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Indonesia/인니어 공부(Pelajaran)

masak - matang

명랑쾌활 2020. 3. 27. 08:42

망고 mangga 종류는 여러 가지인데, 흔히 한국인이 망고라 하면 연상하는 망고는 Mangga Arum Manis 입니다.

(arum = harum 향기, manis 달다)

마치 눈의 종류가 여러 가지지만, 열대 지방 사람들이 눈이라 하면 함박눈을 떠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에스키모어로 눈을 뜻하는 단어가 40가지가 넘는다고 하지요.


아룸 마니스 망고는 인니에서도 비쌉니다.

하나에 2천원 정도 하는 망고를 큰 맘 먹고 샀습니다.


스티커에 쓰인, 아마도 상표인 걸로 보이는 'HARTONO'는 자와족 남성 이름으로 많이 쓰입니다.

아마도 망고가 중부 자와에서 생산되었거나, 망고 농장 주인이 자와족인 모양입니다.

그 밑에 'MASAK POHON'이라고 써있네요.

masak은 익다, pohon은 나무라는 뜻이니, 대충 '나무에서 잘 숙성된 과일'이라는 의미라고 때려 맞출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masak 이라는 단어가 좀 이상합니다.


masak은 익다, 성숙하다라는 뜻의 형용사입니다.

여기에 동사형 접두사인 me-를 붙여, memasak이라고 하면 요리하다, 익히다라는 뜻이 됩니다.(=익게 하다)

하지만, 인니인 거의 대부분이 일상 언어로 memasak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masak이라고 합니다.

즉, masak은 '요리하다'라는 뜻입니다.

과일이 익었다라는 뜻으로는 matang이라는 단어를 보편적으로 씁니다.

그러니, 망고에 붙은 스티커에도 'MASAK POHON'이 아니라 'MATANG POHON'이라고 쓰여 있는 게 맞을 것 같아 보입니다만...


사실 'MASAK POHON'이 적절한 표현입니다.

masak pohon이라는 표현은 '더 맛있게 하기 위해 일부러 나무에 달려 있는 채로 익혔다'는 뜻이 됩니다.

과일에 matang pohon이라는 표현을 쓰면, '너무 익어서 저절로 나무에서 떨어졌다'는 뉘앙스를 줍니다.


masak은 변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능동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matang은 변한 결과에 초점을 맞춘 수동적인 의미입니다.

그래서, 요리하다라는 표현으로 memasak은 있지만, mematang이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굳이 억지로 mematang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신이나 시간과 같은 초월적 개념이 열매를 맺고 영글게 한다는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인니 사전에 나온 뜻풀이에는 두 단어 다 '익다, 성숙하다'라고,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동일한 의미의 단어로 보입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동일한 뜻의 단어였다면 둘 중 하나는 진즉에 사라졌겠지요.

같은 언어에서 의미가 동일한데도 양립하는 단어들이 있다면 분명히 차이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외국어로 뜻풀이 해서 함축해야 하는 사전의 특성상, 그 차이를 일일이 기재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언어는 처음 배울 때는 사전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보다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사전을 통해 외운 단어 뜻들을 다시 해체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도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평생을 배워도 부족합니다.



사온 망고는 잘 먹었습니다.

확실히 돈값을 하긴 하네요.

하지만, 제게는 여행 중 어느 시골 도로변에 한 소쿠리 내놓고 파는 망고가 훨씬 맛있습니다.

팔려고 재배하는 건 아무리 masak pohon을 하려 해도 유통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할 수 밖에 없을테니, 그냥 알아서 자라는 거 따먹다가 남아서 처치곤란이라 푼돈이나 벌려고 집 앞에 내놓는 망고야말로 진정한 masak pohon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