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풀고, 씻고, 한숨 돌리니 거의 5시가 다 됐다.
점심을 기내식으로 대충 때워서 출출하다.
부육 Buyuk 선착장에 들러 발리로 돌아가는 배편 시간 알아볼 겸, 숙소 근처 구경도 할 겸, 밥도 먹을 겸, 숙소를 나섰다.
차 두 대 지나기 빠듯한 도로 폭에 보행로가 따로 없어서, 설렁설렁 걷기엔 불편하다.
하지만, 딱히 누사 쁘니다가 낙후되어 그렇다기 보다는 인니 어딜 가나 이렇다.
몇 년 뒤엔 이런 곳들에 모두 해변 레스토랑이나 숙박업소가 들어차 있겠지.
부육 선착장
어째 분위기가 요상하다.
주차된 오토바이 많은데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식당으로 보이는 건물도 닫혀있다.
강가 Gangga 익스프레스라는 스피드 보트도 보이고...
카스플라 Caspla 의 스피드 보트들도 보이는데...
어째 선착장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티켓 파는 곳도 닫혀 있었는데, 많은 사람이 이용한 흔적도 없었다.
안쓰는 건물처럼 보였다.
트립 어드바이저에 나온 Pizzaro Beach Bar 라는 곳도 문을 닫은 채 여기저기 쓰레기가 널려있다.
어젯밤 쓰레기가 아니라, 한동안 방치되어 왔던 걸로 보였다.
뭐 아직 날짜 여유는 3일이나 있으니 나중에 알아 보기로 하자.
관광지 때는 1도 안묻은 현지인 집 사이 골목을 통해 큰 길로 나갔다.
촌티 팍팍 힌두교 신이 프린트 된 타일
파필라 커피 하우스 뒤편으로 새로 지어진 숙소
관광지 특유의 분위기가 거의 없다.
꾸땀삐 Kutampi 해변으로 가는 골목길
국영기업이 운영하는 페리 선착장으로 가는 길
반대편
바닷가를 등지고 찍은 사진
사진 왼쪽이 마에마에 비치 바 Maemae Beach & Bar 고, 오른쪽이 니키 비치 하우스 Niki Beach House 라는 숙박업소에 붙은 비치 바다.
밤이 되면 라이브 공연도 하고, 제법 시끌벅적하다고 한다.
좋구나~ 사람도 없어 한적하니
그러다 비가 쏟아져서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처마가 있어도 어차피 바람에 비가 들이치기 때문에 바깥 자리에는 별 소용이 없다.
더 안쪽 자리에 들이치지 않게 하는 정도다.
비 오는 해변도 운치가 있다.
이럴 땐 파전에 막걸리가 딱인데...
내가 생각한 치킨 스테이크는 아니지만... 맛있다!
소스도 맛있고, 감자튀김도 한 포대씩 파는 냉동 미국 감자튀김은 아닌 거 같다.
닭고기 사떼도 맛있다.
밥 먹고 나서니 7시 좀 안됐다.
그냥 평범한 어촌 마을 같은 분위기다.
마을 사원에서 종교 행사가 있었나 보다.
여기가 나름 이 근처의 번화가다.
이런 가게를 또꼬 슴바꼬 Toko Sembako 라고 한다.
toko 는 가게, sembako 는 sembilan bahan pokok 의 줄임말인데, sembilan 아홉, bahan 재료, pokok 중요한, 그래서 또꼬 슴바꼬를 직역하면 '아홉가지 중요한 재료를 파는 가게'라는 뜻이 된다.
슴바꼬는 인니 정부에서 지정한,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9가지 품목으로서, 쌀, 소금, 설탕, 식용유, (닭)고기, 달걀, 우유, 옥수수, 연료유다.
따라서 또꼬 슴바꼬를 의역하면 생필품점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는데, 취급하는 품목의 중요도가 여타 가게보다 높기 때문에 마을 공동체 권력 구도에도 상위에 있고 (그렇다고 마구 휘두른다는 건 아님), 그에 따라 경쟁에 진입 장벽이 있어 보통 각 마을에 한 곳만 있다.
뒤편의 숙박업소
방갈로 독채가 줄줄이 늘어서고 중앙에 수영장이 있는 형태다.
아이스크림 크레뻬
맛은 그냥 그저 그럼.
아이스크림도 수제가 아니라 그냥 공산품
피자는 에... 아주 독특했다.
독특하게 맛이 별로였다.
얇은 도우 위에 치즈가 너무 많다.
치즈가 너무 많아서 다른 내용물은 씹는 느낌만 들고 거의 맛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흔히, 치즈 듬뿍 하면 자동적으로 '우와, 맛있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고정관념을 깨준 유익한 경험이었다.
뭐든 지나치면 좋지 않다.
그 게 피자의 치즈라도 그렇다.
밤 8시 경, 숙소로 돌아가는 길
아아~무것도 없고 껌껌하다.
그래도 위험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힌두교 공동체 규율이 강한 발리 지역의 특징이다.
자본을 투입하면 발리보다 더 멋진 관광지역을 조성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특유의 분위기만큼은 만들 수 없을 거다.
졸리면 자야지, 여행지의 밤 시간이 아깝다고 억지로 깨어있을 필요 있나.
졸리면 자는 것도 여행의 재미다.
졸려도 억지로 참는 건 일상생활에 돈 벌면서, 공부하면서 실컷 하는 짓 아닌가.
그러고 보니 오늘은 1월 1일이었다.
인니에 있으면 시간 관념은 있어도, 날짜 관념이 약해진다.
뭐 그 것도 나름 나쁘지 않다.
특별하다고 의미를 부여하니 특별한 거지, 1월 2일도 충분히 특별한 날이다.
하루하루가 다시는 오지 않는 유일하고 특별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