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소오~설 15

어느 인력 교육업체의 취업율 100% 비결

회사에서 신입을 뽑기로 했다.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사장이 책정한 급여 수준이 워낙 박해서 적당한 사람을 뽑기가 쉽지 않았다. 인원 충원이 자꾸 미뤄지자 사장은 자신의 지인이 운영하는 해외 취업 인력 교육 알선 업체에게 채욜을 의뢰하라 지시했다. 인사 담당인 나는 인력업체 담당자에게 문의했고, 우리가 원하는 급여 수준으로는 인력을 소개시켜주기 곤란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런 월급으로 사람 뽑겠다는 건 도둑놈 심보입니다. 엿이나 드십시오.'라는 뜻이고, 내게 아주 정중하게 엿을 먹였다는 얘기다.) 사장에게 '그쪽 기준으로는 연봉이 최소 00달러 이상은 되어야 소개시켜 준다고 합니다'라고 보고했다. ('우리 회사 월급이 그렇게 짜다는 얘기야, 사장놈아'라는 뜻이다.) 사장은, "그래? 하긴 그 정도는 줘..

소오~설 2023.12.27

[그 회사 이야기] 4. 후일담

퇴사 후 간간히 그 회사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다. 굳이 알아본 건 아니다. 한인 사회는 좁다. 내 대체로 들어온 현지 채용은 사내 현지인 여직원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문제가 되어 1년도 안되어 해고됐다. 공장은 꽤 먼 곳으로 다시 이전했다. 땅값과 인건비가 엄청 싼 대신 엄청 시골인 지역이다. 회사에 순종적이던 간부 직원 일부를 선별하여 급여 인상과 주거비 지원을 조건으로 새 공장에 데려갔다고 한다. 나머지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오너 매제가 방법을 알려줬을 거다. 원래 공장은 들어간 돈의 두 배 차익을 남기고 매각됐다. 그 이익은 회사 매출로 인한 이익금이 아니라, 오너의 투자 수익이다. 매년 납품 단가를 후려쳐서 힘들지 않은 적이 없다는데도 왜 모두들 대기업 하청을 하..

소오~설 2023.12.20

[그 회사 이야기] 3. 처세의 달인, 그 부장

사택 제공이 입사 조건 중 하나였지만, 일 시작한 두 달 간은 임시로 남의 회사 기숙사에 얹혀 살았다. 전무가 한국에서 발령 온 후에야 그 기숙사를 나와 주택에서 살게 됐지만, 전무를 모시고 살아야 했다. 전무 가족이 따로 나올 때까지 임시로. 전무는 직장 상사인 자신을 아버지처럼 여기라고 했지만, 정작 그는 부하직원을 머슴처럼 대했다. 오너는 아직은 시험 운영 기간이니 일단 그대로 지내고, 공장 새로 짓기로 결정하면 그 때 사택을 따로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입사 1년 후, 회사는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처음 공장 건축 설계도에는 없던 기숙사가 수정된 설계도엔 들어가 있었다. 오너 매제의 입김이 작용했을 거다. 그는 '직원들 퇴근해봐야 헛짓거리나 하고, 출퇴근 오고가는 게 시간낭비 돈낭비이며, 평일 일..

소오~설 2023.12.13

[그 회사 이야기] 2. 든든한 한국인 뒷배를 둔 그 현지인 총무

법인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법인장이지만, 외국 법인의 외국인 법인장이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인니에서는 외국 법인이더라도 인사 총무는 반드시 자국민이 맡아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져 있고, 외국 법인에 대해 모든 현지인들은 그 현지인 총무를 실질적인 대표자로 간주한다. 관공서 공무원, 회사 주변 주민, 하청 현지 업체, 사내 직원 등 모든 현지인은 총무를 상대한다. 법인장은 회사의 최종 사인을 하는, 즉 뭔 일 터졌을 때 책임지는 사람일 뿐이다. 그 회사 총무는 오너 매제가 박아넣은 사람이었다. 오너 매제 회사 경리장의 남편으로 이전엔 카센터 사무실에서 일했다고 한다. 관련 경력이 없으니 총무 업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는데, 문제는 나도 초짜였다는 것이다. 좆도 모르는데 존심만 센 놈 둘이 붙어 있으니 늘..

소오~설 2023.12.06

[그 회사 이야기] 1. 가족이 위계 조직이라던 그 전무

입사 당시 그 회사는 한국에 본사와 공장이 있었고, 이제 막 인니에 법인 설립을 진행 중이었다. 회사 오너의 매제가 인니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의 권유에 따라 인니에 생산 공장을 지으려는 상황이었다. 현지 사전 준비는 오너 매제가, 본사에서는 원청 대기업에서 낙하산으로 들어온 상무가 컨트롤했다. 입사하고 나서 초기에 한국 본사의 상무에게서 가장 자주 닥달을 받았던 건 '수입 허가가 언제 되느냐'였다. 설립 허가 프로세스를 시작한 3개월 정도 경과한 시점이었다. 인니 관청 행정 업무가 한국에 비해 얼마나 엉망인지, 언제까지 되는지는 아무도 특정할 수 없고 특정해주지도 않는다는 걸 아무리 설명해도 상무는 이해를 못했다.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아니, 언제 되는지도 알 수 없다니, 그런 ..

소오~설 2023.11.29

그 두 사람 이야기의 끝

https://choon666.tistory.com/966 에서 4년의 터울을 건너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선배형이 갑작스럽게 귀국했다. 이미 귀국하고 나서 연락을 해와서 알게 된 거라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2022년 12월 6일일 거다. 기력이 없긴 했지만, 덤덤한 말투로 사업 마무리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그는 인니에서 평생 살기를 바랐다. 뒤늦게 발견된 대장암 말기, 다니던 회사에서 한국 본사로 발령내주고 치료도 지원한다는 제안도 거절하고, 항암치료를 받느라 한달에 한 번 한국을 왕복하면서까지 인니에 있으려 했다. 6차까지 받으며 점차 호전되고 있다는 검사 결과에 희망을 가졌지만, 결국 간까지 전이되어 버렸다. 더 지체하다가 비행기를 타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될까 서둘러 떠났다고..

소오~설 2023.11.24

당신이 없어도 세상엔 별일 없더라

2018년 4월 어느 날, 리까가 죽었다. 서른 한 살인가, 서른 두 살인가. 외동딸이었고, 양친은 10여년 전에 교통 사고로 떠났다. 자식을 갖기를 두려워했다. 자신처럼 혼자 남게 될까봐.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소 가끔 말했던대로, 세상에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난 것이다. "리까 죽었다, 사흘 전에." 선배형과 둘이 저녁 먹던 자리였다. 술을 마시려 잔을 드는 내게 그가 툭하니 말을 뱉었다. 마치 누가 감기라도 걸렸다는듯. 그녀 나이를 대충 기억할 정도였으니, 그리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은 순간엔 너무 마음 아프지도, 아무렇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아... 그래요?" 고작 이렇게 대답하고, 멈칫했던 술잔을 털어넣었다. 선배형이나 나나 30분쯤 별말 없이 간간히 안주..

소오~설 2022.12.31

[회사의 부득이한 사정] 외전. 황송하신 갑의 사과

"인도장에 있는 자재들 빨리 치우세요." 국순 본사 소속 전성만 차장은 창고 사무실에 들어오자 마자 인사도 없이 최준영에게 잔뜩 인상을 쓰며 다짜고짜 그렇게 말했다. "네? 뭔 자재를요?" 뜬금 없는 말에 최준영은 되물었다. "인도장에 있는 자재들이요. 언제까지 저렇게 방치해 둘 건데요?" 창고 관리자가 자재들 파악도 안했냐는듯, 전성만 차장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듬뿍 배여있었다. 비로소 뭔 소리인지 이해한 최준영은 대답했다. "그 자재들은 저희가 관리하는 자재들이 아닌데요?" 인도장은 창고의 자재들을 생산 쪽에 넘길 때 제품 종류와 수량이 맞는지 상호 검수하는 공간이다. 생산 부서와 창고 부서의 중립적인 공간이지만, 창고 부서 입장에서는 생산 부서가 요청한 자재들을 인도장까지 갖다 놓고 검수 확인 하면 ..

소오~설 2020.09.21

[회사의 부득이한 사정] 5/5

- 최차장님, 신규 고객사와의 계약 체결이 연기되었습니다. - 회사 사정 상, 부득이 2월 1일부로 최자장님의 무급휴가를 실시하고자 합니다. - 무급휴가 기간은 특정할 수 없으나 3개월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결정하고 지시했고, 누군가 지시대로 통보한다. 개인의 인생에게 중요한 결정을 한 무게와 죄책감은 두 사람 사이 어딘가를 부유하다 '회사의 부득이한 사정'이라는 곳에 흡수된다. 회사는 실체가 없지만 사람들이 실제한다고 믿기 때문에 실제한다. 실체가 없지만 믿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종교와도 흡사하다. 광신도가 사람 목을 산채로 베면서도 '신의 뜻대로'를 외치며 자신의 행위를 자신이 믿는 종교를 위해 응당 해야 할 일이라고 변환하듯, 회사원은 개인이라면 하기 힘든 일을 '회사 방침상'이라..

소오~설 2020.05.25

[회사의 부득이한 사정] 4/5.

"최 차장님, 이럴 때일수록 근태는 더 확실하게 지키세요. 최차장님 근태가 안좋으면 현지인 직원들은 어쩌겠어요."이호병 상무의 말에 당혹스럽긴 했지만, 최준영은 알겠다고 대답하고 전화 통화를 끝냈다. 원래 최준영은 소유통운 입사 전엔 자카르타에서 1시간 반 거리인 찌까랑 지역에 살고 있었다. 소유통운 입사 후 임대 기간이 반 년도 더 남은 집을 포기하고 파견 근무지인 수방 지역으로 이사 갔다. 자카르타 반대 방향으로 1시간 반 더 간 시골이었다. 그리고 국순 수방과 소유통운 양사 간의 외주 계약이 끝나면서 소유통운 자카르타 오피스로 출퇴근하게 되었다.애초에 파견 공장 내 기숙사 거주가 근무 조건이었는데, 최준영이 외부에 살겠다고 한 탓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소유통운은 기숙사에 거주한다면 발생하지..

소오~설 2020.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