밥에 쓰는 고추장 양념에 소면이다. 소면도 떡졌다. 양념과 겉돈다.

비빔밥 히트했다고 비빔국수를 메뉴로 내놓은 건가? 샐러드 매니아 서양인 채식주의자가 만들었나?

이거 기획한 인간은 먹어보긴 한 건가?

왜 모든 비빔면 류에 식초를 가미하는지 생각도 안해본 등신.

어지간하면 절대란 표현 잘 쓰지 않는데, 절대로 이거 말고 다른 메뉴가 뭐든 그걸 선택하길 권한다.

긍정적인 구석이 당최 없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이런 음식이 있다고 오해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