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명랑쾌활

단상

[회사는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09. 회사 비용

명랑쾌활 2014. 9. 23. 08:09

아직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믿는 푸르른 새싹들의 아름다운 인식을 깨부수고자 몇자 적어 보는 연재입니다.

 

 

회사 비용 : 회사 운용에 소요되는 비용, 회사를 위해 쓰이는 비용

얼핏 명확한 개념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몇 차례 얘기했지만, '회사'라는 단어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회 초년생들은 회사 비용을 '회사를 위한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생산성을 증대하기 위한 기자재 설치 비용, 단합을 위한 워크샵, 회식 등등 회사를 위한다는 목적성이 순수하다면, 조직이 그 비용을 납득하리라는 환상을 갖는다.

그리고 그런 비용을 요청했을 때 상사로부터 반려 당하면, 요청 근거가 설득력이 없어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상사들이 그런 식으로 말하면서 반려하는 경우도 흔하다.)

 

김과장은 해외 공장의 생산 데이터 전산화 시스템을 도입하자고 품의를 올렸다.

현지인은 현지 언어로 된 화면에 수치를 입력하면, 한국 본사에서도 실시간으로 한국어로 된 자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2만달러 정도 소요되는데, 업무 효율에 탁월한 성과가 있으리라는건 명약관화 했다.

그러나 반려되었다.

얼마 후, 이부장이 추진한 사내 스크린 골프 연습장을 짓는 일은 결재가 났다.

3만달러가 소요됐다.

실제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사례는 그리 드물지 않다.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은 두 가지 미묘한 개념 차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첫째, 회사가 사장 소유니 회사돈도 사장돈일거 같지만,  회사돈은 사장돈이 아니다.

둘째, 무엇이 회사를 위하는 것인가는 사람마다 관점이 다를 수 있는데, 최종 기준은 사장의 관점이다.

회사돈은 최종적으로 오너가 사용을 결정하지만, 오너의 돈이 아니라 엄연히 회사 조직의 돈이다.

오너는 회사돈의 지출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자기 개인의 돈과는 달리 애착이 약하다. (자신의 것이 아니니까!)

 

위 상황의 경우,  골프를 좋아하는 오너는 전산 시스템 보다 스크린 골프 연습장이 자신에게 보다 직접적인 이득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산 시스템 따위는 자신에게 그다지 직접적인 이득이 없다.

직원들이 현지인 직원들의 수기자료를 일일이 번역, 입력하는건 오너와는 별 상관 없는 '사소한' 수고요, '당연한' 업무다.

그를 위해 직원 한 명 정도 더 쓸 수도 있지만, 2만달러의 목돈 보다는 큰 액수도 아니다.

또한, 현재 한국 본사에서 사용하는 비주얼C 계열의 이리저리 기운 걸레 같은 전산 프로그램 보다 새로 도입한 전산 프로그램이 더 우수하다면, 그것도 문제다.

그 걸레 같은 전산 프로그램을 제공 관리하고 시세보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운영비를 받아가는 IT업체는 자신의 친구 회사이기 때문이다!

 

회사를 위한 일은 인정을 받을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라.

회사는 모호한 개념이고, 당신이 생각하는 회사를 위한 일과 그 위에 있는 사람이 생각하는 회사를 위한 일은 다를 수 있다.

심지어, 회사 조직에 이익이 되는 어떤 일이 사장에게는 손해가 되는 일일 수도 있다.

(전산 프로그램을 바꾸면 회사 업무 효율은 향상되지만, 사장 주머니에 들어오는 리베이트는 줄어든다.)

그렇다고 품의조차 올리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아무리 봐도 조직에 보탬이 되는 좋은 품의인데 반려가 됐다고 억울해 하지 말라는 얘기다.

자신을 시샘한 김과장, 박차장이 커트한 거라는 소설을 쓰지 말라는 얘기다. (그럴 수도 있긴 하다.)

반려되더라도, 당신의 캐리어에는 분명 보탬이 된다.

회사가 합리적일 거라는 자기 투영을 하지 말라는 거다.