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던 길로 돌아 가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등 뒤로 흘려 보냈던 풍경을 역방향에서 보면 새로운 풍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제 이미 왕복을 했던 길이라 그닥 끌리지 않는다.
그래서 새로운 길을 시도해봤다.
노란 선이 시도해 본 길
길을 깔기 전에 땅을 다지기 위해 물을 뿌리는 중.
인니 기후 특성 상 대부분의 공사는 건기에 이루어지는데, 건기에는 지역에 따라 비가 너무 안와서 일부러 뿌려 줘야하는 곳도 있다.
역시 뭐든 적당한게 좋다.
딴중 띵기 지나쳐서 얼마 안가 만난 마을
대체적으로 잘 사는지 마을 풍경이 좋았다.
물론 못사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것이 바로 레알 판자집
구글로 검색해서 진입한 길인데... 왠지 분위기가 이상하다.
그나마 있던 아스팔트도 사라졌다.
심지어 구글로는 안보였던 갈림길까지 두둥!!
왠지 더 가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다.
뱜이라도 나오면 난감하다.
다시 되짚어 나와 귀환 루트를 수정하기로 했다.
이래뵈도 Belitung 내에서 웹사이트에 소개된 몇 안되는 레스토랑 중 하나다.
좋은 풍광에 인프라가 이리도 열악하다는 것이 이상하지만,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설마 여기 와본 사람이 나 하나 뿐일 것이며, 여기다 뭐 하나 지으면 대박나겠다는 생각 한 사람이 나 뿐이겠나.
그리고 그런 생각 한 사람 중에 실행에 옮길만큼 자금력 있는 사람이 없었을까.
뭔가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로인 리조트 앞 해변의 나이 지긋해 보이는 서양인들
서양인들은 인생 참 즐겁게 보내는 것 같다.
한국도 이제 소득 수준이 꽤 오르긴 했지만, 그 소득 수준을 유지하려면 대부분 이런 생활은 꿈도 못꾼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여유가 없어서다.(뭐 물론 돈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한 보름쯤 휴가 내서 해외여행 간다고 하면, 오냐하고 보내줄 한국 회사가 어디있겠나.
못보내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지장 없더라도 괘씸해서라도 안보내는게 한국 회사 분위기다.
어느 정도 위치 이상에 올라가면, 휴일 조차도 통제 받는게 당연시 된다.
혹시 회사에서 호출 있을까봐 해외는 꿈도 못꾸고, 근교 나들이 가더라도 전화는 꼭 받아야 한다는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법적으로 보장된 것이 연차인데, '피치 못할 사정'이 없이 그냥 연차 사용하면 평가가 안좋아진다.
주말에 붙여서 사용하면 평판 아주 안좋아진다.
웃기는 일이다.
월요일에 쉬던 수요일에 쉬던 하루 쉬는 건 똑같은 거고, 회사일에 차질 없으면 그만 아닌가?
회사에 다니고 있는 동안에는 여행 한 번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회사를 그만 두어야만 비로소 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으로 봤을 때 회사는 그 사람의 행복을 가로막는 존재일까, 행복하게 하는 존재일까?
그런 식으로 월급 많이 받으면 행복한 걸까?
국민 모두가 하루 15시간씩 일해서 국민소득 4만불인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치권 보면 너도나도 선진국 어쩌고 하면서 대부분 국민소득 상승을 얘기한다.
(이름 바꿨다고 과거일이 자기랑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당이 특히 그렇다.)
하지만 국민소득은 2만불 정도로 유지하면서,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그것도 일종의 소득 증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삶의 질의 문제다.
먼 길 떠나기 전 음식물 좀 충전하러 봐뒀던 식당에 들렀다.
시꺼먼 강 근처에 있던 곳이다.
흡입흡입~
식당 뒤편의 그림같은 경치에 비해... 벤치 등 시설은 소박하기만 하다.
한국 같았으면 이런 입지면 과연 땅값이 얼마려나. @_@
말도 안되게 파란 하늘, 에머랄드빛 열대 바다, 곱고 흰 모래사장... 그리고 시커먼 강물 ㅋㅋ
더러워서 까만 색은 아닌 것 같지만...
바다가 저 강물과 섞여 왠지 바다에 들어가기 찜찜하다.
개 세 마리가 해변을 따라 산책을 한다.
혼자 따로 떨어져 안쪽으로 굽은, 요상하게 생긴 내 새끼 발가락이 좋다.
엄마도 그렇다. :)
삼개 중 한 개가 따로 순찰을 돈다.
블리뚱에서 태어나다니, 개팔자 치곤 상팔자다.
밥 한 끼 먹고 다시 귀로에 올랐다.
돌아가는 길은 다른 길로.
목적지가 같아도 길이 다르면 다른 여행이다.
끝도 없이 뻗은 길을 좋아하는데, 블리뚱엔 이런 길이 많아 좋았다.
새로 길을 깐 구간인 모양인데...
한밤중에 정신 내놓고 내달리다 길 밖으로 날아갈까, 반사봉을 촘촘히 밖아놨다.
바짝 기울여 코너링을 하며 신나게 달려주는 아자씨
끝도 없이 길게 가로 누운 구름이 길과 교차한다.
덩그러니 홀로 있는 집 한 채
앞으로도 뒤로도 족히 20분은 달려야 인가 비슷한 것이 나올 길 한 켠에 있었다.
버려진 집이 아니었다.
그 흔한 물탱크도, 하수를 흘려 버릴만 한 수로도 안보이는데,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라는 참 멋대가리 없는 생각이 떠오른다.
뭐 어떤가.
낭만적인 감상에 젖는다고 꼭 잘된 여행은 아니요, 속물적인 생각을 한다고 해서 잘못된 여행이란 법도 없다.
일상에서 벗어나 남의 일을 남일 보듯 하기 위해 제발로 집 떠나서 고생하는게 여행이 아닐까.
뭔가 키우는 집인가 보다.
길 놓느라 지반 다질 필요 없어서 편했고, 수로 파느라 고생 깨나 했겠다.
사람을 바글바글 태운 트럭 한 대가...
용케도 고갯길을 넘어간다.
아니면 다 내려서 밀면 되겠지.
사거리가 나왔다.
구글에 표시된 곳이다.
그러니까 딴중띵기로부터 노란선만 있는 부분 중 저 사거리까지는 인가가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위의 집 한 채 말고 사람이 사는 건지 쉬는 집인지 모를 허름한 오두막이 드문드문 몇 채 있었다.)
오른쪽으로 꺾어 고고싱~
이제 길 옆으로 집들이 계속 이어진다.
뭔 마을 광장인거 같은데... 인니 사람들 참 동상 좋아한다.
이슬람은 원래 사람이나 동물을 표시로 남기는게 금지되어 있는데... ㅎㅎ
생활력 강한 빠당 사람이 블리뚱의 이 이름 모를 동네에도 자리 잡았나 보다.
이제는 문을 닫은 주석공장
폐광촌의 폐교될 처지가 된 학교를 살리기 위해 이런 저런 일을 한다는게 블리뚱을 배경으로 한 히트영화, 라스카 뿔랑이의 배경이다.
동사무소
내가 있는 쪽은 양지이고, 길 저편 어두운 곳부터는 구름 그늘이 졌다.
이번엔 내가 있는 쪽이 구름 그늘 밑이고, 저 편에 양지가 보인다.
바람따라 구름따라 흘러 다닌다고 하던가.
마침 달리는 방향과 구름 흐르는 방향이 같아, 달리다 더우면 구름 그늘과 보조를 맞춰 달리기도 했다.
한낮 땡볕 밑에 달리다 보면, 구름 그늘 밑에만 들어가도 거의 에어컨 방에 들어간 것처럼 체감온도가 극적으로 달라진다.
하지만 천천히 달려도 어지간하면 구름보단 오토바이가 빨랐다.
오른편에 보이는 큰 건물이 뭘까?
시골마을에 있으니 양곡 창고겠거니 생각하겠지만, 풋살장이다. ㅋㅋ
어느덧 딴중빤단 시내에 가까워지니 왕복 4차선짜리 길이 나온다.
한국이라면 흔해 빠지다 못해 뒷집 순이네 가는 뒷골목도 왕복 4차선인데, 인니에 산지 3년이 넘다보니, 이제 4차선만 봐도 ' 와~ 넓다. 도시구나.' 하고 생각하는 촌놈이 되었다. ㅋㅋ
인니에서는 저렇게 노변에 쭈그리고 앉아 끼니를 떼우는 것이 그리 큰 흉이 아니다.
물론 식당에 가서 먹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불쌍하게 볼 일도 아니다.
계속 직진하면 딴중빤단 중심 로터리 파출소랑 딱 마주치게 되기에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선다.
인니 어디를 가도 큰길을 벗어나면 비포장이나 다 파손된 포장도로에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는데, 블리뚱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엥, 이리저리 달리다가 결국 로터리로 가는 길로 다시 나오게 되었다.
사나운 경찰을 자극할까봐, 사진기 집어 넣고 헬멧 창 내리고 얌전히 휑 지나쳐 숙소에 무사히 안착했다.
다음날 오전에 공항으로 출발하므로, 이것이 블리뚱 마지막 투어였다.
바다 깨끗하기로 유명한 곳에서 오토바이 타고 돌아 다닌게 다지만, 나쁘지 않다.
스노클링은 다음의 즐거움으로 두면 그만이다.
어쩌면 여러번, 난 분명히 다시 올테니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세상 아래 두 곳 중의 한 곳, 이 곳 블리뚱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